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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37:1~2 “족보”

by 기대어 보기를 2026. 4. 14.

[창37:1-2]
1 야곱이 가나안 땅 곧 그의 아버지가 거류하던 땅에 거주하였으니
2 야곱의 족보는 이러하니라 요셉이 십칠 세의 소년으로서 그의 형들과 함께 양을 칠 때에 그의 아버지의 아내들 빌하와 실바의 아들들과 더불어 함께 있었더니 그가 그들의 잘못을 아버지에게 말하더라


 

새로운 시대의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이제 야곱이 아닌 요셉이 중심 인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말씀을 읽으면 이상한 점을 발견하게 됩니다. 분명 야곱의 족보라고 소개를 하지만 정작 우리가 알고 있는 족보의 모습은 보이지 않습니다. 요셉이 17세의 소년 이었다는 것만 말하고 있습니다. 

 

족보라는 말 속에서 우리는 야곱의 아들들의 이름들과 관계에 대한 설명을 발견하려 하겠지만 그런 부분들이 생략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족보라는 단어의 의미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족보 라고 번역된 [תּוֹלְדָה(톨레도트)]는 단순히 누가 누구를 낳았다는 형태의 이름의 나열이 아닙니다.

 

톨레도트는 누구로부터 파생된 역사나 누구의 삶이 남긴 결과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이 톨레도트는 창세기 2장 4절에도 사용되었습니다. 

 

[창2:4]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

우리말 번역에는 족보라는 말이 보이지 않지만 여기에서는 ‘내력’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이 내력이 ‘톨레도트’입니다. 

 

즉, 세상은 하나님으로부터 파생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야곱의 족보를 이야기할때 모든 아들들을 다소개할 수도 있겠지만 요셉을 이야기 한 것은 요셉이 야곱의 인생과 비슷한 삶의 과정을 겪게 되기 때문입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정말 비슷합니다. 

  • 야곱의 어머니 리브가는 아이를 가질 수 없는 상태에 하나님이 열어 주셨습니다. 요셉의 어머니 라헬도 똑 같았습니다. 
  • 야곱은 형 에서의 미움을 받아 도망가야 했습니다. 요셉도 형들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 야곱은 하란으로 갔고 요셉은 이집트로 갔습니다. 
  • 야곱은 큰 부를 이루어 돌아왔고 요셉은 이집트의 총리대신이 되었습니다.

톨레도트, 내력 혹은 족보는 어떤 의미로 정체성에 대한 것 입니다. 요셉은 누구로부터 시작되었는지에 대한 기록입니다. 지금의 우리를 이루고 있는 그 뿌리가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하는 단어가 톨레도트 입니다. 

 

그런 의미를 생각해 본다면 우리는 또 하나의 영적 족보를 가지고 있습니다. 죄로인해 심판받아야 하는 원수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로 인해 양자삼아진 존재가 우리 입니다. 

 

우리가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가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톨레도트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 입니다.

 

나의 나된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며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임을 묵상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의 나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말에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2. 우리의 삶의 모양을 톨레도트라는 말로 묵상해보면 어떠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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