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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43:1~15 “유다의 보증”

by 기대어 보기를 2026. 5. 14.

[창43:1-15]  
1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2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오라  
3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히 경고하여 이르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4 아버지께서 우리 아우를 우리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내려가서 아버지를 위하여 양식을 사려니와  
5 아버지께서 만일 그를 보내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내려가지 아니하리니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의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6 이스라엘이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또 다른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말하여 나를 괴롭게 하였느냐  
7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와 우리의 친족에 대하여 자세히 질문하여 이르기를 너희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느냐 너희에게 아우가 있느냐 하기로 그 묻는 말에 따라 그에게 대답한 것이니 그가 너희의 아우를 데리고 내려오라 할 줄을 우리가 어찌 알았으리이까  
8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9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10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  
11 그들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 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릴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이니라  
12 너희 손에 갑절의 돈을 가지고 너희 자루 아귀에 도로 넣어져 있던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잘못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13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15 그 형제들이 예물을 마련하고 갑절의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 앞에 서니라




유다는 이스라엘에게 이집트에 가기 위해 해결해야 할 일들을 이야기합니다.

그것은 두 가지입니다. 베냐민을 데리고 가야 한다는 것, 또 하나는 자루에 담겨 온 돈을 되돌려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문제는 비교적 쉽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였습니다. 그러나 첫 번째 문제는 달랐습니다. 

이스라엘은 베냐민을 보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다를 비롯한 아들들에게 어찌하여 베냐민에 대한 이야기를 해서 자신을 괴롭게 만들었냐며 책망합니다. 

어제 나누었던 것처럼 그 이야기는 처음 곡식을 가지고 왔을 때 끝내었어야 할 일인데, 이제 그 문제를 다시 끄집어내어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책망에 아들들은 이집트의 총리가 베냐민을 데리고 오라 할 줄은 몰랐었다고 항변합니다. 

둘 모두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우리도 어떤 문제가 생기면 이런 식의 대화를 합니다. 그때의 잘못을 들추고 또 누군가를 탓하거나 변명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함으로써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요? 분명 실패 속에서도 교훈을 얻을 수는 있겠지만, 과거의 잘못을 탓하고 변명하는 것으로는 지금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과 아들들은 과거의 일을 이야기하며 서로를 탓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유다가 이스라엘에게 말합니다.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유다가 말한 ‘담보’의 의미를 좀 더 알 필요가 있습니다. 담보란 ‘עָרַב(아라브)’라는 단어입니다. 문맥상 ‘보증인이 되다’는 의미지만, 이 단어에는 ‘서로 바꾸다, 섞다, 묶다, 책임을 떠맡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이는 단순히 “내가 책임지겠다”는 말이 아닙니다. 법적인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입니다. 자신을 거는 행위입니다. 

실패하면 평생의 수치가 되고, 가족 내의 신뢰와 질서의 관계가 무너지며, 끝까지 책임을 떠맡아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즉, 베냐민의 운명을 자신의 운명과 묶겠다는 의미입니다. 

유다가 한 말의 무게를 느낄 수 있지만, 더 놀라운 부분은 그런 말을 유다가 했다는 것입니다. 

유다는 어떤 사람일까요?

이 모든 일들이 일어난 계기로 돌아가 보면, 요셉을 미워했던 형들이 요셉을 구덩이에 밀어 넣고 죽이려 하다가 나중에는 이집트의 노예상에게 팔아넘겼습니다. 

그 일에 일조한 사람이 유다입니다. 유다는 “우리 동생을 죽이고 그의 피를 덮어 둔들 무엇이 유익할까? 자, 그를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고 그에게 우리 손을 대지 말자. 그는 우리의 동생이요 우리의 혈육이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요셉을 노예로 팔아버리자고 제안한 비정한 사람이 바로 유다입니다. 그 이후에 성경은 또 유다의 행보를 보여줍니다. 가나안 여인을 아내로 맞이하고 아들들을 낳았으며, 장남에게 다말이라는 여인을 며느리로 삼게 했는데 여러 사건 끝에 며느리인 다말을 불로 태워 죽이려 했던 사람도 유다였습니다. 

매정하고 방탕하며 비인간적인 사람이 바로 유다였고, 중간에는 아버지로부터 떠나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유다는 지금 아버지 이스라엘 곁에 머물고 있습니다.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그리고 변화된 것 같습니다. 다말 사건 이후 그에게 어떤 변화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지금 유다는 자신의 생명을 베냐민과 엮으며 반드시 베냐민도, 시므온도, 양식도 구해 오겠다고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진심 어린 말을 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유다의 말을 받아들입니다. 

창세기 42장에서는 야곱을 ‘야곱’이라 불렀습니다. 그런데 창세기 43장에서는 야곱이 아니라 ‘이스라엘’이라 부릅니다. 그 이유를 생각해 보니,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역사의 수레바퀴가 돌아갈 때, 하나님의 언약과 공동체적 사명이 강조되는 지점에서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이 더욱 의미 있게 들립니다.

이 일로 이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아직 보이지 않는 계획이 하나씩 맞추어져 가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일은 유다의 진심 어린 설득과 유다를 믿고 베냐민을 보내기로 결정한 이스라엘의 결단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진짜 중요한 것을 위해 포기할 것을 내려놓고, 걱정과 두려움을 넘어 진짜 중요한 것을 선택하며 앞으로 나아갈 용기가 하나님의 역사하시는 통로가 되는 현장을 봅니다. 그리고 우리도 그렇게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중요한 것에 진심을 걸어 본 경험이 있습니까?
2. 여러분은 어떤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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