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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30:25~36 “야곱의 계획”

by 기대어 보기를 2026. 3. 7.

[창30:25-36]
25 라헬이 요셉을 낳았을 때에 야겁이 라반에게 이르되 나를 보내어 내 고향 나의 땅으로 가게 하시되
26 내가 외삼촌에게서 일하고 얻은 처자를 내게 주시어 나로 가게 하소서 내가 외삼촌에게 한 일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27 라반이 그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너로 말미암아 내게 복 주신 줄을 내가 깨달았노니 네가 나를 사랑스럽게 여기거든 그대로 있으라
28 또 이르되 네 품삯을 정하라 내가 그것을 주리라
29 야곱이 그에게 이르되 내가 어떻게 외삼촌을 섬겼는지, 어떻게 외삼촌의 가축을 쳤는지 외삼촌이 아시나이다
30 내가 오기 전에는 외삼촌의 소유가 적더니 번성하여 떼를 이루었으니 내 발이 이르는 곳마다 여호와께서 외삼촌에게 복을 주셨나이다 그러나 나는 언제나 내 집을 세우리이까
31 라반이 이르되 내가 무엇으로 네게 주랴 야곱이 이르되 외삼촌께서 내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아도 나를 위하여 이 일을 행하시면 내가 다시 외삼촌의 양 떼를 먹이고 지키리이다
32 오늘 내가 외삼촌의 양 떼에 두루 다니며 그 양 중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과 검은 것을 가려내며 또 염소 중에 점 있는 것과 아롱진 것을 가려내리니 이같은 것이 내 품삯이 되리이다
33 후일에 외삼촌께서 오셔서 내 품삯을 조사하실 때에 나의 의가 내 대답이 되리이다 내게 혹시 염소 중 아롱지지 아니한 것이나 점이 없는 것이나 양 중에 검지 아니한 것이 있거든 다 도둑질한 것으로 인정하소서
34 라반이 이르되 내가 네 말대로 하리라 하고
35 그 날에 그가 숫염소 중 얼룩무늬 있는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암염소 중 흰 바탕에 아롱진 것과 점 있는 것을 가리고 양 중의 검은 것들을 가려 자기 아들들의 손에 맡기고
36 자기와 야곱의 사이를 사흘 길이 뜨게 하였고 야곱은 라반의 남은 양 떼를 치니라
37 야곱이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내고
38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 구유에 세워 양 떼를 향하게 하매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니
39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은지라
40 야곱이 새끼 양을 구분하고 그 얼룩무늬와 검은 빛 있는 것을 라반의 양과 서로 마주보게 하며 자기 양을 따로 두어 라반의 양과 섞이지 않게 하며
41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야곱이 개천에다가 양 떼의 눈 앞에 그 가지를 두어 양이 그 가지 곁에서 새끼를 배게 하고
42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아니하니 그렇게 함으로 약한 것은 라반의 것이 되고 튼튼한 것은 야곱의 것이 된지라
43 이에 그 사람이 매우 번창하여 양 떼와 노비와 낙타와 나귀가 많았더라




야곱이 레아와 라헬을 아내로 얻으면서 약속한 기간이 다 된 것 같습니다. 야곱은 라헬을 위해 7년, 또다시 라헬을 위해 7년을 위해 라반의 가축을 돌보는 일을 했습니다. 

라헬을 위해 14년을 종살이 했습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라헬을 위한 7년의 대가로 라반이 라헬을 야곱에게 아내로 준 것이 아니라 레아를 주었고, 다시 라헬을 아내로 얻기 위해 7년을 더 일하라 했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외삼촌인 라반에게 속아서 7년을 더 일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때가 되었습니다. 그 사이에 야곱은 레아와 라헬 그리고 그녀들의 종들을 통해 아들들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야곱이 열심히 일한 결과 라반의 소유는 번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어떤 일이 있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야곱은 삯도 받지 못하고 일을 했었습니다. 그간 야곱은 속상한 일도 많았던 것 같았습니다. 약속한 기간이 끝나기를 손꼽아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어 야곱은 아내들과 자녀들을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습니다. 

라반은 야곱을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간 야곱의 덕을 톡톡히 보았기 때문입니다. 야곱을 통해 라반은 이전보다 훨씬 부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라반은 야곱에게 제안합니다. 품삯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라반은 무엇을 주었으면 좋겠냐고 묻습니다. 라반이 야곱에게 호의를 베푸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 표현의 속내는 야곱을 붙잡고 싶은 마음입니다. 

외삼촌 라반의 제안에 야곱도 제안합니다. 

이 약속을 지키면 라반의 집에 머물면서 이전처럼 계속 일을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이란

1) 양 떼 중 아롱진 것
2) 양 떼 중 점 있는 것
3) 양 떼 중 검은 것
4) 염소 떼 중 아롱진 것
5) 염소 떼 중 점 있는 것

은 품삯으로 달라는 것입니다. 

