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9:3-5]
3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
4 요셉이 그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 섬기매 그가 요셉을 가정 총무로 삼고 자기의 소유를 다 그의 손에 위탁하니
5 그가 요셉에게 자기의 집과 그의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매우 흥미롭습니다. 보디발 장군이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았습니다.
보디발 장군이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있는 것을 시각적으로 봤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환상으로 본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보았습니다.
이는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보디발 장군이 볼 수 있는 것은 요셉뿐입니다. 그러므로 요셉의 태도와 요셉 주위에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 하나님이 요셉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알았던 것입니다.
묵상해 봅니다. 요셉의 어떤 모습이 보디발 장군으로 하여금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것을 믿게 한 것일까요?
생각해 볼 수 있는 단어는 ‘형통’이라는 단어입니다. 앞에서도 묵상했었지만 이 형통이라는 단어가 모든 일들이 잘 풀린다는 의미만 있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아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임재하신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요셉은 개인적으로 매우 불행하고 부당한 환경에 처해 있었지만 하나님이 함께한다는 것을 느끼기에 충분한 삶의 모양을 보였던 것 같습니다.
그런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요셉은 하나님을 인식하고 살았습니다. 이후에 다시 나누게 되겠지만 요셉은 평소에 하나님을 인식하고 있었기에 죄의 유혹을 뿌리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경건으로 드러납니다.
사람들은 매우 좋지 않은 환경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선입견을 가집니다. 삶의 희망이나 소망이 없을 것 같은 환경에 처한 사람들은 예의나 지켜야 할 도덕과 윤리, 매너와 같은 것을 지키고 살아가지 않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인생의 끝에 내몰린 사람들 중에 어떤 사람이 그와 같은 가치들을 지키며 살아간다면 그 사람에 대해 궁금증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요셉이 보디발 장군에게 보여주었던 것은 그런 것이라 생각이 됩니다. 아니, 요셉이 그런 태도를 보디발 장군에게 보여준 것이 아니라 요셉이 스스로 하나님을 인식하고 살아가는 태도를 가졌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타인의 시선에는 경건이나 도덕과 윤리,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로 나타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경건은 신뢰로 이어집니다. 보디발 장군은 요셉의 경건한 태도에서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라는 확신을 얻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요셉에게 점점 더 중요한 일들을 맡겼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그 일들을 자신의 일처럼, 보디발 장군에게 유익이 되도록 성실하게 행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 태도는 믿음과 신뢰를 더욱더 키워 갔고 보디발 장군은 그런 요셉에게 자신의 모든 재산을 관리할 권한을 주었습니다.
실로 대단한 것입니다. 노예에게 그런 막중한 일을 맡긴 것입니다. 얼마나 신뢰할 수 있으면 그렇게 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단지 요셉이 일을 잘한다거나 성실하다는 것 이상을 말합니다. 성경이 이미 말하고 있듯이 보디발 장군은 요셉이 하나님이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 그렇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사람이 바로 요셉이었습니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여기에 있습니다. 한때 그리스도인은 믿을 만한 사람들이라는 인식이 있었었습니다. 교회에 다니고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은 대단하고 성실하며 믿을 만한 사람들이라는 사회적인 인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신앙심이 사람들에게 신뢰의 이유가 되지는 않는 시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왜 그렇게 된 것일
까요?
우리는 무언가를 잃어버린 것 같습니다. 오늘 요셉이 보여준 그 무엇일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주위에 믿음의 사람이라고 여겨지는 사람이 있습니까? 어떤 모습에서 그런 느낌을 받습니까?
2. 스스로는 타인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보여지고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3. 그리스도인 사회적인 신뢰를 회복하고 하나님을 믿는 사람임을 보여주기 위해서 회복해야 할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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