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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42:10~23 “사과”

by 기대어 보기를 2026. 5. 9.

[창42:10-23]
10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내 주여 아니니이다 당신의 종들은 곡물을 사러 왔나이다
11 우리는 다 한 사람의 아들들로서 확실한 자들이니 당신의 종들은 정탐꾼이 아니니이다
12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아니라 너희가 이 나라의 틈을 엿보러 왔느니라
13 그들이 이르되 당신의 종 우리들은 열두 형제로서 가나안 땅 한 사람의 아들들이라 막내 아들은 오늘 아버지와 함께 있고 또 하나는 없어졌나이다
14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이르기를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
15 너희는 이같이 하여 너희 진실함을 증명할 것이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너희 막내 아우가 여기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여기서 나가지 못하리라
16 너희 중 하나를 보내어 너희 아우를 데려오게 하고 너희는 갇히어 있으라 내가 너희의 말을 시험하여 너희 중에 진실이 있는지 보리라 바로의 생명으로 맹세하노니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는 과연 정탐꾼이니라 하고
17 그들을 다 함께 삼 일을 가두었더라
18 사흘 만에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나는 하나님을 경외하노니 너희는 이같이 하여 생명을 보전하라
19 너희가 확실한 자들이면 너희 형제 중 한 사람만 그 옥에 갇히게 하고 너희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너희 집안의 굶주림을 구하고
20 너희 막내 아우를 내게로 데리고 오라 그러면 너희 말이 진실함이 되고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하니 그들이 그대로 하니라
21 그들이 서로 말하되 우리가 아우의 일로 말미암아 범죄하였도다 그가 우리에게 애걸할 때에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으므로 이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하도다
22 르우벤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너희에게 그 아이에 대하여 죄를 짓지 말라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도다 하니
23 그들 사이에 통역을 세웠으므로 그들은 요셉이 듣는 줄을 알지 못하였더라

 


 

형들을 마주한 요셉은 자신의 과거를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형들에 의해 구덩이에 떨어지고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렸습니다. 그때 요셉은 형들에게 애걸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들은 요셉의 간청을 매몰차게 거절하고 요셉에게 잊을 수 없는 상처를 입혔었습니다.

 

요셉이 마주한 과거는 형들의 배신감과 자신을 괴롭게 했던 폭력과 죽음의 공포였습니다.

 

그동안 잊은 듯하기도 했었습니다. 요셉의 첫째 아들의 이름이 ‘므낫세’입니다. ‘잊게 하는 자’라는 의미입니다. 요셉은 아들을 낳고 이집트의 총리로서의 삶을 살아가며 그동안 고생했던 인생을 하나님께서 갚아주셨고, 지나간 시간들은 이제 떨쳐낼 수 있을 것 같은 마음의 평안을 누렸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깊은 트라우마와 상처는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도 다시 마주하게 되면 하나도 잊혀지지 않고 다가옵니다. 충분한 애도와 진정 어린 사과와 회복을 경험한다 하더라도 온전히 씻겨지지 않습니다.

 

요셉은 형들을 보면서 마음속 고통이 요동쳤습니다. 복수하고 싶었을까요? 지금은 그럴 수 있는 힘이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 묵상에서 더 생각해 보려 합니다.

 

요셉은 형들을 첩자로 몰아세웁니다.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이 첩자가 아니라고 항변하였으나 요셉은 듣지 않고 그들을 옥에 가두어 버립니다.

 

그러면서 정탐꾼이 아님을 증명하려면 한 사람은 볼모로 옥에 갇혀 있고 나머지는 곡식을 가지고 가서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고 했습니다.

 

이 일로 과거의 사건을 마주한 사람은 요셉만이 아니게 되었습니다. 형들도 그동안 잊고 지냈던지 아니면 평생 마음속에 미안함을 가지고 지냈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때 그 일을 직면하게 됩니다.

 

그들은 말합니다.

 

“우리가 요셉의 일로 범죄하였도다.”

 

“요셉이 우리에게 애걸할 때 그 마음의 괴로움을 보고도 듣지 아니하였다. 이제 그 괴로움이 우리에게 임했다.”

요셉을 살리고자 했던 르우벤은 말합니다.

 

“내가 너희에게 요셉에 대해서 죄를 짓지 말자고 하지 아니하였더냐 그래도 너희가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그의 핏값을 치르게 되었다.”

 

그런데 조금 이상합니다. 이 일과 요셉의 일이 어떻게 이어지는 것일까요? 공통점이나 연관성이 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지금 이 일로 요셉의 일을 떠올리게 된다는 것에서 저는 그때의 그 일이 요셉에게만 큰 일은 아니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요셉의 형들도 나름대로 자신들이 했던 일에 대해서 마음속에 짐으로 남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자신들의 죄를 마음 깊은 곳에 묻어둔 채 살아왔던 것 같습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납니다. 다스리지 못한 분노와 미움으로 상처를 주었던 일들이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서 그런 일들에 대해 후회도 하지만 또 사과도 제대로 하지 못한 일들이 가족이라는 가까운 공동체 안에는 뒤엉켜 있습니다.

 

그런 것들이 쌓이면 서로의 상처가 얼룩져 ‘애증’이 되어 버립니다.

 

그런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어떻게 회복은 이루어지는 것일까요?

 

앞으로도 이 부분을 더 묵상하겠지만 오늘은 한 가지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그것은 ‘사과’입니다.

 

저와 함께 이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며, 신앙의 삶 속에서 예수님을 온전히 따르고자 하는 사람들로부터 먼저 ‘사과’가 나타나야 합니다. 가족이니까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여기거나 시간이 지나면 다 잊어지겠지라며 덮어두고 살아가는 것이 우리인데, 오늘 요셉과 형들의 모습을 보면서 결코 그렇지 못함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과할 수 있는 용기를 내야 합니다. 여러분이 마주해야 할 과거로부터 지금까지의 미안함이나 부끄러움, 상처 주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마5:23-24]
23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24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

 


 

[묵상을 위한 질문]

1. 지금 가족에게 사과할 것은 무엇입니까?

2. 가족에게 사과받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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