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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31:43~55 “증거의 무더기”

by 기대어 보기를 2026. 3. 13.

[창31:43-55]
43 라반이 야곱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딸들은 내 딸이요 자식들은 내 자식이요 양 떼는 내 양 떼요 네가 보는 것은 다 내 것이라 내가 오늘 내 딸들과 그들이 낳은 자식들에게 무엇을 하겠느냐
44 이제 오라 나와 네가 언약을 맺고 그것으로 너와 나 사이에 증거를 삼을 것이니라
45 이에 야곱이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46 또 그 형제들에게 돌을 모으라 하니 그들이 돌을 가져다가 무더기를 이루매 무리가 거기 무더기 곁에서 먹고
47 라반은 그것을 여갈사하두다라 불렀고 야곱은 그것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니
48 라반의 말에 오늘 이 무더기가 너와 나 사이에 증거가 된다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갈르엣이라 불렀으며
49 또 미스바라 하였으니 이는 그의 말에 우리가 서로 떠나 있을 때에 여호와께서 나와 너 사이를 살피시옵소서 함이라
50 만일 네가 내 딸을 박대하거나 내 딸들 외에 다른 아내들을 맞이하면 우리와 함께 할 사람은 없어도 보라 하나님이 나와 너 사이에 증인이 되시느니라 함이었더라
51 라반이 또 야곱에게 이르되 내가 나와 너 사이에 둔 이 무더기를 보라 또 이 기둥을 보라
52 이 무더기가 증거가 되고 이 기둥이 증거가 되나니 내가 이 무더기를 넘어 네게로 가서 해하지 않을 것이요 네가 이 무더기, 이 기둥을 넘어 내게로 와서 해하지 아니할 것이라
53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하매 야곱이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하고
54 야곱이 또 산에서 제사를 드리고 형제들을 불러 떡을 먹이니 그들이 떡을 먹고 산에서 밤을 지내고
55 라반이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손자들과 딸들에게 입맞추며 그들에게 축복하고 떠나 고향으로 돌아갔더라


 

 

야곱은 기둥을, 라반과 형제들은 돌무더기를 쌓았습니다. 그것은 그 이름의 의미대로 증거가 되는 무더기였습니다. 라반과 야곱은 그곳에서 언약을 세웠습니다. 

 

라반은 이 무더기를 넘어 야곱에게로 가서 해하지 아니하고 야곱도 이 무더기를 넘어 라반에게 와서 해하지 아니하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라반은 이렇게 말합니다. 

 

“아브라함의 하나님, 나홀의 하나님, 그들의 조상의 하나님은 우리 사이에 판단하옵소서”

 

이에 야곱은 그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이를 가리켜 맹세합니다. 아마 ”나의 아버지 이삭이 경외하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오니 결코 언약을 변개치 않을 것입니다.“

 

그렇게 라반과 야곱은 증거의 무더기를 놓고 평화를 맹세했습니다. 그리고 음식을 준비하고 서로 함께 먹고 다음 날 라반은 손자들과 딸에게 입을 맞추고 축복하며 서로의 길을 떠납니다.

 

증거의 무더기를 묵상해 봅니다. 이것은 라반과 야곱의 평화의 언약의 증거가 되는 돌무더기입니다. 그와 같은 언약을 세웠다는 증거이기도 하고 계속해서 기억하기 위해 만든 돌무더기입니다. 

 

이 무더기가 지닌 의미가 무엇일까요? 사실 말씀을 읽고 묵상하면서 가졌던 의문들은 다 풀리지 않았습니다. 라반의 말, 야곱의 말, 그 진실에 대해서 우리는 여전히 알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이 돌무더기를 쌓음으로 그 모든 것들을 이 돌로 다 덮어 버린 것 같습니다. 

 

누구의 잘잘못이나 진실의 내막을 밝히는 것이 아니라 이 돌무더기를 바라보며 서로 평화를 약속한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보면 오늘 우리의 삶에도 이 돌무더기 같은 것이 있는지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늘 오해하고, 또 자기방어를 하면서 거짓을 섞고, 때로는 공격적으로 남 탓을 하거나 상황을 탓하며 불신과 갈등을 만들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이런 돌무더기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나 생각해 봅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있습니다. 

 

돌무더기는 어떤 의미로 보면 무덤입니다. 과거의 일들을 그 아래 깔아 놓고 돌로 묻어 버리고 기둥을 세워 놓은 일종의 무덤입니다. 

 

우리에게 그런 무덤이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세워진 무덤입니다. 과거의 나는 예수님과 함께 죽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가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주 그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과거의 우리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습니다. 그러고 보면 우리에게 있는 증거의 무더기는 십자가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우리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 하셨던 것일까요? 과거의 나는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는 사실을 어깨에 짊어짐으로 증거를 삼고 다시는 과거로 넘어가 죄악 된 삶을 살지 않겠다는 신앙의 증거를 삼으라는 것은 아닐까요?

 

라반과 야곱의 증거의 무더기를 보며 오늘 내가 누군가와의 사이에 세워야 할 평화의 십자가를 묵상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지금 세워 놓아야 할 평화의 십자가가 있습니까?
  2. 여러분의 어떤 부분이 이 증거의 돌무더기 안에 묻혀 있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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