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4:10] 나와 함께 갇힌 아리스다고와 바나바의 생질 마가와 (이 마가에 대하여 너희가 명을 받았으매 그가 이르거든 영접하라)
바울과 함께 옥에 갇힌 또 한 사람의 동역자가 나옵니다. 그는 ‘마가’라는 사람입니다.
그의 이름은 *Μᾶρκος(마르코스)* 이 이름은 로마식 이름 입니다. 당시에는 유대인으로서 로마식 이름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이를테면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울도 로마식 이름입니다. 바울의 유대식 이름은 ‘사울’입니다.
오늘 마가는 사도행전 12장 25절에 등장하는 ‘마가라 하는 요한’과 동일한 인물로 보고 있습니다. 이 이름도 마가는 로마식 이름이고 요한은 유대식 이름입니다.
또 요한은 히브리어 *יוֹחָנָן(요하난)* 이라는 이름의 헬라어 음역 표현입니다. 요하난이라는 이름의 의미는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는 의미입니다.
마가는 본문에 바울의 또 다른 동역자인 ’바나바‘의 생질이라 기록되어 있습니다. 생질이라는 말은 ’사촌‘관계로 바나바의 누이의 아들로바나바의 조카라는 의미입니다.
[마가의 외조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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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나바] [마리아] (마가의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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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 마가]
마가에 대한 정보를 더 찾아보면 기억할 만한 두 가지 특징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 중 하나는 바울과의 관계입니다.
본문에서 바울은 마가가 골로새교회에 도착하면 잘 영접해주라고 당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이전에도 이야기되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바울이 이 마가를 특별히 마음을 쏟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 마가는 바울과의 관계가 좋은 관계가 아니었습니다. 사도행전 13장 13절을 보면 바울이 1차 전도 여행에서 바보에서 배를 타고 밤빌리아에 있는 버가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곳에서 ‘요한’이라는 사람이 바울 일행에서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갔습니다.
이때 바울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돌아간 ‘요한’이 오늘 본문의 ‘마가’ 입니다. 이 일로 인해 바울은 ‘요한’을 신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이후 바울은 또다시 전도여행을 떠나가 되는데 그때 1차 전도여행에 함께 참여했던 바나바가 자신의 조카인 마가를 데리고 가자고 합니다. 그러자 바울은 밤빌리아에서 있었던 일을 이유로 마가를 데리고 갈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 일로 바나바와 바울은 심하게 다투게 됩니다. 그리고 서로 갈라서버립니다. 그래서 바울은 실라와 동행해서 전도 여행을 떠나고 바나바는 자신의 조카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향하게 됩니다.
이처럼 마가는 바울에게 신임을 잃었던 적이 있는 사람 입니다. 그 이후 이들의 관계에 대해서 구체적인 부분은 찾을 수 없지만 바울과 마가의 신뢰관계가 회복되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바울이 마가에 대해서 특별히 부탁하는 부분과 디모데 후서 4장 11절에서 바울이 마가를 도움이 되는 사람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딤후4:11] 누가만 나와 함께 있느니라 네가 올 때에 마가를 데리고 오라 그가 나의 일에 유익하니라
그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유추해 본다면 마가의 외삼촌인 바나바가 마가를 아꼈고 바울과 바나바 사이에 관계의 진전을 위해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가에게도 지속적으로 복음의 확장을 위한 수고와 노력을 했었던 결과라 보입니다.
초기의 마가는 바울이 신임하지 못할 모습을 가지고 있었으나 시간이 지나면서 바울이 신임하고 귀하게 여기는 사람으로 변화된 것 입니다. 이것을 통해 한 사람의 신앙의 성숙을 볼 수 있고 그 사이에 공동체의 역할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마가에 대한 두 번째 특징은 이 마가가 그 초기에 바울에게 신임을 잃었던 인물이라고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위대한 업적을 이룹니다. 마가는 우리가 사랑하는 ‘마가복음’의 저자입니다.
마가복음은 로마에 복음 즉, 예수가 그리스도임을 증거하기 위해 기록되었고 또 당시에 로마의 박해 속에서 신앙의 삶을 이어갔던 그리스도인들에게 소위 세상을 섬기고 고난 받으신 예수님을 기록해 위로와 격려를 주었습니다.
마가를 바라봅니다. 모든 것이 완벽하고 좋을 수 없듯이 바울의 눈에 마가는 성실하지 못한 측면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며 마가는 바울에게 인정받는 사람으로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을 바라보며 우리 역시도 그 성장을 겪고 있는 중이라 생각됩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믿음의 자리에 머무르며, 지금 주어진 작은 달란트를 묻어두지 않고 사용하다 보면 언젠가 우리 인생의 가치가 하나님께 유용한 삶이 될 것이라 생각해 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신앙생활에 있어서 스스로 부족하다 생각하는 부분은 무엇입니까?
2. 신앙의 영적 성장을 위해서 지금 도전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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