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1:1-13]
1 만 이 년 후에 바로가 꿈을 꾼즉 자기가 나일 강 가에 서 있는데
2 보니 아름답고 살진 일곱 암소가 강 가에서 올라와 갈밭에서 뜯어먹고
3 그 뒤에 또 흉하고 파리한 다른 일곱 암소가 나일 강 가에서 올라와 그 소와 함께 나일 강 가에 서 있더니
4 그 흉하고 파리한 소가 그 아름답고 살진 일곱 소를 먹은지라 바로가 곧 깨었다가
5 다시 잠이 들어 꿈을 꾸니 한 줄기에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6 그 후에 또 가늘고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오더니
7 그 가는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삼킨지라 바로가 깬즉 꿈이라
8 아침에 그의 마음이 번민하여 사람을 보내어 애굽의 점술가와 현인들을 모두 불러 그들에게 그의 꿈을 말하였으나 그것을 바로에게 해석하는 자가 없었더라
9 술 맡은 관원장이 바로에게 말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내 죄를 기억하나이다
10 바로께서 종들에게 노하사 나와 떡 굽는 관원장을 친위대장의 집에 가두셨을 때에
11 나와 그가 하룻밤에 꿈을 꾼즉 각기 뜻이 있는 꿈이라
12 그 곳에 친위대장의 종 된 히브리 청년이 우리와 함께 있기로 우리가 그에게 말하매 그가 우리의 꿈을 풀되 그 꿈대로 각 사람에게 해석하더니
13 그 해석한 대로 되어 나는 복직되고 그는 매달렸나이다

만 이 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파라오가 등장합니다. 이집트의 최고 권력자이자 신으로 숭앙받는 존재인 파라오가 꿈을 꿉니다.
파라오의 꿈은 살찐 일곱 암소가 나일 강에서 나와 갈밭에서 풀을 뜯어 먹고 있었는데 그 후에 흉하고 파리한 일곱 암소가 올라와 살찐 암소들 옆에 있다가 살찐 암소들을 잡아먹는 꿈이었습니다.
파라오는 깜짝 놀라 잠에서 깨어 다시 잠이 듭니다.
이번에는 나무의 한 줄기에서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이 나오고 그 이후에 동풍에 마른 일곱 이삭이 나왔는데 그 마른 일곱 이삭이 무성하고 충실한 일곱 이삭을 잡아먹는 꿈이었습니다.
파라오는 아침에 일어나 번민했습니다. 파라오는 이집트의 모든 점술가와 현인들을 불러들여 그 꿈을 해석하게 했으나 아무도 해석하지 못했습니다.
그때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는 술 맡은 관원장입니다. 요셉이 꿈을 해석해 주었던 바로 그 사람입니다. 그는 파라오에게 자신의 죄를 기억한다면서 요셉의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요셉이 꿈을 풀어내는 지혜가 있음을 이야기합니다.
이 지점에서 멈추어 묵상해 보겠습니다.
말씀을 읽으며 생각이 확장됩니다. ‘드디어’라는 단어가 생각이 납니다. 이집트의 최고 권력자인 파라오가 등장을 하는데 이 년 전 있었던 두 관원장의 때와 똑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때 도움을 받았던 술 맡은 관원장이 요셉을 기억해 냅니다. 이로써 이제 요셉과 파라오의 만남이 이루어지고 이 만남은 요셉을 감옥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게 되리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이 지점에서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시고 그의 사랑하는 사람을 위한 구원의 계획을 반드시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역시 하나님!’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보이는 것이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오늘 본문에는 요셉이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없습니다. 요셉은 감옥 안에 그 깊고 어두운 곳에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계획과 큰 그림이 지금 보이지만 요셉은 오늘 이 본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요셉은 여느 때와 똑같이 그 감옥 안에 있을 뿐입니다. 요셉은 지금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날 요셉은 어떤 마음, 어떤 상태였을까요?
오늘도 이전과 다를 바 없는 자유 없이 매여 있는 하루라고 체념하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비록 힘들지만 오늘 하루도 힘내며 살자는 마음을 다지고 있었을까요? 아니면 하나님께 언제 저를 이곳에서 구원해 주실 것인지 묻고 기도하고 있었을까요?
그때의 요셉의 마음을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것처럼 요셉도 하나님께서 이런 일들을 이루어 가는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께서 일하고 계심이 보입니다. 그러나 그때의 요셉은 아직 모르고 있습니다.
문제는 오늘 우리도 요셉처럼 우리의 삶 속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도우심의 손길을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걱정되는 일이 있습니까?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아 답답한 일이 있습니까? 기도도 하고 하나님을 믿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고 있습니까?
요셉과 똑같은 상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미 움직이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가 그것을 느끼지 못할 뿐입니다.
이것을 기억한다면 우리는 한 가지를 더 질문해 볼 수 있습니다. 보이지 않지만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해 일하고 계시다면 우리는 어떤 삶의 태도로 하루하루를 살아내야 할까요?
두 가지를 묵상하게 됩니다. 하나는 ‘믿음’입니다. 그때의 요셉처럼 우리가 알아차리지 못하더라도 하나님은 우리의 삶을 만지고 계시다는 믿음을 마음속으로 끝까지 붙잡아야 합니다.
또 하나는 삶의 태도입니다. 우리는 매일 일어나는 일에 반응하며 살아갑니다. 그런데 그 반응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감옥 안의 요셉처럼 체념, 원망, 불평, 희망 없음, 짜증, 분노와 같은 감정들을 쏟아내며 하루를 살아가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하루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이 이미 일하고 있기에 긍정적인 삶의 태도로 스스로의 삶을 지지하며 살아가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이기도 합니다.
[살전5:17-18]
17 쉬지 말고 기도하라
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보이지 않아도, 오늘 하루를 “하나님 감사합니다”로 살아가야겠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지금 내 마음의 점수는 몇 점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2. 믿음은 우리의 마음과 컨디션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습니까?
3. 보이지 않더라도 하나님은 우리를 붙잡고 계신다는 말씀을 들을 때 무엇이 느껴집니까?
'묵상 > 창세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말씀묵상] 창세기 40:9~23 “깊은 실망 속에서” (0) | 2026.05.01 |
|---|---|
| [말씀묵상] 창세기 40:1~8 “복음은 타인에 대한 사랑을 통해 전해집니다” (0) | 2026.04.30 |
| [말씀묵상] 창세기 39:20~23 “형통” (0) | 2026.04.29 |
| [말씀묵상] 창세기 39:6~19 “그리스도인의 기준” (0) | 2026.04.28 |
| [말씀묵상] 창세기 39:3~5 “하나님을 보여주는 사람” (0) | 2026.04.27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