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0:14-21]
14 밀 거둘 때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어 그의 어머니 레아에게 드렸더니 라헬이 레아에게 이르되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를 청구하노라
15 레아가 그에게 이르되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 라헬이 이르되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하니라
16 저물 때에 야곱이 들에서 돌아오매 레아가 나와서 그를 영접하며 이르되 내게로 들어오라 내가 내 아들의 합환채로 당신을 샀노라 그 밤에 야곱이 그와 동침하였더라
17 하나님이 레아의 소원을 들으셨으므로 그가 임신하여 다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18 레아가 이르되 내가 내 시녀를 내 남편에게 주었으므로 하나님이 내게 그 값을 주셨다 하고 그의 이름을 잇사갈이라 하였으며
19 레아가 다시 임신하여 여섯째 아들을 야곱에게 낳은지라
20 레아가 이르되 하나님이 내게 후한 선물을 주시도다 내가 남편에게 여섯 아들을 낳았으니 이제는 그가 나와 함께 살리라 하고 그의 이름을 스불론이라 하였으며
21 그 후에 그가 딸을 낳고 그의 이름을 디나라 하였더라

밀을 거둘 때에 르우벤이 나가서 들에서 합환채를 얻었습니다.
르우벤은 레아의 장남, 야곱의 첫째 아들입니다.
합환채란 [דּוּדָאִים(두다임)]이라는 것으로 ‘사랑’을 의미하는 식물입니다. 아가서 7장에도 이 식물이 언급됩니다.
[아7:13] 합환채가 향기를 뿜어내고 우리의 문 앞에는 여러 가지 귀한 열매가 새 것, 묵은 것으로 마련되었구나 내가 내 사랑하는 자 너를 위하여 쌓아 둔 것이로다
이 사랑의 식물은 고대 근동에서는 최음제나 수태를 돕는 마법적 효능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 합환채는 밀 수확기인 5~6월경 노란 열매를 맺고 향을 내뿜습니다.
이 식물은 ‘만드라고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가짓과에 속하는 식물이며 이스라엘이나 요르단에 자생합니다. 그 뿌리가 사람처럼 생겼다고 하는데 가지가 많은 더덕이나 인삼 형태입니다. 중세에는 비명을 지르는 식물이라는 이미지가 붙어 해리포터와 같은 소설 속에서도 신비한 식물로 등장합니다.
르우벤은 이 합환채를 어머니인 레아에게 가지고 옵니다. 그런데 라헬이 그 합환채를 보고 레아에게 르우벤이 얻은 합환채를 자신에게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레아는 라헬에게 “네가 내 남편을 빼앗은 것이 작은 일이냐 그런데 네가 내 아들의 합환채도 빼앗고자 하느냐?”라며 라헬의 말에 불편한 기색을 보입니다.
어쩌면 이 부분에서 조금 놀랄 수 있습니다. 저 역시도 그렇습니다. 우리는 야곱이 누구를 사랑했고 누구와 결혼하기 위해서 라반을 도와 일하며 살았는지 알고 있습니다.
바로 라헬입니다.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고 라헬과 결혼하기 위한 조건으로 일을 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운명의 결혼식 날 신부가 바뀌었습니다. 물론 7일 후에 라헬을 아내로 맞이했으나 문제는 법적인 부분입니다.
야곱이 실제로 사랑하고 아내로 맞이한 사람은 라헬입니다. 그러나 법적으로 야곱의 첫째 아내는 레아가 맞습니다. 그러니 레아는 첫째 부인이라는 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야곱은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레아는 지금까지 야곱의 실제적인 사랑에 목말랐었습니다.
그런 배경 속에서 나온 말입니다. 야곱은 자신의 남편이고 자신이 야곱의 첫째 아내인데 그런 야곱을 라헬이 빼앗아갔다는 것입니다.
