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1:19] 그 때에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갔으므로 라헬은 그의 아버지의 드라빔을 도둑질하고
[창31:30] 이제 네가 네 아버지 집을 사모하여 돌아가려는 것은 옳거니와 어찌 내 신을 도둑질하였느냐
[창31:32-35]
32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우리 형제들 앞에서 무엇이든지 외삼촌의 것이 발견되거든 외삼촌에게로 가져가소서 하니 야곱은 라헬이 그것을 도둑질한 줄을 알지 못함이었더라
33 라반이 야곱의 장막에 들어가고 레아의 장막에 들어가고 두 여종의 장막에 들어갔으나 찾지 못하고 레아의 장막에서 나와 라헬의 장막에 들어가매
34 라헬이 그 드라빔을 가져 낙타 안장 아래에 넣고 그 위에 앉은지라 라반이 그 장막에서 찾다가 찾아내지 못하매
35 라헬이 그의 아버지에게 이르되 마침 생리가 있어 일어나서 영접할 수 없사오니 내 주는 노하지 마소서 하니라 라반이 그 드라빔을 두루 찾다가 찾아내지 못한지라

라헬은 아버지 라반이 양털을 깎으러 떠난 사이에 아버지의 드라빔을 훔칩니다.
드라빔은 [תְּרָפִים(테라핌)]으로 우상입니다. 이는 [רָפָא(라파)]라는 단어에서 유래된 것으로 '치료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단어의 의미로 본다면 집안의 질병이나 불운으로부터 지켜주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게 해주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서 두고 있는 우상인 것 같습니다.
라헬은 그것을 훔쳤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라헬의 진짜 속마음은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상은 하나님께서 절대적으로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밖에 없고 하나님만으로 모든 것이 충분하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런데 라헬은 그 드라빔을 훔쳤습니다. 그것이 탐났던 것일까요? 그것에 어떤 특별한 능력이 있다고 여기는 것일까요? 라반은 그랬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집안에 그걸 모셔두고 있었습니다. 야곱을 추격했던 또 하나의 이유가 드라빔 때문이었습니다.
라반에게 그것은 중요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야곱에게 화를 냈고 자신의 두 딸의 거처를 뒤져 그것을 찾으려 했습니다. 사실 아버지로서 딸이 자신의 것을 훔쳐갔다고 생각하며 그것을 찾는 것은 명예롭지 못한 일입니다. 그러나 기꺼이 그 명예롭지 못한 일을 했습니다. 이유는 그것이 소중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드라빔은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라헬이 잘 숨겨 두었습니다. 들키지 않고 무사히 넘어갔을 때 라헬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안도감도 있었겠지만 어쩌면 드라빔을 가지고 있으니 위기로부터 보호받았다고 느꼈을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드라빔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지를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드라빔 사건으로 인해 야곱은 말의 실수를 합니다.
“외삼촌의 신을 누구에게서 찾든지 그는 살지 못할 것이요”
드라빔은 ’건강과 보호‘의 의미가 있는 물건 같은데 야곱의 말은 그것을 훔친(소유한) 사람은 죽게 될 것이라 말합니다. 그것은 말의 실수인 것은 맞으나 정말 아이러니한 일이 벌어집니다. 야곱의 가족 중 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하는 사람이 라헬입니다. 이후 라헬은 베냐민을 낳다가 산고로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야곱의 말 때문이었을까요? 또 반면에 드라빔을 소유한 사람은 보호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어찌 그것을 소유한 라헬이 제일 먼저 죽음을 맞이하게 된 것일까요?
드라빔의 거짓됨과 어리석음은 라반이 드라빔을 찾는 순간에도 드러납니다. 라헬이 드라빔을 숨겼습니다. 낙타의 안장 밑에 숨겼습니다. 그리고 라헬이 그 위에 앉았습니다. 라헬은 자신이 경수가 났다고 말합니다. 사실인지 거짓인지 알 수 없으나 그 모양이 어떻습니까? 신비로운 능력이 있다는, 누군가에게는 신으로 여겨서 모시고 있는 그 우상이 안장 밑에 있고, 경수가 난 여성이 깔고 앉았습니다. 그것이 우상의 실체입니다.
아무런 능력도 없습니다. 그것이 나무를 깎아 만든 것이면 그냥 나무토막이고 돌을 깎아 만든 것이면 그냥 돌덩이입니다. 생명도 없고 말도 하지 못하고 아무런 능력도 행하지 못합니다. 치료하고 보호해준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으나 오히려 그것이 죽음을 가져왔습니다.
혹 우리는 드라빔과 같은 것을 가지고 있지 않을까요? 귀중하게 생각하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들이 있지 않을까요? 생각해보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또 생각해보면 그런 것들이 오늘 말씀 속 드라빔과 같은 효능이 있습니다. 내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돈’이라고 해 보겠습니다. ‘돈’은 이 시대의 모든 사람에게 ‘우상’이라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돈 때문에 화가 나거나, 실망하거나, 절망하거나, 짜증이 나기도 합니다. 예민해지고 그것으로 누군가에게 분노를 표출하거나 좋지 않은 감정을 쏟아내기도 합니다.
돈만 그런 것은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모든 우상과 같은 것들은 그런 역기능이 있습니다. 그런데 생각을 전환해서 우상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면 어떨까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면 화도 실망도 절망도 짜증도 다 녹아내립니다.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남는 것은 감사뿐입니다. 은혜뿐입니다.
그러니 답은 분명합니다. 드라빔을 마음에 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품어야 하는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나에게 드라빔과 같은 것은 무엇일까요?
- 나에게 있는 드라빔을 내려놓고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에 있어서 어려운 점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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