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7:25-30]
25 그들이 앉아 음식을 먹다가 눈을 들어 본즉 한 무리의 이스마엘 사람들이 길르앗에서 오는데 그 낙타들에 향품과 유향과 몰약을 싣고 애굽으로 내려가는지라
26 유다가 자기 형제에게 이르되 우리가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27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 하매 그의 형제들이 청종하였더라
28 그 때에 미디안 사람 상인들이 지나가고 있는지라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서 끌어올리고 은 이십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매 그 상인들이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더라
29 르우벤이 돌아와 구덩이에 이르러 본즉 거기 요셉이 없는지라 옷을 찢고
30 아우들에게로 되돌아와서 이르되 아이가 없도다 나는 어디로 갈까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구덩이에 넣고 음식을 먹었습니다. 여러 가지 고민이 있었을 것입니다.
구덩이 속의 요셉을 어떻게 할 것인가?
그리고 마치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스마엘 사람들입니다. 길르앗에서 이집트로 향품과 몰약 등을 싣고 가는 상인 무리였습니다.
이 지점에서 생각해 볼 만한 지점을 발견합니다. 그 상인들이 이스마엘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다른 민족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그들의 큰할아버지의 손자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어쩌면 서로 알 수도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미디안 상인’으로 부르기도 합니다.
미디안은 아브라함이 후처 그두라를 통해서 낳은 아들입니다. 역시 이들도 이삭의 배다른 동생 즉, 작은 할아버지의 손자들 정도 됩니다. 이 경우도 충분히 알아볼 만도 합니다.
그러나 이들은 전혀 서로를 알아보지 못했고 마치 다른 민족을 대하듯 했습니다.
유다는 다른 형제들에게 제안합니다.
요셉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두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고 말합니다. 요셉이 밉기는 하지만 그래도 우리의 혈육이라는 것을 상기시키며 죽이지 말고 살려서 상인들에게 팔아버리자고 말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들의 손으로 혈육인 요셉을 죽이는 죄를 짓지 말자는 의미였습니다.
그리고 다른 형제들은 그 말에 동의했습니다. 그래서 요셉을 이스마엘 사람 또는 미디안 상인에게 은 이십 개를 받고 팔아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요셉을 데리고 애굽으로 갔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르우벤이 등장합니다. 르우벤은 처음부터 요셉을 살리려고 마음먹었었습니다. 그런데 무슨 이유인지는 나와 있지 않지만 요셉을 팔아넘기는 자리에 없었습니다.
르우벤은 요셉이 없어진 것을 보고 스스로 옷을 찢습니다. 비통함을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내가 어디로 가야 한단 말이냐?“라고 비통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오늘 이 이야기는 정말 우연이라기보다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다고 보여집니다. 요셉의 형들의 계획이 실패할 요소들이 많았습니다.
이스마엘 사람들이 요셉이 자신들의 먼 친척인 줄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미디안 상인이라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그들은 요셉을 노예로 사서 팔아넘기지 않았을 것입니다.
르우벤이 그 자리에 없었습니다. 만약 르우벤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 르우벤은 요셉을 상인들에게 파는 것을 동의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좋은 일만 세밀한 계획과 섭리 속에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불행한 일들에도 세밀한 계획과 섭리로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그렇게 되어질 일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에 대해 그리스도인은 ‘재수가 없다’와 같은 마음의 태도를 가지지 않습니다.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고 그 이유 뒤에는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계획과 뜻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불행을 만나는 우리의 자세는 세상에서 버림받았다거나 저주를 받았다거나 하는 원망이나 개탄이 아닌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뜻을 헤아리는 태도여야 합니다.
지금 일어난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이 이루어가실 은혜를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최근 경험했던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 그 어려움을 통해 달라진 것은 무엇입니까?
- 어려움 속에서 하나님을 생각할때 보이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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