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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39:20~23 “형통”

by 기대어 보기를 2026. 4. 29.

[창39:20-23]
20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21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
22 간수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23 간수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살펴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


 

보디발은 요셉을 잡아서 옥에 가두었습니다. 요셉이 갇힌 옥은 평범한 옥이 아니라 왕의 죄수를 가두는 감옥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삶의 기준으로 삼고 하나님 앞에 죄를 짓지 않기 위한 옳은 선택을 했는데 그 결과는 너무나 비참해졌습니다.

 

요셉은 어떤 감정이었을까요? 

 

일차적으로는 보디발 장군의 아내로부터 모함을 뒤집어썼습니다. 이것만으로도 너무나 화가 나고 억울한 감정이었을 것입니다. 

 

그 다음은 보디발 장군입니다. 요셉은 그동안 보디발 장군을 위해서 성실하게 일했습니다. 그리고 보디발 장군은 그런 요셉을 신임해서 가정총무라는 직책까지 주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그런 신임에 보답을 하듯이 보디발 장군이 더 잘되도록 노력했고 좋은 결실들을 맺었습니다. 

 

그런데 보디발 장군은 그런 요셉을 전혀 믿어주지 않았습니다. 말씀만을 토대로 본다면 요셉에게 해명할 기회나 변명할 수 있는 조치, 재판과 같은 과정 없이 옥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그것도 왕의 죄수들을 가두는 엄격한 감옥에 가두었습니다. 

 

보디발 장군에 대해서는 그동안 자신이 수고하고 노력해서 섬겼지만 그런 자신을 믿어주지 않음에 대해 서운하고 답답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은 하나님 앞에서 죄를 짓지 않으려 애썼습니다.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은 그렇게 매 순간의 유혹을 물리치며 살아냈습니다. 요셉이 그렇게 노력하고 죄와 싸웠다면 함께 하시는 하나님이 요셉이 처한 이 상황을 역전시켜 주셔야 하지 않을까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살았는데 현실적으로 일어난 일은 더 깊은 냉떨어지에 내몰려 버린 것입니다. 

 

이쯤되면 요셉의 마음속 깊은 곳에 있던 가슴 아픈 상처들까지 수면 위로 떠오를 것 같습니다. 형들의 끔찍한 악행, 배신과 공포, 버림받았다는 상처와 두려움까지 그 모든 경험들이 지금 요셉을 뒤흔들어 놓았을 것입니다. 

 

원망들이 쏟아질 법합니다. 인생에 대해서, 하나님에 대해서도 말입니다. 

 

그런데 다시 말씀을 읽어 보니 놀라울 따름입니다. 어쩌면 요셉이기에 당연한 결과라고 생각이 되지만 어떻게 저럴 수가 있을까 하는 질문이 생깁니다. 

 

요셉은 그렇게 옥에 갇힌 상황에서도 ‘형통’을 이루어 나갔습니다. 한 걸음 나아갔습니다. 성실하게, 주어진 환경에서도 낙망하지 않고 살아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때의 요셉과도 함께 하셨고 요셉에게 인자를 더해서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했습니다. 요셉은 그 감옥 안에서도 믿을 만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간수장은 요셉에게 모든 것을 맡기고 맡긴 것은 더 이상 묻지도 않았습니다. 그만큼 요셉을 신뢰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것을 묵상합니다. 이렇게 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요셉에게 인자를 베풀어서 더 나쁜 상황에 처하지 않게 하셨고, 하나님이 요셉에게 은혜를 베풀어서 간수장의 마음에 들도록 역사하셨고, 하나님이 계속해서 요셉과 동행하시며 요셉의 모든 일들을 도우시고 잘 풀리고 해결되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한 번 묵상해봅니다.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는 하나님이 함께 하셨다는 의미를 문제의 해결이라는 차원으로 생각합니다. 무엇이든 가능하신 전능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시니 내 모든 문제가 해결되어야 한다는 방식입니다. 형통이라는 단어도 그렇게 이해합니다. 

 

그런데 ‘함께’라는 단어는 관계적인 단어입니다. 함께[אֵת(에트)]는 친근함이나 가까운 곳에, ~와 함께, 가운데, ~앞에, ~곁에, ~위에, ~안에 등과 같은 의미입니다. 모두 관계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이 내 옆에, 내 안에, 내 앞에, 내 뒤에 계신다는 것입니다. 요셉이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어떤 곳에 있더라도 하나님이 함께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함께 계신다는 것은 모든 상황이 우리가 생각하는 극적인 해결을 위해 적극적으로 개입하지는 않는 것처럼 보이더라도 하나님은 일하고 계심을 의미합니다.

 

요셉이 처한 상황들을 보면 계속해서 나쁜 일들이 일어나고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지만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하시면서 사람들과의 관계 안에서 요셉을 붙잡고 있고 요셉이 한 걸음 나아가게 하는 일들을 만들어내십니다. 사실 이것은 요셉을 향한 하나님의 매우 큰 계획입니다. 지금 요셉은 그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는 것입니다. 

 

형통은 상황이 좋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앞으로 나아갈 힘이 있는 것이 형통이고 어떤 곳에서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며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 나가는 것이 곧 형통입니다. 

 

우리는 아직 이해할 수 없어도, 앞을 볼 수 없어도, 결과를 알지 못해도 하나님은 어떤 상황 속에서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오늘도 요셉으로부터 배웁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깊은 실망감을 경험한 일은 무엇입니까?

2. 어떻게 살아내셨습니까?

3. 하나님은 그 상황에서 여러분에게 어떤 의미였습니까?

4. 요셉과 같은 삶을 살아가려면 어떻게 하면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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