야곱의 제안에서 아롱진 것은 [נָקֹד(나코드)]로 점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는 점 있는 것과 구분됩니다. 점 있는 것은 [טָלָא(탈라)]로 헝겊을 기우다, 조각나있다는 의미로 커다란 반점을 의미합니다. 반면 아롱진 것은 바늘로 콕콕 찌른 듯이 작은 점들이 있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 검은 것 [חוּם(훔)]으로 검거나 거무스레한 색을 의미합니다. 

이것들은 모두 흠이 있는 가축으로 가치가 떨어집니다. 야곱은 그것을 자신에게 달라고 했습니다. 

어찌 보면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양 떼와 염소 떼 중 좋은 것은 외삼촌의 소유로, 흠이 있는 것은 자신의 소유로 삼겠다는 것입니다. 라반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모습 같아 보입니다. 그러나 야곱이 어떤 사람입니까? 인간적인 계산이 빠른 사람입니다. 그러니 여기에는 숨은 의도가 있습니다. 

우선 라반에게 좋은 것을 양보하는 제안으로 라반을 기분 좋게 하고 라반이 이 제안을 받아들이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다음은 자신의 소유를 늘리려는 계략입니다. 

야곱의 제안을 라반은 흔쾌히 수락했습니다. 그리고 흠이 없는 양과 염소는 라반이 자신의 아들들에게 맡기고 야곱이 제안한 아롱진 것, 점 있는 것, 검은 것들은 야곱이 가졌습니다. 

야곱과 라반은 사흘 길 정도의 거리를 두고 각자의 양 떼를 길렀습니다. 

그리고 아주 흥미로운 일이 벌어집니다. 

야곱은 버드나무와 살구나무와 신풍나무의 푸른 가지를 가져다가 그것들의 껍질을 벗겨 흰 무늬를 냅니다. 그리고 그 껍질 벗긴 가지를 양 떼가 와서 먹는 개천의 물구유에 세워 놓아 양 떼를 향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떼가 물을 먹으러 올 때에 새끼를 배었는데 그 가지 앞에서 새끼를 배므로 얼룩얼룩한 것과 점이 있고 아롱진 것을 낳았습니다. 

야곱은 태어나는 양 떼를 구분했습니다. 자신의 양 떼의 조건에 맞는 것과 라반의 조건에 맞는 양 떼를 두었습니다. 

야곱은 튼튼한 양이 새끼 밸 때에는 개천에 그 가지를 두고 약한 양이면 그 가지를 두지 않았습니다. 

결국 야곱의 양 떼는 매우 번성하였습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야곱은 어떤 주술적인 혹은 토속신앙적인 일을 했습니다. 지금도 태교의 과정 중에 사람들이 의미를 두는 것 중에 아이를 가진 엄마가 무엇을 보느냐가 중요하고 많이 그 보는 것이 아이에게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사실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그것처럼 고대 사회에도 그런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양이 새끼를 밸 때 그 앞에 흰 것과 검은 얼룩이 있는 나뭇가지를 보여줍니다. 그게 어떤 효과가 있는지 모르지만 결과적으로 야곱이 기대했던 대로 이루어진 것 같습니다. 

다시 한번 질문하게 됩니다. 이것이 무엇일까요? 야곱은 간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언급합니다. 그걸 보면 하나님을 잊지 않고 살아가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이런 모습을 보면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 무엇인지에 대한 의문이 생깁니다. 

어쩌면 우리도 그런 것 같은 생각이 듭니다. 모든 것의 주관자는 하나님인데 살다 보니 사람들의 말, 풍습, 문화, 유행과 같은 것에 마음이 이끌립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사주나 관상, 손금, 타로, 점 등을 보고 종교적인 것이 아니더라도 혈액형과 같은 것에 솔깃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봅니다. 

문제는 그런 것들이 허무맹랑하지는 않다는 것입니다. 맞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에 사람들은 거기에 미혹됩니다. 그런 부분에 대해 심리학에서는 몇 가지 이유를 내놓기도 합니다. 바넘 효과, 확증 편향, 자기 충족적 예언 등의 어려운 말이 있지만 저도 잘 알지 못합니다. 

다만 중요한 지점이 있습니다. 그 모든 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에서 등을 돌리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야곱이 자신의 소유가 많아지기를 원했다면 다른 방법은 없었을까요?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방법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 안에서 풀어낼 수 있는 방법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어떤 방법, 어떤 기술, 어떤 미신과 같은 것에 집중할 때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하나님으로부터 등을 돌리게 됩니다. 하나님이 부재한 삶을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결과가 중요하겠지만 결과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야곱은 결국 자신의 소유를 늘렸지만 그만큼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일들을 더 많이 쌓아놨을 뿐인 것입니다. 

우리도 늘 이 문제로 고민합니다. 문제의 해결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가 해법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혹시 나에게 있는 야곱의 나뭇가지와 같은 것은 무엇입니까?

2. 라반은 불의했습니다. 그런 라반을 다루시는 하나님은 때론 아무것도 하시지 않는 것 처럼 보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신뢰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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