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8:12-30]
12 얼마 후에 유다의 아내 수아의 딸이 죽은지라 유다가 위로를 받은 후에 그의 친구 아둘람 사람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서 자기의 양털 깎는 자에게 이르렀더니
13 어떤 사람이 다말에게 말하되 네 시아버지가 자기의 양털을 깎으려고 딤나에 올라왔다 한지라
14 그가 그 과부의 의복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으니 이는 셀라가 장성함을 보았어도 자기를 그의 아내로 주지 않음으로 말미암음이라
15 그가 얼굴을 가리었으므로 유다가 그를 보고 창녀로 여겨
16 길 곁으로 그에게 나아가 이르되 청하건대 나로 네게 들어가게 하라 하니 그의 며느리인 줄을 알지 못하였음이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무엇을 주고 내게 들어오려느냐
17 유다가 이르되 내가 내 떼에서 염소 새끼를 주리라 그가 이르되 당신이 그것을 줄 때까지 담보물을 주겠느냐
18 유다가 이르되 무슨 담보물을 네게 주랴 그가 이르되 당신의 도장과 그 끈과 당신의 손에 있는 지팡이로 하라 유다가 그것들을 그에게 주고 그에게로 들어갔더니 그가 유다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더라
19 그가 일어나 떠나가서 그 너울을 벗고 과부의 의복을 도로 입으니라
20 유다가 그 친구 아둘람 사람의 손에 부탁하여 염소 새끼를 보내고 그 여인의 손에서 담보물을 찾으려 하였으나 그가 그 여인을 찾지 못한지라
21 그가 그 곳 사람에게 물어 이르되 길 곁 에나임에 있던 창녀가 어디 있느냐 그들이 이르되 여기는 창녀가 없느니라
22 그가 유다에게로 돌아와 이르되 내가 그를 찾지 못하였고 그 곳 사람도 이르기를 거기에는 창녀가 없다 하더이다 하더라
23 유다가 이르되 그로 그것을 가지게 두라 우리가 부끄러움을 당할까 하노라 내가 이 염소 새끼를 보냈으나 그대가 그를 찾지 못하였느니라
24 석 달쯤 후에 어떤 사람이 유다에게 일러 말하되 네 며느리 다말이 행음하였고 그 행음함으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느니라 유다가 이르되 그를 끌어내어 불사르라
25 여인이 끌려나갈 때에 사람을 보내어 시아버지에게 이르되 이 물건 임자로 말미암아 임신하였나이다 청하건대 보소서 이 도장과 그 끈과 지팡이가 누구의 것이니이까 한지라
26 유다가 그것들을 알아보고 이르되 그는 나보다 옳도다 내가 그를 내 아들 셀라에게 주지 아니하였음이로다 하고 다시는 그를 가까이 하지 아니하였더라
27 해산할 때에 보니 쌍태라
28 해산할 때에 손이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이는 먼저 나온 자라 하고 홍색 실을 가져다가 그 손에 매었더니
29 그 손을 도로 들이며 그의 아우가 나오는지라 산파가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터뜨리고 나오느냐 하였으므로 그 이름을 베레스라 불렀고
30 그의 형 곧 손에 홍색 실 있는 자가 뒤에 나오니 그의 이름을 세라라 불렀더라

유다의 아내였던 수아의 딸이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유다는 우리에게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그녀를 위해 애도했고, 자신의 친구 히라와 함께 딤나로 올라가 양털을 깎으려 했습니다.
그리고 유다가 딤나에 왔다는 소식이 며느리인 다말에게 들렸습니다. 다말은 과부의 옷을 벗고 너울로 얼굴을 가리고 몸을 휩싸고 딤나 길 곁 에나임 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유다는 셋째 아들 셀라가 장성하면 다말을 청하여 셀라의 아내가 되게 하겠다고 약속했으나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그로 인해 다말은 유다가 자신을 속였다는 감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몸을 파는 여인처럼 꾸미고 나가 길거리에서 유다가 지나가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담보물은 염소 새끼를 당장 줄 수 없으니 맡겨둔 담보물입니다. 그리고 유다는 친구를 보내서 다말을 찾아 담보물과 염소 새끼를 바꾸게 합니다.
이때 매우 흥미로운 일이 일어납니다. 유다의 친구가 우리말로 번역된 단어로 ‘창녀’를 찾았는데 그곳의 마을 사람들이 자신들의 마을에는 ‘창녀’가 없다고 말 합니다.
그런데 이 ‘창녀’로 번역된 단어가 원문에서는 다릅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의미의 ‘창녀’는 [זָנָה(자나)]입니다. 유다가 다말을 보고 생각했던 의미 입니다. 그런데 그곳 사람들이 생각했던 ‘창녀’는 [קְדֵשָׁה(케데샤)]입니다. 이는 신전에서 종사하는 여인으로 성전에서 신을 위해 매춘행위를 하는 여인입니다.
