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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골로새서

골로새서 4:12~13

by 기대어 보기를 2025. 6. 25.

          
[골4:12-13]
12 그리스도 예수의 종인 너희에게서 온 에바브라가 너희에게 문안하느니라 그가 항상 너희를 위하여 애써 기도하여 너희로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구하나니
13 그가 너희와 라오디게아에 있는 자들과 히에라볼리에 있는 자들을 위하여 많이 수고하는 것을 내가 증언하노라  


   
다시 한번 에바브라가 등장합니다. 에바브라는 골로새서의 서두에 등장했던 이름입니다. 에바브라의 경우는 지금까지 바울이 소개했던 믿음의 동역자들과의 차이점이라면 골로새교회에 복음을 전하고 믿음으로 양육시킨 사역자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로마의 감옥 안에서 골로새서를 쓰게 된 직접적인 계기를 열었던 사람이 에바브라입니다. 이렇습니다. 에바브라는 골로새지역에 복음을 전했고 이를 통해 교회 공동체가 세워졌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서 교회 공동체 안에 다양한 신앙, 철학, 종교 등의 사상과 교리가 들어와 혼란을 초래했습니다. 바른 믿음에 대한 혼선도 있었고 교회 공동체 안에 분열도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자 골로새교회를 향해 항상 힘쓰며 기도하는 에바브라는 골로새교회가 하나님의 모든 뜻 가운데서 완전하고 확신 있게 서기를 원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 복음의 본질이 사도 바울을 통해서 전해지기를 원했습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 에바브라는 로마의 감옥에 갇혀 있는 사도바울을 만나러 왔던 것입니다. 

바울은 에바브라를 통해 골로새교회의 사정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골로새교회를 향한 편지를 쓰게 된 것 입니다. 그리고 그 편지의 주된 내용은 여러 가지 혼라스러운 것들을 정리하고 예수가 그리스도라는 복음의 본질,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대한 믿음의 확신을 갖게 하는 ‘기독론’을 기록했습니다. 

한 가지 묵상을 해 봅니다. 에바브라는 복음의 열정이 있었고 교회 공동체를 아끼고 염려하는 마음이 큰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항상 교회 공동체를 위해서 기도했던 사람이고 스스로 해결할 수 없다 판단되는 문제 앞에서 과감하게 바울을 찾아가 도움을 요청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그가 골로새에서 바울을 찾아갔다는 단순한 정보를 알 수 있지만 사실 이것은 단순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골로새교회에서 바울을 만나기까지의 여정은 결코 단순한 여정이 아닙니다. 

이 둘 사이의 거리는 대략 1,800 ~ 2,200km에 해당하는 거리입니다. 서울에서 부산까지의 거리를 두 번 왕복한 정도의 거리 입니다. 또한 육로와 해로를 오가며 이동해야 하는 여정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보면 에바브라의 골로새교회를 향한 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단순히 긴 여정이었다는 것이 아니라 생명의 위험을 감수하는 여정이었습니다. 이 지점에서 에바브라의 교회 공동체를 향한 사랑의 수고를 배웁니다. 

그리고 그 수고와 애씀이 열매를 맺어 바울은 편지를 썼고 그 편지는 두기고, 오네시모, 마가와 같은 동역자들도 골로새교회를 방문하게 되는 결과는 만들어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을 통해 유추할 수 있는 것이 더 있습니다. 그것은 골로새교회 안에서의 에바브라의 리더십입니다. 본문에는 직접적인 언급은 없지만 바울이 에바브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내용들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가령, 바울은 1장 7절에서 골로새교회가 에바브라를 통해서 세워졌다는 것을 상기시킵니다. 또한 에바브라를 신실한 종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교회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이곳 로마까지 바울을 만나러 온 수고를 감당한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어쩌면 골로새교회 안에서 에바브라의 리더십에 대한 어려움이 있었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럴 수 있는 것이 다양한 가르침들이 교회 안에 들어오면서 자연스럽게 골로새교회에 복음을 가르쳤던 에바브라의 권위는 도전을 받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에바브라는 골로새교회에만 머물러 있었던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에도 복음을 전했고 그곳에서도 교회를 세우고 사역을 했습니다. 

당연히 한 교회를 위한 시간이나 노력이 분산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 지역들이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은 아닐지라도 한 사람이 수고함에는 한계가 있고 그것은 물리적인 부재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골로새교회에서의 에바브라의 지도력은 의심을 받을 수도 있었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런 상황들을 고려해 바울은 에바브라가 골로새교회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를 충분히 기록했고 또한 골로새교회뿐만 아니라 라오디게아, 히에라볼리에도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애쓰고 있음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즉, 바울이 권위 있는 말로써 에바브라의 리더십을 세워주고 있는 것입니다. 

에바브라를 봅니다. 복음의 전달자이며 교회의 리더이며 교회 공동체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고 교회 공동체를 바로 세우기 위해 위험한 여정도 감수하고 끊임없이 복음을 전하는 사명의 지경을 넓혀간 그를 묵상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여러분의 교회 공동체를 위한 나의 수고와 애씀은 무엇인가요?
2. 여러분의 교회 공동체를 바로 세우기 위해 필요한 해법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3. 그것을 위해 여러분이 감내할 수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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