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2:6-12]
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사백 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 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8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
9 야곱이 또 이르되 내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 내 아버지 이삭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 내게 명하시기를 네 고향, 네 족속에게로 돌아가라 내가 네게 은혜를 베풀리라 하셨나이다
10 나는 주께서 주의 종에게 베푸신 모든 은총과 모든 진실하심을 조금도 감당할 수 없사오나 내가 내 지팡이만 가지고 이 요단을 건넜더니 지금은 두 떼나 이루었나이다
11 내가 주께 간구하오니 내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나를 건져내시옵소서 내가 그를 두려워함은 그가 와서 나와 내 처자들을 칠까 겁이 나기 때문이니이다
12 주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네게 은혜를 베풀어 네 씨로 바다의 셀 수 없는 모래와 같이 많게 하리라 하셨나이다

야곱이 보낸 사자들이 에서를 만나고 야곱에게로 돌아왔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말을 듣게 됩니다.
에서가 400명을 거느리고 야곱을 만나러 온다는 것입니다.
야곱에게 그것은 어떻게 들렸을까요? 아브라함이 동방의 왕들과 전쟁을 치렀던 때가 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은 집에서 길린 자 318명을 데리고 전쟁에 나갔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은 동방 왕들의 연합군을 격파해버렸습니다. 400명이라는 숫자는 전쟁을 치를 수 있는 숫자입니다.
어느 누가 동생을 만나는데 400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가겠습니까? 그 숫자가 움직였다는 것은 전쟁을 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것 같습니다.
야곱은 말씀의 표현대로 심히 두렵고 답답했습니다.
자! 이제 야곱의 판단과 선택이 등장할 차례입니다. 정말 두렵고 어떻게 감당할 수 없을 것 같은 상황이 눈앞에 펼쳐질 것 같은 공포감 앞에 어떤 선택을 해야 할까요?
야곱은 이렇게 했습니다.
자신의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었습니다. 즉, 자신의 소유물과 사람을 나누었습니다. 그 이유는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도망가려는 계획입니다.
현명한 걸까요? 지혜로운 걸까요?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더 지혜로운 분들은 더 나은 대안을 찾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야곱은 이런 선택을 했지만 저 역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야곱의 선택 중 하나는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야곱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피해를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방법을 고안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얼마나 효력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더 효력이 없을 것 같지만 그 어떤 것도 할 수 없을 때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하나를 했습니다. 바로 하나님께 엎드리는 것입니다.
개역개정 번역은 의미를 이해하는 데 조금 거칠어서 새번역본으로 어떻게 기도했는지 보겠습니다.
[창32:9-12, 새번역]
야곱은 기도를 드렸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고향 친족에게로 돌아가면 은혜를 베푸시겠다고 저에게 약속하신 주님, 주님께서 주님의 종에게 베푸신 이 모든 은총과 온갖 진실을, 이 종은 감히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제가 이 요단 강을 건널 때에, 가진 것이라고는 지팡이 하나뿐이었습니다만, 이제 저는 이처럼 두 무리나 이루었습니다.
부디, 제 형의 손에서, 에서의 손에서, 저를 건져 주십시오. 형이 와서 저를 치고, 아내들과 자식들까지 죽일까 두렵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반드시 너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너의 씨가 바다의 모래처럼 셀 수도 없이 많아지게 하겠다' 하시지 않으셨습니까?"
처음인 것 같습니다. 야곱의 절실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진심 어린 기도문입니다. 야곱은 자신이 받은 은총을 받을 자격이 없음을 고백하고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임을 찬양했습니다. 그러면서 에서와의 일로 인한 두려움을 토로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여 구원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고난 없는 삶을 원하고 모든 것이 뜻대로 다 이루어지는 세상을 원합니다. 그런데 살아가다 보면 고난을 만나고 두려움도 경험합니다. 누군가는 그것을 불행하다고 하거나 재수가 없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과의 관계를 가지고 오면 그것은 불행도 아니고 재수 없는 일도 아닙니다.
고난과 두려움 앞에서 사람은 진실해지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진짜 신앙이 드러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야곱의 인생에서 진짜 인생은 두려움과 절망 앞에서 하나님께 나가는 지금인 것 같습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 불쑥 들어와 아프게 찔러내는 것들이 있습니까? 불행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옆구리를 쿡 찌르시는 ‘넛지(Nudge)’가 아닐까요?
[묵상을 위한 질문]
- 최근 겪었던 갈등이나 어려움은 무엇이 있습니까?
- 그 어려움이 가져온 성찰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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