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7:23-25]
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요셉의 형들은 요셉이 오자 요셉의 채색옷을 벗깁니다. 그리고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습니다. 구덩이에 물이 없었다는 기록으로 보아 그곳은 한때 우물이었던 곳 같습니다.
요셉은 그렇게 구덩이에 던져 넣어졌습니다.
요셉의 형들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정말 예상치를 넘어섭니다. 그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져 넣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아이러니한 모습입니다. 그때의 요셉은 어떤 상태였을까요? 구덩이에 던져 넣어지면서 몸이 상하고 다쳤을 수도 있습니다. 형들의 태도에 두려움과 배신감을 느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도무지 그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았을 것 같기도 합니다. 요셉의 마음은 두려움과 혼란 그 자체였을 것입니다.
반면에 요셉의 형들은 배가 고파서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이상하죠? 자신들의 배고픔에는 음식을 차려 먹을 만큼 민감하게 반응하면서 타인의 엄청난 고통과 두려움에 대해서는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는 듯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구덩이에 빠져 고통받고 있는 요셉을 두고 위에서 음식을 차려서 먹고 있는 그들을 우리는 ‘악하다’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실 우리도 그들과 그렇게 다르지 않은 것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자기중심적입니다. 자신에 대해서만 이해합니다.
내가 배가 고프면 온 세상이 배가 고파야 합니다. 내가 힘들면 배려받아야 합니다. 주위 사람들이 나에게 배려해주기를 기대하고 그런 것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짜증을 내거나 불평이 생깁니다. 모두 내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기 때문에 찾아오는 감정이며 마음입니다.
우리는 ‘이해’와 ‘공감’이라는 단어를 알고 있습니다. 그것이 어떤 의미인지도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끄럽게도 살아가면서 타인을 이해하는 것이 너무 어려운 것 같고 공감해주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것 같습니다.
우리도 타인을 공감하지 못할 때 요셉이 구덩이 속에서 두려움과 고통 속에 있음에도 자신들의 허기만을 느끼고 그것을 달래기 위해 음식을 차려 먹는 그들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성숙한 존재가 된다는 것은 내가 힘들면 타인도 힘들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이라면 고통받고 있는 요셉을 옆에 두고 음식을 먹는 일은 할 수 없을 것입니다.
물론, 이 묵상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할지는 선택입니다. 다만, 내 옆에 있는 사람들, 내가 손을 뻗어 닿을 수 있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생각, 공감해주는 말 한마디부터 시작해야 함을 묵상하게 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최근 가족들에게 이해받고 싶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 내 자신만 생각해서 가까운 사람들을 힘들게 했던 일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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