레아의 말을 들은 라헬은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그러면 언니의 아들의 합환채 대신에 오늘 밤에 내 남편이 언니와 동침하리라”
당시의 상황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라헬은 확실히 야곱의 사랑을 받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레아는 아이들을 돌보며 홀로 자신의 거처에서 지내는 시간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라헬의 제안을 레아는 받아들였습니다. 그렇게 해서라도 야곱과 함께하고 싶은 레아의 모습이 애처롭게 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참 재미있습니다. 합환채는 사랑의 식물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런 전설과 의미들이 붙어 있습니다. 그래서 라헬이 그것을 탐냈습니다. 그런데 그 합환채의 소유자는 레아입니다. 그리고 레아는 그것을 라헬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대가로 야곱과 함께할 수 있었습니다.
결론적으로 합환채는 사랑의 식물이 맞는 것 같습니다. 그것을 통해 야곱과 함께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일로 인해 레아는 또 아이를 갖게 됩니다.
레아의 다섯 번째 아들은 잇사갈입니다. [יִשָּׂشׂכָר(잇사카르)]라는 이름의 의미는 보상입니다. 그가 보상해 줄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합환채 사건을 생각해보면 귀한 합환채를 라헬에게 주었습니다. 귀한 것을 잃었지만 하나님께서 보상해 주시겠다는 의미를 담아 잇사갈이라 이름을 지은 것 같습니다.
레아는 또 아이를 가졌습니다.
레아의 여섯 번째 아들은 스불론입니다. [זְבוּלוּן(제불룬)]이라는 의미는 ‘거주’라는 의미로 이제 6의 아들을 낳았으니 야곱이 자기와 함께 살게 될 것이라는 희망을 담아 이름을 붙인 것 같습니다. 여섯의 아이를 낳았으니 실제적인 야곱 가문의 안주인이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레아의 아이들 중 유일하게 딸이 등장합니다. 어쩌면 더 많은 딸들이 있을 수 있으나 언급된 것은 유일하게 ‘디나’뿐입니다. [דִּינָה(디나)]는 ‘재판’을 의미하는 [דִּ인(딘)]의 여성형입니다.
그래서 심판이나 판결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런 관점이 맞는지는 잘 모르겠으나 레아는 지금까지의 과정에서 사랑받지 못함에서 오는 인간적인 외로움과 법적 지위를 가지고 있으나 실제적인 영향력에 있어서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하며 디나까지 7의 자녀를 낳으면서 어쩌면 자신의 존재에 대해 판결을 내렸던 것 같습니다. 야곱의 아내로, 야곱 가문의 첫째 부인으로서 그 권리와 의미를 확정 지은 것 같습니다.
물론, 디나는 이후에 그 이름처럼 이스라엘 역사의 역사적 판결에 대한 중요한 사건이 일어납니다.
여전히 이 이름들 속에서 의미를 찾아봅니다. 우리는 사랑을 늘 간구하고 살아갑니다. 때로는 사랑받지 못한 것 같은 감정이나 상황에 불안해하고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레아처럼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레아의 자녀의 이름 속에서 우리 삶의 태도를 묵상해 봅니다. 레아는 합환채의 대가로 어떤 보상을 원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아들을 낳게 해주심으로 보상했다고 생각한 것 같습니다. 이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기대하는 기대감 같습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보상이 있을 것이란 생각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기쁨의 단을 거둘 생각을 하며 지금 눈물로 씨를 뿌리는 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입니다. 이것은 자연스러우며 나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한 번 생각해 봐야 할 지점은 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보상받기 원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기대해야 할 보상은 무엇일까요?
어떤 보상을 기대하는 심리는 기대하는 것의 결핍에서 오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생각해보니 보상심리를 넘어 걱정하지 않고 평안할 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건 관계인 것 같습니다. 어린아이가 엄마 품에 안겨 있을 때 모든 것이 충분하듯이 우리의 삶도 하나님의 품에 안기는 관계 안에 있다면 그것만으로 결핍은 문제가 되지 않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품 안에 거하는 것이니까요…
[묵상을 위한 질문]
1. 삶에서 보상받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2. 하나님과의 관계안에서 평안을 느낀 경험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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