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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37:12~24 “요셉을 살린 르우벤”

by 기대어 보기를 2026. 4. 17.

[창37:12-24]
12 그의 형들이 세겜에 가서 아버지의 양 떼를 칠 때에
13 이스라엘이 요셉에게 이르되 네 형들이 세겜에서 양을 치지 아니하느냐 너를 그들에게로 보내리라 요셉이 아버지에게 대답하되 내가 그리하겠나이다
14 이스라엘이 그에게 이르되 가서 네 형들과 양 떼가 다 잘 있는지를 보고 돌아와 내게 말하라 하고 그를 헤브론 골짜기에서 보내니 그가 세겜으로 가니라
15 어떤 사람이 그를 만난즉 그가 들에서 방황하는지라 그 사람이 그에게 물어 이르되 네가 무엇을 찾느냐
16 그가 이르되 내가 내 형들을 찾으오니 청하건대 그들이 양치는 곳을 내게 가르쳐 주소서
17 그 사람이 이르되 그들이 여기서 떠났느니라 내가 그들의 말을 들으니 도단으로 가자 하더라 하니라 요셉이 그의 형들의 뒤를 따라 가서 도단에서 그들을 만나니라
18 요셉이 그들에게 가까이 오기 전에 그들이 요셉을 멀리서 보고 죽이기를 꾀하여
19 서로 이르되 꿈 꾸는 자가 오는도다
20 자, 그를 죽여 한 구덩이에 던지고 우리가 말하기를 악한 짐승이 그를 잡아먹었다 하자 그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를 우리가 볼 것이니라 하는지라
21 르우벤이 듣고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원하려 하여 이르되 우리가 그의 생명은 해치지 말자
22 르우벤이 또 그들에게 이르되 피를 흘리지 말라 그를 광야 그 구덩이에 던지고 손을 그에게 대지 말라 하니 이는 그가 요셉을 그들의 손에서 구출하여 그의 아버지에게로 돌려보내려 함이었더라
23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매 그의 형들이 요셉의 옷 곧 그가 입은 채색옷을 벗기고
24 그를 잡아 구덩이에 던지니 그 구덩이는 빈 것이라 그 속에 물이 없었더라


야곱 즉, 이스라엘은 요셉을 형들에게 보냅니다.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 요셉의 형들은 세겜에서 양을 치는 일을 하고 있었고 요셉은 아버지의 곁에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스라엘은 요셉을 형들에게 보내 자신의 아들들이 양 떼를 잘 돌보고 있는지를 보고 알려달라고 했습니다. 이에 요셉은 그렇게 하겠다고 말을 하고 세겜으로 갑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찾지 못해서 세겜의 들에서 헤매었습니다. 다행히도 형들의 소식을 아는 사람을 만나 형들이 도단으로 갔다는 말을 듣습니다. 

 

요셉은 다시 도단으로 올라가 그곳에서 형들을 만납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리고 요셉을 죽이려는 끔찍한 음모를 꾸밉니다. 그들은 요셉을 향해 “꿈꾸는 자”라고 불렀습니다. 

 

마음으로 악을 도모하고 말로써 악을 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요셉을 죽이면 그 요셉의 꿈이 어떻게 되는지 보자며 시기심을 불태웠습니다. 

 

어떻게 저런 계획을 세우고 실행에 옮길 수 있을까 생각할 수 있지만, 사람의 분노와 시기의 감정을 파고드는 죄는 이토록 끔찍할 정도의 결과로 치닫게 하는 것 같습니다. 

 

이성이나 윤리나 도덕이 시기나 분노에 삼켜져 버리게 되면 사람은 문 앞에 엎드려 있는 죄에 삼겨집니다. 그러므로 분을 오래도록 품고 있지 않아야 하며 사람들에 대해 시기하고 분노하는 마음을 계속 가지고 있으면 안 됩니다.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 중에 르우벤은 형제들이 말하는 끔찍한 계획을 듣고는 요셉을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리고 르우벤으로 인해 요셉은 형들로부터 죽임을 당하지 않게 됩니다. 요셉을 죽이려 하는 형제들에게 죽이지 말고 옷을 벗기고 광야의 구덩이에 던져버리자고 말합니다. 요셉을 살려서 아버지에게 보내려는 생각으로 흥분한 형제들에게 한 제안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르우벤 때문에 요셉은 목숨을 건지게 됩니다. 

 

생각해 볼 지점이 있습니다. 우리는 시기와 질투, 분노와 같은 감정을 오래 품고 있으면 요셉의 형들과 같이 죄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르우벤과 같은 마음이 필요합니다. 시기와 질투, 분노의 감정은 생기지만 한 사람의 영혼, 생명을 볼 수 있는 시각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사람이기에 시기와 질투, 분노의 감정은 자연스럽게 경험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감정을 계속 마음에 담아둘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누군가에게 큰 상처를 만드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또 사랑해야 할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는 일들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을 인지해야 합니다. 

 

그래서 르우벤처럼 생명을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내 감정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감정에 충실한 결과가 무엇을 만들어내는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지점은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 하나님의 일하심의 통로입니다. 지금 이 말씀에서 요셉의 꿈을 이루어 가기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요셉을 죽이려 하는 요셉의 형들일까요? 요셉을 살리려 하는 르우벤일까요? 물론, 둘 다라고 말할 수 있고 또 어떤 면에서는 요셉을 죽이려 하는 형들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르우벤이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분들은 이런 말을 하십니다. “하나님은 악인들도 사용하신다.” 맞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통해서 발견하는 것은 악인들이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되지만 반드시 그 악행의 결과는 스스로 책임져야 합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악인들 뒤에는 언제나 의인들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의를 위해 기도하고 하나님께 엎드린 사람들이 반드시 있습니다. 

 

르우벤과 같이 파국으로 치닫는 끔찍한 결과를 만들지 않으려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 생명을 건져야겠다고 마음먹은 사람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 가는 통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자리는 어디여야 할까요? 성경은 끊임없이 요셉의 형들과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죄가 문 앞에 엎드려 있고 그 죄가 우리를 원하는데 너는 그 죄를 다스리라고 말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최근 분노, 시기, 질투의 감정을 경험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2. 그 감정을 어떻게 처리하셨습니까?
  3. 그 관계는 어떻게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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