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8:7-11]
7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이신지라
8 유다가 오난에게 이르되 네 형수에게로 들어가서 남편의 아우 된 본분을 행하여 네 형을 위하여 씨가 있게 하라
9 오난이 그 씨가 자기 것이 되지 않을 줄 알므로 형수에게 들어갔을 때에 그의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하매
10 그 일이 여호와가 보시기에 악하므로 여호와께서 하나 그도 죽이시니
11 유다가 그의 며느리 다말에게 이르되 수절하고 네 아버지 집에 있어 내 아들 셀라가 장성하기를 기다리라 하니 셀라도 그 형들 같이 죽을까 염려함이라 다말이 가서 그의 아버지 집에 있으니라

유다의 장자 엘이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여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문제는 엘에게는 아내 다말이 있었습니다.
유다는 장자 엘이 죽자 차자인 오난에게 형수인 다말과 결혼하라 했습니다.
이는 당시 고대 근동의 결혼 제도인 ‘계대 결혼 제도’에 따른 것입니다. 이는 형제가 자식 없이 죽었을 때, 다른 형제가 형수와 결혼하여 대를 잇게 하는 관습입니다.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죽은 자의 이름이 끊어지지 않게 하여 가문을 유지하기 위함이며, 또 다른 하나는 과부를 보호하기 위함입니다.
고대 사회는 자녀가 없는 과부를 위한 사회적 안전망이 없었습니다. 그런 까닭에 이와 같은 계대 결혼 제도가 과부가 공동체의 일원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보호하는 장치였습니다.
유다는 차자인 오난에게 다말과 결혼하여 장남 엘의 이름을 잇게 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오난은 그것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형에게 씨를 주지 아니하려고 땅에 설정했습니다.
설정하다는 말은 [שָׁחַת(샤하트)]라는 단어로 파멸하다, 파괴시키다, 버리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그 행위가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습니다. 그런 까닭에 오난도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유다에게는 아들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그는 막내인 셀라입니다. 그런데 셀라는 아직 어렸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다말에게 셋째 아들인 셀라가 성인이 되기까지 과부로 다말의 아버지의 집에 머물러 있으라 했습니다.
그런데 그 말 이면에는 걱정이 있었습니다. 셀라도 엘이나 오난처럼 죽임을 당할까 두려운 마음입니다.
지난 시간 유다의 셋째 아들 셀라를 낳을 때 유다가 거했던 곳이 ‘거십’임을 묵상했습니다. ‘거짓, 위조‘라는 의미입니다.
유다는 며느리인 다말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셀라가 어리기도 했겠지만 다른 아들들처럼 죽임을 당할까 두려워 다말과 결혼을 시키지 않으려 했던 것입니다.
유다의 마음은 어떤 면에서 충분히 이해가 되는 부분도 있습니다. 두려움이 정말 컸을 것입니다.
한 가지 의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입니다. 유다의 가정사가 시작되면서 만나게 되는 하나님은 지금까지의 하나님과는 사뭇 다른 느낌입니다.
야곱에게 하나님은 기다려 주고,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나타나 믿음을 단단히 하셨던 하나님이라면 유다에게 하나님은 매우 단호하고 무섭고 두려운 하나님입니다.
왜 이렇게 보이는 것일까요?
말씀을 더 읽으면 알게 되겠지만 지금 유다의 가정의 이야기에는 아주 중요한 한 가지가 있습니다. 그것은 아브라함에서 시작되어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어지는 믿음의 계보가 어떻게 이어지느냐입니다.
먼저 유다는 야곱의 아들들 중 넷째 아들이지만 믿음의 계보가 이 유다를 통해 이어집니다. 그러나 유다는 아직 그런 면모를 보여주고 있지 않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이 유다를 이을 사람이 바로 유다의 아들인데 지금까지 말씀을 보면 그것이 불투명합니다.
엘은 악한 사람이었고, 오난은 아들을 낳아도 자신을 잇지 못하기에 아이를 낳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의 계보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하나님이 냉철하고 단호하셨던 부분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더 나아가 이야기를 조금 거슬러 올라가서 묵상해 볼 부분이 있습니다. 이는 성경이 후대에 기록되어 있기에 그런 까닭이 있겠지만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습니다.
바로 유다의 아내입니다. 유다는 수아라는 사람의 딸과 결혼을 해서 아들 셋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 아들들 중 엘과 오난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했습니다.
그리고 셋째 아들에 대한 이야기는 이후에 등장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보면 수아라는 사람의 딸 사이에 낳은 아들들은 모두 믿음의 계보에서 제외되었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수아라는 사람의 딸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데 성경은 그녀가 누구인지 그 이름조차도 이야기해 주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 이름이 기록되지 않은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 의미를 복음서에서의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통찰할 수 있습니다.
세상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더라도 하나님께서는 기억해 주는 사람과 하나님이 기억해 주지 않는 사람, “내가 너를 알지 못한다”라고 말한 사람의 차이입니다.
반면에 지금 이야기의 중심이 되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바로 며느리인 다말입니다. 다말은 이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이름의 의미를 아는 순간 의미 있는 깨달음을 얻습니다. 다말 [תָּמָר(타마르)], 이 이름의 의미는 ‘종려나무’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의미는 ‘똑바로 세우다’입니다.
예수님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 사람들이 흔들었던 나뭇가지가 바로 이 종려나무입니다. 그리고 지금 유다는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나 쓰러진 영적 상태를 여실히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 유다에게 다말은 그 영적 기강을 바로 세워줄 무언가가 필요한 것 같습니다. 다말이라는 여인의 이름 안에는 그런 의미가 있습니다.
유다의 가족사에서 엄하고 단호한 하나님의 모습을 만나게 됩니다. 자녀를 양육하다 보면 부모로서 엄하고 단호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할 때가 있습니다. 지금 유다에게 하나님은 그래야 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그 하나님은 유다뿐만 아니라 우리에게도 동일합니다. 그렇기에 우리의 신앙과 삶, 영적 상태를 점검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긍휼과 위로가 흘러오는 삶을 살고 있는 걸까요? 아니면 단호하고 매서운 채찍이 필요한 삶을 살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묵상을 위한 질문]
1. 스스로의 신앙과 영적 상태를 점수로 표현한다면 몇 점입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지금 우리의 삶을 똑바로 세우고 예수 그리스도가 내 살에 찾아오기 위해 필요한 조치는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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