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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골로새서

골로새서 3:14

by 기대어 보기를 2025. 6. 3.

[골3:14] 이 모든 것 위에 사랑을 더하라 이는 온전하게 매는 띠니라
  



기독교를 대표하는 핵심 가치가 본문에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입니다. 

성경을 조금 아시는 분들이라면 성경 속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를 보면 그것인 어떤 종류의 사랑인지를 파악하려고 하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말로 ‘사랑’이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나 헬라어의 단어는 여러 종류이고 그 종류마다 각각 사랑의 의미가 조금씩 다릅니다. 

이를테면 다음과 같습니다. 
- *ἀγάπη(아가페)* 조건 없는 사랑, 신적인 사랑
- *ἀγάπηἀγαπάω(아가파오)* 사랑하다(동사)
- *φιλία(필리아)* 친구 간의 사랑, 인간적인 사랑
- *φιλέω(필로스)* 감정적인 사랑, 우정
- *ἔρως(에로스)* 열적적인 사랑, 남녀간의 사랑
- *στοργή(스토르게)* 가족간의 본능적인 사랑

그래서 성경을 우리말로 번역할때 우리가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사랑의 종류‘에 대해서 명확하게 번역하면 좋을 텐데라는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단지 ’사랑‘으로만 번역한 것에도 충분히 훌륭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분명 사랑이라는 것은 그 사랑의 형태와 종류를 구분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그 사랑의 형태와 종류가 어떻게 달라지든지 사랑의 본질은 다르지 않습니다. 그리고 그 본질적인 사랑을 담은 단어는 *ἀγάπη(아가페)* 즉, 조건 없는 사랑 그래서 신적인 사랑입니다. 

남녀 간의 사랑이든, 친구 간의 우정이든, 가족 간의 사랑이든, 감정적인 사랑이든 그 모든 사랑의 본질은 조건 없는 사랑입니다. 그러기에 어떤 종류의 사랑을 떠나서 단지 ’사랑‘이라고 번역을 해도 충분합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된 사랑은 바로 그 사랑의 본질인 조건없는 사랑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위에서 이야기했던 소중한 가치인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그리고 그 어려운 용서 위에 사랑을 더하라고 권면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묵상할때 저는 사랑을 더해야 하는 두 가지 이유를 발견합니다. 

하나는 ‘사랑’이 더해지지 않으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은 고린도전서 13장에서 너무나 잘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고전13:1-3]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말씀 그대로 사랑이 없으면 소음이요, 아무것도 아니요, 아무런 유익도 없습니다. 이와 같은 말씀이 있는 이유는 우리는 실제로 사랑 없는 긍휼, 자비, 겸손, 온유, 오래 참음, 그리고 용서와 같은 행위를 할 수 있고 사랑 없는 천사의 말, 방언, 지식, 봉사, 헌신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어떤 면에서는 사랑이 담기지 않더라도 티가 나지 않거나 알아치리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행위의 주체자인 나의 양심은 알고 있고 우리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도 아십니다. 저를 포함해서 사랑 없이 행했던 일들 소위 위선이나 외식과 같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것들이 얼마나 공허하고 가벼운 것인지 스스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사랑이 담겨야 진짜가 되고 진실된 것이 됩니다. 그러므로 말씀처럼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 

사랑을 더해야 하는 두 번째 이유는 말씀처럼 사랑이 온전하게 매는 띠이기 때문입니다. ‘온전하게’라는 단어는 *τελειότης(텔레이오테스)* 라는 단어인데 완전하다는 의미로 영어성경(NIV, ESV, NASB)에는  ‘perfect’ 라는 단어로 번역되었습니다.

사랑이 온전하게 매는 띠라는 의미는 사랑을 해 보신 분들이라면 충분히 이해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창세기를 읽어 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반복되었던 하나님의 감정은 ‘보시기에 좋았더라’는 표현입니다. 

이 ‘좋다’라는 히브리어가 *טוֹב(토브)* 인데 그 단어에 부정하는 명사의 대립어인 *לֹא(로)* 가 붙어서 ‘좋지 않다’라고 번역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창세기 2장 18절에 ‘사람이 혼자 자사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관계를 소중하게 여기고 모든 우주만물을 공동체라는 관계로 창조하셨습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공동체를 이루어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래서 인류는 가족이라는 공동체를 유지해 오면서 지금까지 이어져왔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실 것입니다. 성이 다르고 살아온 환경과 경험한 인생이 다른 완전히 남남이었던 두 사람이 함께 만나 부부가 되고 엄마와 아빠가 되고 자녀를 낳고 살아가는 관계가 된 것은 어떤 힘 때문입니까? 바로 ‘사랑’입니다. 사랑이 사람과 사람을 묶어 준 것입니다. 

이 사랑은 남성과 여성만을 묶지 않습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끊임없이 어딘가에 소속되고 공동체의 관계를 만들어갑니다. 그리고 그 모든 공동체가 잘 유지되는 힘 역시 ‘사랑’ 입니다. 심지어 이 ‘사랑’은 사람과 사람뿐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소유하고 있는 어떤 물건이나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가치와 신념, 보다 근본적으로 절대타자인 하나님과의 관계도 ‘사랑’으로 가능합니다. 

삼위일체 하나님도 사랑입니다.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님도 서로를 온전히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결론을 말씀드리자면 오늘 말씀 그대로 모든 선하고 아름다운 가치 위에 사랑을 더해야 합니다. 그 사랑이 우리를 진실되게 하고 서로 연대하고 하고 건강한 공동체가 되게 합니다.

그런데 한 가지만 더 나누겠습니다. ‘사랑하라’는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최고의 가치인데 한편으로 어떤 분들은 ‘사랑하라’라는 말을 추상적이거나 관념적인 것으로 받아들입니다. 현실적이지 않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사랑’이라는 말은 완전히 현실적인 말입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이 지금 당장 누군가를 사랑해야겠다는 결심을 하면 그 순간부터 사랑은 여러분의 실제적인 것이 됩니다.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의 문제와 부딪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여러분에게 있는 사랑 없는 교제나 봉사나 행함은 무엇입니까?    
2. 여러분의 삶에 사랑을 더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3. 더 사랑해야 할 사람은 누구이며 그 사랑을 표현하기 위해 오늘 실천해 볼 일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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