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1:24~31 사람을 창조하시다

by 기대어 보기를 2025. 10. 23.

[창1:24-31]
24 하나님이 이르시되 땅은 생물을 그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25 하나님이 땅의 짐승을 그 종류대로, 가축을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을 그 종류대로 만드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26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들로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28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하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29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 거리가 되리라
30 또 땅의 모든 짐승과 하늘의 모든 새와 생명이 있어 땅에 기는 모든 것에게는 내가 모든 푸른 풀을 먹을 거리로 주노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
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신 여섯째 날의 기록입니다. 여섯째 날에는 크게 두 가지를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는 땅 위에 기는 모든 종류의 짐승을 만드셨습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26절에 땅의 짐승, 가축, 땅의 기는 모든 것을 구분했습니다. 이 부분에서 눈에 들어오는 단어는 ‘가축’입니다. ‘집짐승’입니다. 소나 양이나 염소처럼 인간이 관리해서 다양한 생산적인 일들을 해나가는 짐승입니다.

그런데 궁금증이 생깁니다. 처음부터 소나 양이나 염소들을 하나님이 가축으로 만드셨을까? 아니면 인간이 문화명령에 따라 동물들을 다스리고 살아가는 과정에서 길들이고 가축을 삼은 것일까요?

저는 가축이라는 표현은 유목생활을 하며 가축을 기르고 돌보는 삶을 살았던 족장들의 시대로부터 이어진 이스라엘 백성들의 문화 속에 나온 표현이라고 봅니다.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문화적 토양 위에서 쓰인 것임을 생각해 볼 수 있는 토막입니다. 

여섯째 날의 또 하나의 창조는 바로 사람의 창조입니다. 사람의 창조에는 지금까지와는 다른 다양한 내용들이 나옵니다. 사람이 얼마나 특별한 존재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부분입니다. 

26절에 하나님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사람을 만들자’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란 ‘하나님’ 자신을 의미하는데 ‘우리’라는 복수의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신비를 들여다볼 수 있는 부분입니다. 성경에는 직접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에 대한 내용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성경 속에는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삼위일체이신 하나님임을 알 수 있는 말씀들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은 자신을 ’우리‘라는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 2절에도 ’하나님의 영‘이 나오는데 이 ’영‘은 [רוּחַ(루아흐)]로 하나님의 영, 성령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태초의 시간을 기록한 요한복음에는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λόγος(로고스)]로 말씀이라는 의미인데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고, 만물이 말씀으로 창조되었고 그 말씀 안에 생명이 있었고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입니다. 그리고 세례 요한이 이 빛에 대해 증언하러 왔고 요한이 증언한 빛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라는 말 안에는 하나님, 성령님, 예수님이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입니다. 다시 인간의 창조하신 말씀을 보겠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은 인간을 창조할 때 하나님의 형상과 하나님의 모양을 따라서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이 형상과 모양의 의미는 다양하게 확장될 수 있겠지만 우선 언어의 뜻으로 살펴보면 형상은 [צֶלֶם(첼렘)]으로 ’우상‘ 즉, 하나님의 모양이나 형상을 의미하고 모양은 [דְּמוּת(테무트)]로 닮은 꼴, 비슷한 모양을 의미합니다. 

이 말씀 만으로 하나님이 사람을 얼마나 특별한 존재로 창조하셨는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부모가 자신과 닮은 자녀를 낳고 그 자녀를 사랑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인간을 그렇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신 이 기사는 조금 더해진 이야기로 2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창2:7-8]
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이 장면도 정말 특별합니다. 상상을 해 봅니다. 하나님께서 부드러운 흙을 손으로 만지시며 마치 진흙으로 무언가를 빚어내듯이 사람의 모양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의 모양을 닮은 사람의 형체를 만드셨습니다. 그때의 하나님은 전능하신 예술가이시며 아이가 태어남을 기다리는 부모의 설렘과 감동의 마음 이셨을 것입니다. 

그렇게 직접 흙을 빚어 사람의 모양을 만드시고 그 코에 하나님의 생기 [נְשָׁמָה(네샤마)]호흡, 정신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러자 사람은 생령[נֶפֶשׁ(네페쉬)]호흡하는 즉, 살아있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3장 19절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창3:19] 네가 흙으로 돌아갈 때까지 얼굴에 땀을 흘려야 먹을 것을 먹으리니 네가 그것에서 취함을 입었음이라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 하시니라

사람은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즉, 하나님은 흙을 빚어서 그 코에 생기를 불어넣어 사람을 숨 쉬는 살아있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그 숨이 떠나 생명이 다하면 원래 흙이었기 때문에 흙으로 돌아간다는 의미입니다. 

이 지점에서 사람에게 하나님은 어떤 존재인지를 다시 한번 느끼게 됩니다. 우리가 육신의 생명으로 이 땅을 살아가고 있지만 우리에게 하나님이 없으면 그 실상은 살아 있는 존재라 할 수 없습니다. 

결국에는 호흡이 끝나면 흙으로 돌아가는 원래 흙이었으니 흙인 그런 존재일 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생기가 불어넣어진 흙은 호흡하는 생명을 가진 존재인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사는 세대에 창조의 흔적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여전히 창조의 원리는 그대로인 것 같습니다. 살아 있으나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영적으로는 흙인 상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있는 인생은 생명의 인생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이신 것 입니다. 

우리는 너무나 특별한 사랑을 받은 존재이면서도 동시에 하나님 없이는 흙인 존재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사람은 어떤 부분에서 하나님을 형상을 닮았다고 생각하십니까?
2.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사람은 어떤 삶을 살아야 한다고 생각하십니까?

728x90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