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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43:1~15 “야곱의 회피”

by 기대어 보기를 2026. 5. 13.

[창43:1-15]  
1 그 땅에 기근이 심하고  
2 그들이 애굽에서 가져온 곡식을 다 먹으매 그 아버지가 그들에게 이르되 다시 가서 우리를 위하여 양식을 조금 사오라  
3 유다가 아버지에게 말하여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에게 엄히 경고하여 이르되 너희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으니  
4 아버지께서 우리 아우를 우리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내려가서 아버지를 위하여 양식을 사려니와  
5 아버지께서 만일 그를 보내지 아니하시면 우리는 내려가지 아니하리니 그 사람이 우리에게 말하기를 너희의 아우가 너희와 함께 오지 아니하면 너희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라 하였음이니이다  
6 이스라엘이 이르되 너희가 어찌하여 너희에게 또 다른 아우가 있다고 그 사람에게 말하여 나를 괴롭게 하였느냐  
7 그들이 이르되 그 사람이 우리와 우리의 친족에 대하여 자세히 질문하여 이르기를 너희 아버지가 아직 살아 계시느냐 너희에게 아우가 있느냐 하기로 그 묻는 말에 따라 그에게 대답한 것이니 그가 너희의 아우를 데리고 내려오라 할 줄을 우리가 어찌 알았으리이까  
8 유다가 그의 아버지 이스라엘에게 이르되 저 아이를 나와 함께 보내시면 우리가 곧 가리니 그러면 우리와 아버지와 우리 어린 아이들이 다 살고 죽지 아니하리이다  
9 내가 그를 위하여 담보가 되오리니 아버지께서 내 손에서 그를 찾으소서 내가 만일 그를 아버지께 데려다가 아버지 앞에 두지 아니하면 내가 영원히 죄를 지리이다  
10 우리가 지체하지 아니하였더라면 벌써 두 번 갔다 왔으리이다  
11 그들의 아버지 이스라엘이 그들에게 이르되 그러할진대 이렇게 하라 너희는 이 땅의 아름다운 소산을 그릇에 담아 가지고 내려가서 그 사람에게 예물로 드릴지니 곧 유향 조금과 꿀 조금과 향품과 몰약과 유향나무 열매와 감복숭아이니라  
12 너희 손에 갑절의 돈을 가지고 너희 자루 아귀에 도로 넣어져 있던 그 돈을 다시 가지고 가라 혹 잘못이 있었을까 두렵도다  
13 네 아우도 데리고 떠나 다시 그 사람에게로 가라  
14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그 사람 앞에서 너희에게 은혜를 베푸사 그 사람으로 너희 다른 형제와 베냐민을 돌려보내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내가 자식을 잃게 되면 잃으리로다  
15 그 형제들이 예물을 마련하고 갑절의 돈을 자기들의 손에 가지고 베냐민을 데리고 애굽에 내려가서 요셉 앞에 서니라




시간이 흘렀습니다. 온 땅의 기근은 해결되지 않았습니다. 야곱의 가족은 이집트에서 가져온 식량이 다 떨어졌습니다.  

야곱은 다시 아들들에게 이집트에 가서 양식을 구해 오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야곱과 유다의 긴 대화가 시작됩니다. 그런데 그 대화의 내용은 개인적으로 당혹감을 느끼게 합니다.  

창세기 42장에서 야곱의 아들들이 양식을 구해 오는 과정에서 있었던 의문점과 남겨진 과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첫째, 양식은 구해 왔으나 시므온이 이집트에 잡혀 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시므온을 데리고 오려면 베냐민을 데리고 이집트로 가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야곱은 베냐민을 이집트로 보내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났습니다. 이집트에서 가져온 양식을 다 먹을 만큼의 시간이 지났습니다. 그 기간이 얼마인지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가족의 생존을 위해 양식을 구해 왔다면 그 대식구가 충분히 먹을 수 있을 만큼 꽤 많은 양이었을 것입니다. 적어도 농사를 지어 수확하기까지 버틸 수 있을 만큼 가지고 오지 않았을까 생각됩니다.  

그런데 그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시므온이 이집트의 감옥에 갇혀 있다는 것이 더 큰 문제가 아닐까요? 야곱이 베냐민을 보내지 못하는 마음도 이해가 되기는 하지만, 시므온을 구해 오는 것이 중요한 일이지 않았을까요?  

그런데 시므온을 데리러 오려는 시도를 하지 않았습니다. 시므온을 볼모로 잡혀 놓고 얻어 온 식량을 다 먹을 때까지 시므온을 데려오려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매정하다고 해야 할까요? 마음이 불편합니다. 시므온을 잡혀 놓고 얻은 식량으로 음식을 먹으며 어떤 대화를 했을까요? 어떤 기분이었을까요? 음식을 즐겼을까요?  

매정함, 차별, 편애, 이기심과 같은 단어들이 떠오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식량이 떨어지자 그동안 마주하지 않았던 일, 시므온을 볼모로 잡혀 놓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 또다시 양식을 구하러 이집트로 아들들을 보내려 했다는 것이 저는 불편합니다.  

오늘 야곱은 저에게 실망스럽습니다. 부모로서 지금 보여 주는 모습은 참 부끄럽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야곱에 대해 실망감을 드러내지만, 그의 모습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면 저도 해결짓지 않고 그냥 덮어 둔 채 살아가는 것들이 있습니다.  

사과해야 할 누군가에게 사과하지 않고,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으로부터 계속 도망치고 회피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누군가를 곤란하게 했으면서도 또 즐겁게 떠들고 음식을 먹을 때에는 만족감을 느끼기도 합니다.  

야곱은 우리의 죄인 된 모습을 그대로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런 걸까요? 사실 계속해서 저는 ‘야곱’이라는 이름을 사용했지만 창세기 43장에서는 야곱이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42장에서는 야곱이라고 기록되어 있었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 묵상에서 조금 더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지어 주신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야곱이지만, 여전히 부끄러운 죄인의 모습이 그대로 드러납니다. 그 모습은 제 자신 같아서 부끄러움과 동시에 스스로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갈 수 있기를 원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오랫동안 외면하고 회피했던 일들이 있습니까?  
2. 스스로 이기적으로 행했던 일들은 무엇입니까?  
3. 예수님의 십자가를 따라간다면 그 일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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