그런 까닭에 유다의 행위는 단순히 성을 매매했던 것이 아니라 이방신을 신앙하는 행위를 한 것으로 그곳 사람들에게 알려지게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유다는 이 일에 대해서 침묵하고 그곳을 떠났던 것 입니다.
그리고 유다는 길을 가다 그녀를 보았는데 자신의 며느리인 줄을 알아보지 못하고 그녀와 거래를 합니다. 그리고 다말은 유다의 도장과 도장 끈, 그리고 손에 있는 지팡이를 담보물로 받고 잠자리를 하게 됩니다. 이후 유다의 아이를 갖게 됩니다.
시간이 지났습니다. 석 달쯤 후에 유다에게 다말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유다는 그 소식을 듣자 다말을 끌어내어 불에 태워 죽이려 했습니다.
그때 다말은 이전에 유다로부터 받은 담보물을 보여주면서 이 담보물의 주인으로 말미암아 아이를 가졌다고 말합니다.
유다는 그것이 자신의 것인 줄 알아보고 자신이 석 달 전에 했던 일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잘못을 시인합니다. 유다는 말합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그리고 두 아들 베레스와 세라를 낳게 됩니다.
유다는 말합니다. “그는 나보다 옳도다”
왜 이렇게 말한 것일까요? 여기에서 ‘옳다’라는 말은 [צָדַק(차다크)]라는 단어인데 그 의미는 올바르다,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유다는 거짓말을 했고, 악한 마음으로 다말을 죽이려 했으나 다말은 정당한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이 지점에서 한 가지 확인해 봐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다말의 행위가 정당했느냐는 부분입니다. 오늘날의 우리의 기준으로는 비도덕적이고 비윤리적입니다. 유다가 다말을 속였듯이 다말도 유다를 속였습니다. 그러나 결과만 놓고 본다면 당시의 기준으로는 문제가 되지 않았습니다.
고대 근동의 풍습과 관습에 대해 알 수 있는 히타이트 법전 중 케이스 193에는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아내를 두고 죽는다면, 그의 형제가 그 아내를 취해야 한다. 그다음으로 그의 아버지가 그 아내를 취해야 한다. 만약 그의 아버지도 죽는다면, 그 아내를 취하지 않았던 다른 형제가 그 아내를 취해야 한다. 죄가 되지 않는다.’
잘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부끄러운 이야기입니다. 유다도 그렇고 다말도 그렇고 모두 부끄럽습니다. 비윤리적이고 비도덕적입니다.
이런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성경에는 이런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도 악인들의 죄악이나 부끄러움이 아니라 의의 반열에 들어온 사람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서 이런 부분을 읽으면 마주하게 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거울과 같습니다. 그것을 읽는 사람을 비춰 냅니다. 하나님의 말씀 속에 기록된 이런 부끄러운 모습들은 우리 자신의 현실적인 모습들을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가 거울을 보는 이유는 한 가지입니다. 거울을 통해 우리 자신의 부끄러움을 확인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부끄러운 것을 바로잡기 위함입니다.
유다의 이야기는 38장에서 끝납니다. 그가 더 이상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다시 성경에 등장할 때에는 오늘 본문에서 본 유다가 아니라 조금 달라진 유다를 만나게 됩니다.
저는 다말을 통해 유다가 자신의 수치와 마주했고 그것이 어떤 변화의 시작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성경에 이런 부끄러운 이야기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은 우리의 부끄러운 현실을 말씀을 통해 들여다보게 하고 그 부끄러움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을 만나게 함일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그 부끄러움을 깨닫고 회개하고 돌이키며 하나님께로 더 나아가야 함을 묵상하게 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누군가에게 불편한 감정을 쏟아냈는데 알고 보니 그에게 정당한 이유가 있었던 경험이 있습니까?
2. 그 일을 어떻게 처리했습니까?
3. 유다 가문의 이야기를 통해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묵상 > 창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말씀묵상] 창세기 38:7~11 “아들들의 죽음” (0) | 2026.04.23 |
|---|---|
| [말씀묵상] 창세기 38:1~7 ”유다“ (0) | 2026.04.22 |
| [말씀묵상] 창세기 37:31~35 “죄의 연쇄와 십자가” (0) | 2026.04.21 |
| [말씀묵상] 창세기 37:25~30 “불행속의 하나님의 뜻” (0) | 2026.04.20 |
| [말씀묵상] 창세기 37:23~25 “이해와 공감의 부재“ (0) | 2026.04.1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