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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40:9~23 “깊은 실망 속에서”

by 기대어 보기를 2026. 5. 1.

[창40:9-23]
9 술 맡은 관원장이 그의 꿈을 요셉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꿈에 보니 내 앞에 포도나무가 있는데
10 그 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고
11 내 손에 바로의 잔이 있기로 내가 포도를 따서 그 즙을 바로의 잔에 짜서 그 잔을 바로의 손에 드렸노라
12 요셉이 그에게 이르되 그 해석이 이러하니 세 가지는 사흘이라
13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의 전직을 회복시키리니 당신이 그 전에 술 맡은 자가 되었을 때에 하던 것 같이 바로의 잔을 그의 손에 드리게 되리이다
14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바로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15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16 떡 굽는 관원장이 그 해석이 좋은 것을 보고 요셉에게 이르되 나도 꿈에 보니 흰 떡 세 광주리가 내 머리에 있고
17 맨 윗광주리에 바로를 위하여 만든 각종 구운 음식이 있는데 새들이 내 머리의 광주리에서 그것을 먹더라
18 요셉이 대답하여 이르되 그 해석은 이러하니 세 광주리는 사흘이라
19 지금부터 사흘 안에 바로가 당신의 머리를 들고 당신을 나무에 달리니 새들이 당신의 고기를 뜯어 먹으리이다 하더니
20 제삼일은 바로의 생일이라 바로가 그의 모든 신하를 위하여 잔치를 베풀 때에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에게 그의 신하들 중에 머리를 들게 하니라
21 바로의 술 맡은 관원장은 전직을 회복하매 그가 잔을 바로의 손에 받들어 드렸고
22 떡 굽는 관원장은 매달리니 요셉이 그들에게 해석함과 같이 되었으나
23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하지 못하고 그를 잊었더라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은 각각 자신들의 꿈을 요셉에게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요셉은 그들이 꾼 꿈을 해석해주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은 포도나무에 세 가지가 있고 싹이 나서 꽃이 피고 포도송이가 익었습니다. 그리고 손에 있는 파라오의 잔에 포도를 따서 즙을 짜 파라오의 손에 건네는 꿈이었습니다. 

 

요셉은 그 꿈을 듣고는 사흘 안에 파라오가 술 맡은 관원장을 복직시킬 것이라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잘 되시거든 나를 생각하고 내게 은혜를 베풀어서 내 사정을 파라오에게 아뢰어 이 집에서 나를 건져 주소서 나는 히브리 땅에서 끌려온 자요 여기서도 옥에 갇힐 일은 행하지 아니하였나이다.”

 

이번에는 떡 굽는 관원장의 꿈입니다. 그의 꿈엔 흰 떡 세 광주리가 관원장의 머리 위에 있는데 가장 윗 광주리에 파라오를 위하여 만든 구운 음식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새들이 그 광주리에서 그것들을 먹는 꿈이었습니다. 

 

그의 꿈은 사흘 안에 파라오가 그를 나무에 매달 것이라는 무서운 꿈이었습니다. 

 

그리고 요셉의 풀이처럼 사흘 후에 두 사람에게 그 일이 일어났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꿈을 풀이하는 지혜를 주셨습니다. 요셉은 그 은사를 통해 인생의 기대를 품게 되었습니다. 

술 맡은 관원장이 복원되면 그가 자신을 기억해 억울함을 도울 수 있을 것이란 기대를 했습니다. 

 

우리는 종종 그럽니다. 주위에 누군가에게 굉장한 일이 일어나면 그가 얻은 기회와 행운을 나에게도 좀 나눠주거나 그를 통해 나에게 더 어떤 유익한 일이 생길지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집니다. 

 

그때의 요셉이 그런 마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살아가면서 경험한 사실 중 하나는 모든 일이 내 계획대로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술 맡은 관원장은 요셉을 기억하지 않고 잊어버렸습니다. 

 

요셉은 술 맡은 관원장이 복원된 이후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매일 무슨 소식이 없나 기대하고 기다렸을 것입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도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서 그가 자신을 기억하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것입니다. 

 

기대했던 것이 무너지면 그 다음에 찾아오는 것은 실망감입니다.

 

아마 실망감이 밀려왔을 것입니다. 복합적인 감정이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자신이 그를 위해 했던 일을 왜 기억하지 못하는지 일종의 배신감 같은 것도 느꼈을 수도 있습니다. 

 

요셉이 경험한 실망은 생각해보니 살아오면서 종종 경험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다양한 감정들이 밀려 오는데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그리고 그런 실망의 순간에 우리는 이런 의문을 가집니다. 하나님은 왜 아무것도 하시지 않는가? 하나님은 왜 침묵하시는가?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

 

사람이 느끼는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것을 일부러 억지로 억누르거나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실망감에서 오는 상처와 아픔을 겪고 있는 스스로를 위로하고 마음을 쓰다듬어 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은 그런 감정에 함몰되어 버리는 것은 아닙니다. 더 나은 선택으로 한 걸음 내딛기 위한 위로와 회복의 과정입니다. 

 

마음을 추스린다는 말이 있습니다. 흩어지고 흔들린 감정과 생각을 정리하는 과정입니다. 내면을 정리하고 균형을 회복하는 과정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마음을 추스릴 수 있는 내면의 힘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요셉이 일어난 꿈을 듣고 해석했던 것처럼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믿음의 눈으로 바라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눈으로 모든 세상을 바라보려 한다면 비로소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고통에 함께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그것이 우리에게는 침묵처럼 보이고, 때로는 방관자처럼 느껴지시더라도 하나님에게는 결코 배신이나 망각과 같은 단어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느낄 수 있을 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깊고 오랜 침묵 속에서 기다리고 인내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오래참음이 성령을 따라 살아가는 삶의 태도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을 때도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것이 믿음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살아오면서 깊은 실망이나 배신감을 경험했던 일은 무엇입니까?

2. 지금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일 때문에 실망감을 경험하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3. 참아내고 버텨내야 하는 우리의 문제에 하나님은 무엇을 하고 계시다고 생각하십니까? 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뜻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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