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3:1-3]
1 야곱이 눈을 들어 보니 에서가 사백 명의 장정을 거느리고 오고 있는지라 그의 자식들을 나누어 레아와 라헬과 두 여종에게 맡기고
2 여종들과 그들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레아와 그의 자식들은 다음에 두고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3 자기는 그들 앞에서 나아가되 몸을 일곱 번 땅에 굽히며 그의 형 에서에게 가까이 가니

야곱이 눈을 들어 봅니다. 들었던 대로 에서가 400명의 장정들을 거느리고 오고 있었습니다.
야곱이 달라졌습니다.
하나님을 만나기 이전의 야곱의 모습을 알고 있습니다. 그때의 야곱은 여종들과 아내와 자식들을 앞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안절부절하며 뒤따라가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제 야곱은
- 여종들과 그의 자식들은 앞에 두고
- 레아와 그의 자식들을 그 다음에 두고
- 라헬과 요셉은 뒤에 두고
야곱이 가장 먼저 앞으로 나아갑니다.
에서가 두려웠지만 뒤에 숨어 있지 않고 가장 앞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이때의 야곱은 그 어느 때보다 취약한 상태였습니다. 가족들을 보내고 뒤에서 머뭇거리고 있었을 때의 야곱은 문제가 생기면 있는 힘껏 도망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에서 앞으로 나가는 야곱은 도망도 칠 수 없는 상태입니다. 다리를 절고 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이 불편하고 통증도 있는 상태입니다.
이런 야곱이 제일 앞으로 나갈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물론, 우리는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대면하여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어쩌면 우리는 야곱이 이제는 이런 행동을 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나라면 저럴 수 있을까? 나아진 것이 무엇이 있을까 생각해 봅니다. 아무것도 없습니다. 더 취약해졌을 뿐입니다.
만약 지금의 야곱과 같은 행동을 할 수 있는 이유를 생각해보면 한 가지입니다. 모든 것을 내려놓은 것입니다.
얍복강에서 하나님에게 꺾였듯이 마음속에 생각했던 계획이나 결과까지도 내려놓아야 할 수 있는 행동 같습니다. 그러나 이 내려놓음은 포기가 아닙니다. 마음을 놓아버리거나 모든 것에 대한 희망을 버린 것이 아닙니다.
여전히 에서와의 관계에서 용서받고 안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이 있고, 하나님께서 그 일을 이루어 주시기를 기대하지만, 하나님께서 만들어갈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야곱은 그 마음으로 발을 절뚝이며 앞으로 걸어 나갑니다. 그리고 진심을 담아 에서에게 일곱 번 땅에 굽힙니다.
우리에게도 그렇듯이 사람에게 절을 하는 것은 마음을 담은 예를 표하는 행동입니다. 진심 어린 행동인 것입니다.
이 역시도 지금까지의 야곱과 다릅니다.
지금까지의 야곱에게서는 그 ‘진심’이 잘 보이지 않았습니다. 약삭빠르고, 잔꾀를 부리며, 계산적이고, 이기적이며, 비겁해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야곱은 진심 어린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물론, 절실함 때문이라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절실함 중에도 속이고 다른 생각을 하기도 합니다.
오늘 야곱은 그렇지 않은 것 같습니다.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한 사람이 하나님을 만날 때 일어나는 변화입니다. 진정으로 하나님의 얼굴을 대하고 살아가는 사람은 선택의 순간에 두 가지를 붙잡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결과를 하나님께 맡기는 것
또 하나는 그 순간에 진실한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하나님을 믿고 포기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 결과를 하나님께 맡길때 염려되는 지점이 있습니까? 그리고 그렇게 염려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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