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42:1-9]
1 그 때에 야곱이 애굽에 곡식이 있음을 보고 아들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서로 바라보고만 있느냐
2 야곱이 또 이르되 내가 들은즉 저 애굽에 곡식이 있다 하니 너희는 그리로 가서 거기서 우리를 위하여 사오라 그러면 우리가 살고 죽지 아니하리라 하매
3 요셉의 형 열 사람이 애굽에서 곡식을 사려고 내려갔으나
4 야곱이 요셉의 아우 베냐민은 그의 형들과 함께 보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의 생각에 재난이 그에게 미칠까 두려워함이었더라
5 이스라엘의 아들들이 양식 사러 간 자 중에 있으니 가나안 땅에 기근이 있음이라
6 때에 요셉이 나라의 총리로서 그 땅 모든 백성에게 곡식을 팔더니 요셉의 형들이 와서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려 절하매
7 요셉이 보고 형들인 줄을 아나 모르는 체하고 엄한 소리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되 너희가 어디서 왔느냐 그들이 이르되 곡물을 사려고 가나안에서 왔나이다
8 요셉은 그의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그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더라
9 요셉이 그들에게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정탐꾼들이라 이 나라의 틈을 엿보려고 왔느니라

기근이 온 땅을 덮었고 야곱의 가족 역시 어려움에 처했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을 이집트로 보내 곡식을 구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베냐민만은 보내지 않았습니다.
요셉을 잃은 상처가 아직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10명의 아들들은 이집트에 내려가서 양식을 구하려 했습니다.
드라마 같은 장면이 펼쳐집니다. 요셉의 형들이 도착한 곳에 이집트의 총리인 요셉이 백성들에게 곡식을 판매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집트의 총리를 보자 그 앞에서 땅에 엎드렸습니다. 그때 요셉은 자신 앞에 엎드린 사람들이 바로 자신을 팔아넘겼던 형들이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그러나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전혀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성경은 흥미로운 부분을 보여줍니다.
‘요셉이 그들에 대하여 꾼 꿈을 생각하고’
그렇습니다. 요셉이 어렸을 때 꾸었던 꿈이 있었습니다. 형들의 곡식단이 자신에게 절을 하는 꿈이었습니다. 절묘하게 지금 그 꿈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곡식을 구하기 위해 찾아온 요셉의 형들이 지금 요셉에게 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형들의 곡식단이 요셉의 곡식단에게 절을 하는 것과 같습니다.
요셉은 그때의 꿈을 생각했습니다. 그 꿈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감탄할 수 있을 것입니다. 꿈을 이루시는 하나님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꿈을 잊지 않고 마음에 담아두고 있는 요셉을 보면서 하나님이 주신 꿈을 잊지 않으면 언젠가는 성취된다는 의미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요셉의 스토리는 청소년들에게 꿈에 대한 비전을 이야기하는 소재로 종종 사용됩니다. 요셉의 인생 스토리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배우고 도전받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좀 더 깊이 생각해 볼 부분이 있습니다.
요셉이 어려서 꾼 꿈은 하나님이 요셉에게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그 꿈을 요셉에게 보여주셨던 것일까요?
요셉이 형들보다 큰 사람이 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신 것일까요? 아니면 훗날 미래에 오늘과 같은 날이 올 것이라는 걸 보여주신 것일까요?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분명 그 꿈대로 오늘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만약 그렇다면 도대체 그 꿈은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보여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 것일까요?
우리는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가 된 과정을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요셉이 파라오의 꿈을 해몽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으로 끝났다면 어쩌면 요셉은 총리가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요셉이 총리가 된 이유는 꿈을 해석했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 꿈을 해석하고 그 해석을 통해 이집트를 구할 대책을 세웠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꿈을 보여주신 목적은 단순히 미래를 알려주시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 속에 요셉을 참여시키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에게 오늘 일어날 일을 그 옛날 꿈으로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그 꿈이 생각날 때 어쩌면 요셉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통해 이루시고자 하는 일들을 생각했을지도 모릅니다.
그것은 창세기 후반부에 요셉이 자신의 입으로 고백하는 내용 중에서 나오게 될 것입니다.
꿈이 성취된 오늘의 요셉을 묵상해 봅니다. 종류는 다르지만 우리는 어떤 꿈과 비전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을 이루기까지 노력하고 요셉처럼 성실하게, 믿음으로 인내하며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이루어주실 것이라는 믿음도 가집니다.
좋은 마음가짐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이집트의 총리로 세우는 것이 목적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이 형들의 절을 받게 하려고 꿈을 꾸게 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어쩌면 요셉에게 물었을 것입니다.
“그 꿈대로 되었다. 그러니 너는 이제 어찌 할 것이냐?”
그리고 오늘 우리에게도 똑같이 묻습니다. 우리가 성취하고 싶은 그곳에 도달했을 때 어찌 할 것이냐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사회적 지위나 부와 명성을 얻는 것을 넘어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찾아야 할 내용입니다. 무엇을 위해 살 것이냐라는 질문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여러분의 꿈은 무엇이었습니까?
2. 남아 있는 삶에서 이루고 싶은 것은 무엇입니까? 왜 그것을 이루려 하십니까?
3. 하나님께서 우리의 꿈에 대해서 말씀해주신다면 무엇이라 하실 것 같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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