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3:13] 누가 누구에게 불만이 있거든 서로 용납하여 피차 용서하되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너희도 그리하고
알고는 있지만 정말로 어려운 단어가 하나 보입니다. 바로 ‘용서’라는 단어입니다.
종교적 테두리 안에서 특히 기독교 안에서 ’용서‘는 정말 중요한 개념입니다. 요지는 오늘 말씀에 있는 것처럼 ’주께서 너희를 용서하신 것 같이‘ 우리도 서로를 용납하고 용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입니다. 그리고 기독교 역사 안에서 어떤 사람들은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용서의 지경을 넓힌 위대한 분들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그리스도인으로서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글로써가 아니라 나 자신과 관련이 있을 때에도 우리는 당연하게 용서를 하고 있을까요?
용서해야 한다는 것은 이해할 수 있지만 실제로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한다는 것은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하려고 하면 우리는 나에게 잘못한 그 사람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를 마주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두 가지 길이 제시 됩니다.
하나는 누군가에 대한 분노의 감정을 모두 포기해 버리고 없애 버리는 것입니다. 또 다른 하나는 분노의 감정을 해결하지 못한 상태 즉, 그 사람에 대해서 분노하지만 도의적으로 그를 ’용서‘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가능한 것일까요? 우리는 말로써 용서했다고 하면서도 실제로는 용서를 하지 못한 실패한 용서를 할 수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용서‘라는 말로 번역된 헬라어는 *χαρίζομαι(카리조마이)* 라는 동사입니다. 이것은 ‘값없이 주다, 거저주다, 은혜를 베풀다, 용서해주다‘는 의미입니다.
그 의미를 들여다봐도 역시 쉬운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용서’라는 개념은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신만이 가능한 것으로도 이해를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보여준 사랑과 희생, 그 모든 것, 값없이 거주 주신 그 은혜가 바로 ‘용서’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우리에게 끊임없이 용서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치 용서가 의무인 것처럼 용서를 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도데체 얼마나 용서해주어야 합니까?”라고 예수님께 한 제자가 물었을 때 예수님은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고 답했습니다. 그 말이라면 490번인데 그것은 490번이라는 숫가가 아니라 셀 수 없을 만큼 무한히 용서해 주라는 의미입니다.
[마18:21-22]
21 그 때에 베드로가 나아와 이르되 주여 형제가 내게 죄를 범하면 몇 번이나 용서하여 주리이까 일곱 번까지 하오리이까
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게 이르노니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을 일흔 번까지라도 할지니라
용서에 대해서 지금 쓰는 글에는 한계성이 있습니다. 이 짧은 글은 ‘용서’에 대해서 극히 일부분 밖에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예컨대 앞에서 예수님은 무한히 용서해 주라고 말씀하셨는데 또 다른 한편으로는 ‘무한한 용서’는 악용될 가능성도 충분하고 역사 속에서 선한 사람들을 이용하는 ‘덫’이 되기도 했습니다. 실제로 종교적으로도 죄를 덮기 위한 수단으로 사용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의도는 용서라는 ‘덫’을 사용하라는 것이 아니고 ‘용서의 윤리’를 이용하라고 한 것도 아닙니다.
이처럼 '용서'는 다루어야 할 내용들이 정말 많고 우리는 '용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지도 않은 것도 현실입니다. 다만 오늘 성경은 우리에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용서받은 것처럼 우리도 서로 용납하고 용서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용서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진정한 용서 안에는 누군가를 향한 분노나 정죄의 감정을 탕감해 주는 것, 포기하는 것, 내려놓는 것이 포함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야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상처 입은 우리가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희망 없는 우리를 희망의 내일로 나아가게 해 준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용서에 대해서 깊이 묵상하고 순종합시다.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용서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2. 용서하지 못하는 스스로는 어떻게 살아가게 되리라 생각하십니까?
3. 용서해야 할 사람이 있습니까? 용서하셨습니까? 용서하지 못했다면 그를 용서할 수 없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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