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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38:1~7 ”유다“

by 기대어 보기를 2026. 4. 22.

[창38:1-7]
1 그 후에 유다가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내려가서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 하니라
2 유다가 거기서 가나안 사람 수아라 하는 자의 딸을 보고 그를 데리고 동침하니
3 그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유다가 그의 이름을 엘이라 하니라
4 그가 다시 임신하여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오난이라 하고
5 그가 또 다시 아들을 낳고 그의 이름을 셀라라 하니라 그가 셀라를 낳을 때에 유다는 거십에 있었더라
6 유다가 장자 엘을 위하여 아내를 데려오니 그의 이름은 다말이더라
7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유다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상당히 오랜 시간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야곱의 넷째 아들인 유다가 실제적으로 장자와 같은 역할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아직은 유다에게서 그런 면모는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 시절의 이야기입니다. 

 

유다는 자기 형제들로부터 떠나 아둘람 사람 히라와 가까이했습니다. 히라라는 사람은 유다와 계속해서 친밀한 관계를 이어갔던 사람입니다. 유다의 친구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가나안 사람 수아의 딸을 만나 아내로 삼아 살았습니다. 

 

그리고 자녀를 낳았습니다. 

첫째 아들은 엘,
둘째 아들은 오난,
셋째 아들은 셀라입니다. 

 

셋째 아들을 낳을 때 유다는 ‘거십’이라는 곳에 거했습니다. 이 유다가 살았던 곳의 이름은 후대에 붙여진 이름이라 생각됩니다. 유다로부터 그 이름이 ‘거십’이라 불렸을 것이라 보여집니다. 

 

그 이유는 거십은 [כְּזִיב(케지브)]라는 단어인데 이 단어는 ‘거짓말하다’는 의미의 [כָּזַב(카자브)]로부터 유래되었습니다. 그래서 거십이라는 단어는 ‘위조된’, ‘거짓된’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것은 이후에 전개될 유다의 이야기와 연관이 되는 듯합니다.

 

유다는 장자 엘을 위하여 다말이라는 여인을 데리고 옵니다. 

 

그런데 성경은 아주 단호하게 이 엘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유다의 장자 엘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엘을 죽음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말씀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평범한 가족의 이야기 같으나 어느 순간에 무엇인가가 무너져 버렸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창세기 12장부터 시작된 기록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세우시기 위해 한 사람 아브라함을 부르시고 그의 믿음이 아들들에게로 이어지는 것을 보여줍니다. 

 

아브라함에서 이삭으로, 그리고 야곱으로 그 믿음의 유산, 믿음의 계보가 이어져 내려왔습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그 믿음이 희미해집니다. 

 

그리고 야곱 때에는 야곱 스스로도 처음에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보다는 세상에 대한 욕심이 가득했었습니다. 물론, 험악한 세월을 겪으면서 하나님을 인정하고 이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의 아들들을 보면 야곱의 어렸을 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악한 모습이 드러납니다. 야곱이 요셉을 편애한 이유도 한몫했겠지만, 그렇다고 형제가 형제를 죽이려 하거나 팔아넘기는 비정함의 이유는 될 수 없습니다. 

 

생각과 행위가 악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유다가 있습니다. 요셉을 죽이는 것이 무슨 유익이 있겠냐고 형제들에게 말하여 요셉을 죽음에서 살게 한 부분도 있지만, 요셉을 노예상들에게 팔아넘기자고 제안한 사람이 유다입니다. 

 

그리고 이제 유다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독립해 아둘람 사람을 친구로 삼고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아 가정을 꾸렸습니다. 

 

그리고 아들의 아내로 또 다말이라는 여인을 데리고 옵니다. 

 

아브라함도 그렇고 이삭도 그렇고 자신들의 아들들의 아내는 자신들의 친족들 중에서 찾았습니다. 가나안 여인이나 이방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는 것을 금기시했는데, 이제 유다는 자신도 그리고 자신의 아들의 아내도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아버지의 그늘을 벗어나고, 아버지의 뜻과 상관없이 살아갑니다.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으로 본다면 무너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에 결정적인 쐐기처럼 유다의 장자 엘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악했다고 성경은 기록하고, 그는 죽음을 맞이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점점 떠나가는 인간의 종말이 묵상됩니다. 우리는 시간이 지날수록 삶에 대한 깊은 성찰과 경험이 쌓이면서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 더 깊어지고 성숙해져야 합니다. 그런데 오늘 유다는 정반대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왜 이렇게 된 걸까요? 야곱은 무엇을 하고 있었던 것일까요? 유다는 왜 아버지를 떠난 것일까요? 

 

정답은 알 수 없지만 이 질문을 통해 우리 자신을 돌아보아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은혜는 여전히 존재합니다. 유다는 이렇게 점점 멀어지는 길을 가더라도 하나님은 유다를 잊지 않으시고 그를 붙잡아 주시는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야곱의 가족, 야곱의 아들들의 모습을 보고 우리의 가족을 보면 무엇을 느끼십니까?

2. 우리의 가족이 결코 놓치지 않아야 할 가치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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