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4:5-6]
5 외인에게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6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그리하면 각 사람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리라
외인 대해서는 지혜로 행하여 세월을 아끼라…
맞는 말인 것 같은데 고민이 됩니다. 어떤 의미일까요? 우선 ‘세월을 아끼라’는 문장의 의미를 찾아보겠습니다. 세월이란 *καιρός(카이로스)* 라는 명사입니다. 헬라어 원문에서 이 단어를 보고 조금 놀랐습니다.
헬라어에서 시간을 의미하는 단어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Χρόνος(크로노스)* 와 오늘 본문의 *καιρός(카이로스)* 입니다. 이 둘은 똑같이 시간을 의미하지만 그 내용은 다릅니다.
크로노스는 연속적이고 양적인 시간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하루는 24시간, 1년은 365일과 같이 연속적으로 흐르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시계를 보고 지금이 어느 때인지를 확인할 때의 시간의 개념입니다.
반면 카이로스는 시간의 어떤 특정 순간을 의미합니다. 크로노스가 양적이라면 크로노스는 질적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기회’와 같은 것입니다. 이를테면 하나님이 우리의 삶에 시간과 공간을 뚫고 임재하실 때, 한 영혼이 방황을 끝내고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 안에 들어갈 때의 개념입니다. 지금이 바로 그 때라는 의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본문은 세월이라고 번역을 했지만 기회라고 번역을 하면 좀 더 잘 이해됩니다. 역시 아끼라는 단어도 *ἐξαγοράζω(엨사고라조)* 라는 단어로 사다, 구하여 내다, 속량 하다 등의 의미입니다. 연결 지어 보면 ‘기회를 사라, 기회를 붙잡아라’라는 의미입니다.
정리해 보자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에 대해서는 지혜롭게 행하여 기회를 붙잡으라는 의미 입니다. 세월을 아끼라는 말보다는 조금 의미가 선명해졌지만 여전히 그렇게 행해야 할 목적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지혜로 행하라’는 말은 참 맞는 말인데 정말 어려운 말이기도 합니다. 지혜로 행하고 싶은 것은 모든 사람의 공통된 바람이지만 우리는 항상 지혜롭게 행동하지 못해서 후회하고 실수를 합니다. 그리고 역시 무엇에 대해서 지혜롭게 행동해야 하는지 더더욱 알아야 어떤 지혜를 발휘해야 하는지도 알 수 있습니다.
그다음 문장을 보면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음식을 만들 줄 아는 분들이라면 소금이 음식의 맛을 어떻게 변화시키는지 아실 것입니다. 우리 말에 ‘간’이 맞아야 음식이 맛이 있는 것 입니다. 간이 맞다는 것은 농도가 맞다는 말이고 이것이 맞지 않으면 싱겁다거나 짜게 됩니다. 즉, 소금은 음식의 맛을 내기도 하지만 다른 말로 음식에 들어간 재료 간의 ‘조화’를 이끌어내고 각각의 재료의 맛의 균형을 잡아주는 역할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말’도 그렇습니다. 어떤 말은 관계를 급속히 얼어붙게 만들고 어떤 말은 관계를 따뜻하게 해서 숨겨두었던 속 마음도 이끌어내게 합니다. 관계를 이어주기도 하고 차단하기도 하는 힘이 ‘말’ 속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을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는 것은 말을 잘해서 서로의 관계를 이어주고, 평화롭고 따뜻한 관계를 만들라는 의미입니다. 이 문장에서도 어려운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은 ‘은혜 가운데’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시간적으로 은혜가 있는 시간 사이에 서라는 의미고 공간적으로 우리 자신이 은혜 안에 들어가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이것 만으로도 한참을 묵상해야 할 것 같습니다.
은혜는 우리가 ‘은혜’라고 느끼는 감정의 상태 안에 들어가 있는 것을 말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시간이 지난 이후에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고백을 하는 깨달음과 인정의 상태를 말하는 것일까요? 은혜는 내가 느끼는 것일까요? 아니면 내가 느끼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 있다고 믿음으로 붙잡는 것일까요? 좋은 질문은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질문에서 공통적으로 변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입니다.
은혜는 나의 감정이나 이성에 따라 느끼기도 혹은 깨닫기도 반대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나의 감정이나 이성에 상관없이 하나님은 우리를 향하시고 있습니다. 그래서 여기에는 ‘믿음’이 필요합니다.
성경을 읽다 보면 믿음의 사람들은 일어난 일에 대해서 감사하기도 하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해서도 먼저 감사하는 모습을 발견합니다. 은혜라는 것이 느껴지지 않고 깨닫지 못한다 할지라도 믿음으로 내가 하나님을 붙잡으면 은혜가 우리에게 흘러오는 것 같습니다.
그러므로 항상 은혜 가운데서 하는 말은 하나님을 마음으로 붙잡고 말하라는 의미 같습니다. 그러면 모든 사람들에게 마땅히 대답할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소금으로 맛을 내듯이 대화를 잘해야 합니다. 항상 모든 대화에서 하나님을 믿음으로 붙잡고 어떻게 하면 비그리스도인인 저 사람과 화평을 이루고 따뜻한 관계를 만들지를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지혜롭게 행하는 것이고 믿지 않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기회를 잡는 길입니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 말씀을 읽으면 오늘 본문의 의미를 좀 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벧전3:15]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아직 해결하지 못한 내용이 있습니다. ‘목적’입니다. 무엇을 위해서 지혜롭게 말하고, 무엇을 위한 기회를 붙잡고, 무엇을 위해서 소금으로 맛을 내듯 말해야 하는 걸까요?
본문에 선명하게 그 의미가 나와 있지 않지만 그것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명시되어 있지 않다면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보편적인 내용이라 생각이 됩니다. 아마 여러분도 아시고 충분히 공감하는 부분입니다. 바울이 기도해 달라고 부탁했던 부분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복음입니다. 골로새교회는 복음이 희석되는 어려움 가운데 있습니다. 내부적으로는 여러 가지 잘못된 이단 사상이나, 철학, 종교 등이 들어와 예수님이 그리스도시라는 본질을 흐리고 밖에서는 그런 교회에 대한 편견과 차별의 두터운 벽이 쌓여가고 있습니다. 그런 가운데 내부적으로는 예수님이 그리스도 시다는 것이 선명하게 세워져야 하고 교회 밖으로도 이 복음이 흘러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그리스도인은 소금과 같은 말을 해야 하고, 복음을 전할 기회를 지혜롭게 만들어가야 합니다. 바울이 하고 있는 일이 그 일이고 오늘 우리가 행해야 할 일도 이 일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들.
1. 누군가와의 대화에서 복음을 전할 기회를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까?
2. 소금과 같은 말을 하기에 스스로 가장 어려운 부분은 무엇입니까?
3. 마땅히 대답해야 할 것을 알게 된 경험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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