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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42:24~25 “애통하는 사람”

by 기대어 보기를 2026. 5. 11.

[창42:24-25]  
24 요셉이 그들을 떠나가서 울고 다시 돌아와서 그들과 말하다가 그들 중에서 시므온을 끌어내어 그들의 눈 앞에서 결박하고  
25 명하여 곡물을 그 그릇에 채우게 하고 각 사람의 돈은 그의 자루에 도로 넣게 하고 또 길 양식을 그들에게 주게 하니 그대로 행하였더라




요셉은 형들을 사흘 동안 감옥에 가두었다가 시므온을 결박하게 하고, 나머지 형제들은 곡식을 자루에 채우게 한 뒤 집으로 보내려 했습니다. 시므온을 잡아둔 이유는 막내인 베냐민을 데려오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조금 특별한 모습이 보입니다.

하나는 그 일을 진행하는 과정에서의 요셉의 행동입니다. 요셉은 자신의 신분을 속하고 일부러 형들의 말을 다 알아들으면서도 통역관을 세웠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이집트 말로 말했습니다. 철저히 자신의 신분을 숨겼습니다. 요셉의 형들이 이집트의 총리가 자신들의 동생일 것이라고는 결코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셉이 그렇게 형들과 대화를 하다가 자리를 떠납니다. 형들이 없는 곳으로 가서 울었습니다.

울다 [בָּכָה(바카)]라는 말은 그냥 우는 것이 아닙니다. 깊은 슬픔 속에서 나오는 통곡입니다. 요셉은 통곡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형들을 다시 마주하며 과거의 상처와 억울함이 복받쳐 올랐던 것일까요?

요셉의 울음을 묵상해 볼 때, 그 울음의 이유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는 것 같습니다. 사람이 운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심리학이나 정신분석학에서는 인간이 통곡하며 우는 행동에 대해 몇 가지 이야기를 합니다. 그것은 ‘자기 연민’, 그리고 ‘죄책감과 후회’ 등과 같은 마음의 상태에서 나오기도 합니다. 또 눈물은 방어적인 부분에서의 무장 해제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싸움을 앞둔 사람이 자신의 방어기제가 무너지는 애통의 눈물을 흘린다는 것은 항복하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무력한 존재가 됩니다.

무엇보다 힘을 가진 사람이 흘리는 통곡은 가장 인간적인 진실성이 드러나는 행위입니다.

요셉은 형들의 만행으로 인해 자기 연민의 감정이 몰려와 울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형들에게 복수할 힘도 있고 명분도 있었음에도 이렇게 운다는 것은, 그때 이미 요셉의 마음속에는 복수보다 더 중요한 가치를 두고 스스로 싸우고 있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원수에 대해서도 인간의 양심과 사랑의 마음에서 나오는 거룩한 멈춤과 같은 것입니다.

지금 겉으로 보이는 일들은 요셉이 형들을 향한 복수의 칼날을 세우는 것 같지만, 요셉이 통곡했다는 것에서 이미 그의 마음은 흔들리고 있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이 요셉의 울음을 묵상해 봅니다. 우리도 요셉처럼 울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면서 우리를 불편하게 하는 일들을 만납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마음을 날카롭게 세우며 어떻게 되돌려줄지를 생각합니다. 그런 감정을 담아두고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는 가시 돋친 말과 행동을 해 버립니다.

요셉의 울음 앞에서 우리도 같이 울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복수할 힘이 있고, 방법도 있고, 명분도 있다 할지라도 이를 악물고 복수를 선택하기보다 하나님 앞에 눈물로 토로하고 마음을 쏟아 내어버리는 선택을 할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자기 연민, 억울함 등이 찾아오겠지만 주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복수보다 애통을 선택한다면 그것이 복이 되고 하나님으로부터 위로를 받게 될 것입니다.

내 자신을 하나님 앞에 가져가는 눈물, 타인에 대한 연민과 애통의 감정으로 흘리는 눈물, 그 진실함의 눈물이 흐르도록 주님 우리를 품어주시옵소서.




[묵상을 위한 질문]

1. 포기하고 내려놓음의 눈물을 흘려본 것은 무엇입니까?  
2. 누군가의 일로 울어본 것은 무엇입니까?  
3. 우리가 더 애통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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