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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30:22~24 “라헬이 요셉을 낳다”

by 기대어 보기를 2026. 3. 6.

[창30:22-24]
22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의 소원을 들으시고 그의 태를 여셨으므로
2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이르되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하고
24 그 이름을 요셉이라 하니 여호와는 다시 다른 아들을 내게 더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라헬이 보입니다. 어떤 여인이었을까요? 

 

지금까지 말씀을 보며 유추해 볼 수 있는 라헬은 이렇습니다. 우선 외모로는 미인인 것 같습니다. 아름다운 외모를 지녔습니다. 그러면서도 험한 일도 잘해 내었던 것 같습니다. 야곱이 처음 라헬을 만났을 때 라헬은 아버지의 가축을 먹이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여성과 남성 구분 없이 목자의 일을 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여성으로서 쉽지 않은 일이라고 생각이 됩니다. 그런 일을 했던 여인입니다. 

 

반면에 신앙적으로는 물음표입니다. 레아는 눈물로 기도하는 모습이 종종 보인다면 라헬은 그런 모습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이후의 이야기를 봐도 라헬은 샤머니즘적인 신앙관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래서 레아의 합환채를 탐냈습니다.

 

라헬은 레아를 경계했고 시기했습니다. 그 이유는 아이를 낳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 부분에서 언니인 레아와 비교되어서 불안감이나 위기감을 가졌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참 아이러니합니다. 라헬이 레아를 시기했던 이유는 레아가 야곱의 아들들을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레아는 행복했을까라고 질문해 보면 그렇지 않았습니다. 레아는 야곱의 아들들을 낳았지만 늘 불안했고 외로웠습니다. 그 이유는 야곱의 사랑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더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라헬은 야곱의 아이를 낳은 레아를 시기했고, 레아는 야곱의 사랑을 받는 라헬을 부러워했습니다. 라헬은 레아를 부러워하고 레아도 라헬을 부러워한 것입니다.

 

제 자신이 그런 것 같습니다. 이미 가지고 있는 소중한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가지지 못한 다른 것을 원하고 갈망합니다. 그렇게 살아가니 늘 불안하거나 만족하지 못합니다. 때론 조급해하고 시기하고 탄식합니다. 자족하지 못하니 행복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어리석음이 반드시 나쁘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더 소중한 것을 발견할 기회가 있는 것이고 또 레아처럼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는 이유가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라헬과 같은 선택을 할 수도 있습니다. 라헬은 합환채를 원했습니다. 그 식물이 자신에게 행운 즉, 식물이 '사랑과 성적 매력'의 이미지가 있기에 아이를 갖게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흥미로운 지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입장에서 보면 역시 합환채는 사랑의 묘약같이 느껴질 것 같습니다. 

 

합환채는 원래 레아의 것 이었습니다. 레아의 소유 였습니다. 그런데 그것을 라헬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로 야곱의 아들을 낳게 됩니다. 이것만 보면 합환채가 원래 주인이었던 레아에게 아들을 낳게 해 준 것이 됩니다. 

 

그 합환채는 이제 라헬의 것 입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 라헬이 드디어 아이를 갖게 됩니다. 그러니 이 역시 누가 들으면 합환채의 마법이라고 할 만합니다. 

 

합환채는 진정으로 사랑의 묘약처럼 보여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은 분명하게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합환채가 아니라 하나님 입니다. 

레아의 태를 여신 것도 하나님이시고 레아의 기도에 응답하신 것도 하나님 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제 비로소 라헬을 돌아보십니다. 라헬의 소원을 들으십니다. 그리고 라헬의 태를 여십니다. 

 

그리하여 라헬은 드디어 아이를 갖게 되고 그 아이의 이름을 요셉이라고 부릅니다. 흥미롭게도 라헬은 아이를 갖게 되자 이런 고백을 합니다. 

 

"하나님이 내 부끄러움을 씻으셨다"

 

결혼한 여성으로써 아이를 갖지 못하는 것은 당시의 문화적 토양 위에서는 부끄러운 일 이었을 것입니다. 라헬은 그런 부끄러움을 하나님이 씻어주셨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있는 것 같습니다. 

 

라헬은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샤머니즘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 같습니다. 어쩌면 라헬은 합환채를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태를 열어 주신 것이라 믿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분별력 없는 우리 시대의 순전하지 못한 그리스도인을 보여주는 것 같습니다. 

 

또한 라헬은 하나님의 은혜에 만족함으로 응답하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라헬은 자신의 아들의 이름을 요셉이라고 지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그 요셉입니다. 

 

요셉 [요쎄프(יוֹסֵף)], 그 의미는 '그가 더할 것이다' 입니다. 즉, 라헬은 요셉을 시작으로 하나님이 자신에게 다른 아들을 더하기를 원한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보면 기대와 소망의 의미지만 어찌 보면 만족하지 못하고 더 갈망하는 모습이 보여 집니다.

 

갈팡질팡하는 우리 자신의 모습 같습니다. 

 

반면에 성경은 명확하게 말 합니다. 라헬이 아들을 갖게 된 것은 합환채 때문이 아니라 라헬의 간절한 마음을 아시는 하나님의 은혜로부터 이루어진 일 입니다. 

 

라헬은 언제 요셉을 잉태하게 된 것일까요? 시기적으로 보면 라헬이 레아로부터 합환채를 받은 직후는 아닙니다. 사실 합환채를 가져왔으나 라헬은 아이를 얻지 못했습니다. 대신 레아가 두 아들을 낳았습니다. 

 

아이를 갖고 싶은 마음에 합환채를 의지했을 수도 있으나 하나님의 일하심은 합환채의 가능성이 무너진 그 자리, 인간의 노력과 시도를 내려놓은 그 때에 시작하신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역시, 하나님이 ‘답’ 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본문에서 만날 수 있는 하나님은 어떤 분인것 같습니까?
  2.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합환채와 같이 생각하는 것이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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