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2:1-12]
1 야곱이 길을 가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를 만난지라
2 야곱이 그들을 볼 때에 이르기를 이는 하나님의 군대라 하고 그 땅 이름을 마하나임이라 하였더라
3 야곱이 세일 땅 에돔 들에 있는 형 에서에게로 자기보다 앞서 사자들을 보내며
4 그들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 주 에서에게 이같이 말하라 주의 종 야곱이 이같이 말하기를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5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하라 하였더니

야곱은 라반과의 언약 이후 가족들과 돌아가야 할 곳, 하나님께 돌아오겠다고 약속한 땅으로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그 가는 길에서 하나님의 사자들을 만났습니다. 정확히는 하나님의 사자들이 야곱을 만나러 왔습니다. 야곱의 눈에 그들은 하나님의 군대로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 만난 장소를 마하나임[מַחֲנַיִם(마하나임)]이라 불렀습니다. 마하나임은 군대 또는 사람들의 무리, 군인들이 거주하는 주둔지의 의미를 지닌 [מַחֲנֶה(마하네)]의 쌍수 형태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보면 이 일은 엄청난 일인데 아무런 내용이 없습니다. 야곱이 그들을 만나 무엇을 했는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들이 어떤 이유로 야곱에게 나타났는지 알 수 없습니다.
그리고 말씀은 전혀 다른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바로 에서의 이야기입니다. 성경은 야곱이 고향으로 가는 길이 순탄하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고향으로 가라고 말씀하셨고 그에 야곱이 순종한 길이지만 순탄하지 않은 여정이 앞에 놓여 있는 것입니다. 먼저 라반과의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번에는 또 하나의 거대한 장벽인 에서의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사실 야곱이 고향으로 돌아갈 때 가장 걸림돌이 되고 두려운 문제가 바로 에서입니다. 우리는 야곱이 어떤 과정에서 동방으로 왔는지 알고 있습니다. 아버지 이삭을 속이고 형 에서를 속이고 에서의 복을 차지하려고 했던 일의 결과입니다. 에서는 아버지 이삭이 돌아가시면 야곱을 죽이기로 계획하였기에 야곱은 살기 위해 도망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제 돌아갑니다. 그러니 도망쳐 나왔던 과거와 다시 마주하게 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에서에게로 사자들을 보냅니다.
에서는 세일 땅 에돔 들에 살고 있었습니다. 야곱은 사자들에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전하게 했습니다.
”내가 라반과 함께 거류하며 지금까지 머물러 있었사오며 내게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므로 사람을 보내어 내 주께 알리고 내 주께 은혜 받기를 원하나이다“
야곱이 전한 이 말에는 이런 의미가 있습니다. 야곱은 이전에 에서의 장자권을 샀고, 에서가 받을 장자의 축복을 가로챘습니다. 그래서 어쩌면 법적으로 야곱이 장자의 권한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기에 야곱은 고향으로 돌아가면 자신의 장자의 권리를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과거에는 에서가 두려워 도망쳤지만 지금은 야곱도 사자들을 부릴 수 있을 정도로 부자가 되었고 힘을 가지고 있으니 에서의 입장에서는 장자권을 빼앗으러 오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의도는 이미 소와 나귀와 양 떼와 노비가 있으니 장자의 권리, 아버지의 유산에는 관심이 없다는 것을 알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은혜를 입기를 원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 은혜는 [חֵן(헨)]인데 이는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베푸는 자비이며 선의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에서 앞에 돌아갈 자격이 없는 자이지만 자비와 호의를 베풀어 달라는 간청입니다.
다시 앞의 궁금한 지점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야곱은 사실 에서가 두려웠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 에서에게 사자를 보냅니다. 그 용기는 어디서 나왔을까요?
어쩌면 하나님의 군대를 만난 것 때문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그들을 만나 무엇을 했는지 성경은 침묵하고 있지만 그것은 분명 야곱에게 엄청난 위로와 힘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군대를 보내 가는 길을 호위하시고 지켜주신다는 것은 얼마나 큰 힘이 될까요?
하나님은 야곱에게 하나님의 군대를 통해 용기를 주셨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생각해 봅니다. 왜 용기를 주신 것일까? 에서가 강해서일까?
오늘 에서에게 은혜를 구하는 야곱의 모습에는 두려움이 역력하지만 한편으로는 과거의 자신의 잘못을 정면으로 맞이하려는 과정으로 보입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잘못을 하고 실수를 합니다. 누군가에 대해서도 잘못과 실수를 반복합니다. 그런데 그런 일들 속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과’인데 사실 우리는 사과를 잘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부끄러운 자신의 모습에서 도망치며 갈등의 구조와 관계 안에서 거리를 두고 살아갑니다. 그렇게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과거의 자신의 잘못을 직면하고 그 문제로 다시 들어가 회복하려는 시도를 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떠오릅니다.
[마5:23-24]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야곱이 지금 걸어가고 있는 일은 과거의 자신의 잘못을 마주하는 길이며 형인 에서에게 용서를 구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그런 결정을 하고 실행을 하는 사람의 길을 기뻐하시며 그 길에 용기를 주시는 분이라 생각이 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최근 용서를 구해야 할 사람이나 사건이 있었습니까?
2. 지금도 마주하지 못한 과거의 잘못은 무엇입니까?
3. 직면하기를 미뤄두고 있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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