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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33:4~12 “에서의 용서와 야곱의 은혜”

by 기대어 보기를 2026. 3. 20.

[창33:4-12]
4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이하여 안고 목을 어긋맞추어 그와 입맞추고 서로 우니라
5 에서가 눈을 들어 여인들과 자식들을 보고 묻되 너와 함께 한 이들은 누구냐 야곱이 이르되 하나님이 주의 종에게 은혜로 주신 자식들이니이다
6 그 때에 여종들이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7 레아도 그의 자식들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고 그 후에 요셉이 라헬과 더불어 나아와 절하니
8 에서가 또 이르되 내가 만난 바 이 모든 떼는 무슨 까닭이냐 야곱이 이르되 내 주께 은혜를 입으려 함이니이다
9 에서가 이르되 내 동생아 내게 있는 것이 족하니 네 소유는 네게 두라
10 야곱이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내가 형님의 눈앞에서 은혜를 입었사오면 청하건대 내 손에서 이 예물을 받으소서 내가 형님의 얼굴을 뵈온즉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사오며 형님도 나를 기뻐하심이니이다
11 하나님이 내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오니 청하건대 내가 형님께 드리는 예물을 받으소서 하고 그에게 강권하매 받으니라
12 에서가 이르되 우리가 떠나자 내가 너와 동행하리라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에서가 달려와서 야곱을 맞이했습니다. 에서는 야곱을 끌어안았습니다. 목을 어긋맞추었습니다. 야곱과 입을 맞추고 울었습니다. 야곱도 울었습니다. 

 

야곱은 충분히 울만한 상황이었을 것 같습니다. 공포와 두려움이 에서의 포옹과 입맞춤에 녹아내리는 경험을 했습니다. 용서를 경험한 사람의 눈물입니다. 

 

그런데 에서도 울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났지만 에서는 한때 야곱을 죽이려고 했었던 사람입니다. 시간이 흘렀기 때문에 그 마음이 누그러진 것일까요?

 

이제 말씀 안에는 변화된 야곱의 모습이 확연히 보입니다. 

 

야곱은 자신을 ‘종’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종이 아니라 에서를 ‘주’라 부르고 자신을 ‘종’이라 고백하는 것입니다. 

 

한때 야곱은 에서의 발뒤꿈치를 움켜잡았던 사람입니다. 물론 태아 때이기 때문에 그것에 어떤 의도가 있었다고 보기는 어렵겠지만 야곱이라는 사람을 특징짓는 상징적인 모습입니다. 

 

그 이후 야곱은 에서의 장자의 권리를 탐냈고 결국엔 아버지와 에서를 속이고 억지로 그것을 얻으려 했습니다. 

그런 야곱이 형 에서를 ‘주’라 부르고 자신을 ‘종’이라 부릅니다. 심지어 에서의 얼굴을 보는 것을 ‘하나님의 얼굴을 본 것 같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에서를 위해 준비했던 가축들도 에서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양도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내 소유도 족하다며 에서에게 강권해 받게 했습니다. 

 

이 역시도 그렇습니다. 야곱은 욕심이 많은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에서에게 장자를 빼앗겨서 생긴 결핍의 공간 때문인지 계속해서 무언가를 채우려고 했던 사람이 야곱이었는데, 이제 야곱은 기꺼이 자신의 것을 그것도 굉장히 많은 소유를 내어줍니다. 

 

그러면서 자신의 소유로 충분하다는 자족의 태도를 보여줍니다. 

 

이 모든 일은 어떻게 일어난 것일까요?

 

이유를 찾아본다면 하나님의 얼굴을 본 사람에게 나타난 변화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겸손해집니다. 올라가려 했다가도 하나님을 만나면 스스로가 얼마나 낮은 자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겸손한 자를 높이시지만 교만한 자는 끌어내리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욕심이 아니라 자족을 배웁니다. 이미 하나님으로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자족할 수 있게 됩니다.

 

사실 이렇게 말을 할 수 있지만 이 변화는 아주 어려운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변화되는 것은 분명합니다.

 

우리 자신도 성경 말씀을 마주하며 야곱처럼 변화되기를 소망해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하나님의 말씀 앞에 달라진 가치관이나 삶의 태도는 무엇입니까?
  2. 누군가가 하나님의 얼굴처럼 보인 적이 있습니까? 있다면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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