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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39:6~19 “그리스도인의 기준”

by 기대어 보기를 2026. 4. 28.

[창39:6-19]
6 주인이 그의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탁하고 자기가 먹는 음식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더라
7 그 후에 그의 주인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하다가 동침하기를 청하니
8 요셉이 거절하며 자기 주인의 아내에게 이르되 내 주인이 집안의 모든 소유를 간섭하지 아니하고 다 내 손에 위탁하였으니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10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 아니할 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11 그러할 때에 요셉이 그의 일을 하러 그 집에 들어갔더니 그 집 사람들은 하나도 거기에 없었더라
12 그 여인이 그의 옷을 잡고 이르되 나와 동침하자 그러나 요셉이 자기의 옷을 그 여인의 손에 버려두고 밖으로 나가매
13 그 여인이 요셉이 그의 옷을 자기 손에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감을 보고
14 그 여인의 집 사람들을 불러서 그들에게 이르되 보라 주인이 히브리 사람을 우리에게 데려다가 우리를 희롱하게 하는도다 그가 나와 동침하고자 내게로 들어오므로 내가 크게 소리 질렀더니
15 그가 나의 소리 질러 부름을 듣고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도망하여 나갔느니라 하고
16 그의 옷을 곁에 두고 자기 주인이 집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려
17 이 말로 그에게 말하여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데려온 히브리 종이 나를 희롱하려고 내게로 들어왔으므로
18 내가 소리 질러 불렀더니 그가 그의 옷을 내게 버려두고 밖으로 도망하여 나갔나이다
19 그의 주인이 자기 아내가 자기에게 이르기를 당신의 종이 내게 이같이 행하였다 하는 말을 듣고 심히 노한지라

 


 

 

요셉은 용모가 빼어나고 아름다웠습니다. 히브리어 원어의 표현으로는 ‘아름답고 아름다웠다’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빼어나다’와 ‘아름답다’로 번역된 단어는 같은 단어입니다.

 

그 때문이었는지 보디발 장군의 아내가 요셉에게 눈짓을 하며 유혹했습니다. 이에 요셉은 “당신은 내 주인의 아내라 그런즉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라는 말을 하며 그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 사람들은 인간의 욕망과 도덕, 윤리 그리고 신념 등 자신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가치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합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습니다.

 

그런데 요셉의 말을 들어보면 요셉은 또 다른 하나의 판단 기준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옳다고 여기는 기준에 따라 판단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은 그 모든 판단의 기준을 하나님께 둡니다.

 

요셉의 말 속에는 윤리와 도덕뿐만 아니라 그 모든 소중한 가치의 근본이신 하나님 앞에 죄를 지을 수 없다는 분명한 기준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들의 모습이어야 합니다.

 

잠시 정리를 해 보겠습니다. 살아가면서 사람들은 유혹적인 상황을 만납니다. 육체적이건 물질적이건 그 이상의 어떤 것이건 유혹 또는 미혹을 만납니다. 그때 어떤 사람은 일차적인 요구를 따라 행동해 버립니다. 그러나 좀 더 나은 사람은 이성적인 판단에 따라 행동합니다. 좀 더 나은 사람은 하나님의 뜻 안에서 인류의 보편적인 윤리와 도덕, 공동체의 가치를 이해하고 행동합니다. 성경에서 만나는 하나님의 뜻은 인류 보편적인 윤리와 도덕을 역행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이어야 합니다.

 

그러면 최선의 선택을 한 것이고 가장 나은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가장 훌륭한 선택을 했다 하더라도 그 선택의 결과가 우리에게 반드시 좋게 나타나는 것은 아닙니다.

 

요셉은 보디발 장군의 아내의 유혹을 뿌리쳤습니다. 그런데 그 유혹은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 유혹은 날마다 있었습니다. 요셉은 보디발의 아내를 마주치지 않으려고까지 노력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보디발 장군의 아내는 요셉을 붙잡고 유혹했습니다. 요셉은 그 자리를 피하고자 그녀가 잡고 있는 옷을 벗어버리고 도망쳤습니다.

 

그 일로 그녀는 매우 화가 났고 급기야 요셉을 모함해서 요셉이 자신을 희롱했다고 남편에게 거짓말을 합니다. 그 일로 보디발 장군은 요셉에게 매우 크게 분노합니다.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도덕적이고 윤리적으로 올바름을 선택했고 심지어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기 위해 선한 선택을 했는데 그 결과가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만약 요셉이 다른 선택을 했다면 달라졌을까요?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더 나빠집니다. 돌이킬 수 없게 됩니다. 죄는 언젠가는 드러나고 진실은 언젠가는 밝혀집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십니다.

 

양심의 선택, 도덕적이고 윤리적인 선택이 때로는 우리에게 힘든 결과를 가져오게 되더라도 그 선택이 맞습니다.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요셉처럼 하나님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살아오면서 신앙 양심에 위배되는 미혹을 경험한 일이 있습니까?

2. 어떻게 대응하셨습니까? 그리고 그 결과는 무엇입니까?

3.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뜻을 잘 분별하며 살아갈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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