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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5:1~31 아담의 족보

by 기대어 보기를 2025. 11. 13.

[창5:1-31]
1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2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
3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의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4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5 그는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6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7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8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9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10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1 그는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12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13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14 그는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15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16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17 그는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18 야렛은 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19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0 그는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21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22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23 그는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25 므두셀라는 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26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를 낳았으며
27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28 라멕은 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29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30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31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32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창세기 5장은 아담의 족보 또는 계보라고 불립니다. 아담의 후손들에 대한 기록이 이어집니다. 아담에서 구약시대의 중요한 분기점에 있는 인물인 노아까지 10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정리를 해 보자면 아담 - 셋 - 에노스 - 게난 - 마할랄렐 - 야렛 - 에녹 - 므두셀라 - 라멕 - 노아입니다.

어쩌면 단순한 자손들의 이름이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지만 이 족보에는 특징적인 인물들도 있고 우리의 궁금증을 자극하는 요소들도 있습니다. 

인물들을 중심으로 생각해 보겠습니다. 

아담은 인류의 시조입니다. 하나님께서 흙을 빚으시고 생기를 불어넣어 살아있는 생령이 된 사람입니다. 또 하나님은 그의 갈빗대를 취하여 여성을 만드셔서 서로 돕는 베필로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아담이 130세에 낳은 아들 셋은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한 아담의 둘째 아들 아벨을 대신하여 구속사적 계보를 이어간 인물입니다. 

셋의 아들 에노스는 사람들과 함께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시작한 인물입니다. 

에녹은 아담의 7대 후손입니다. 그는 아주 특별한 인생을 살았던 사람입니다. 평생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친밀한 관계로 지냈던 사람인데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셔서 죽음을 보지 않고도 하나님이 데리고 간 사람입니다. 

무드셀라는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 살았던 인물입니다. 무려 969년을 살았습니다. 상상할 수 없는 나이입니다. 

그런데 무두셀라는 969년을 살았지만 그건 무드셀라만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아담의 족보에 기록된 사람들의 나이를 보면 기본적으로 800~900세 이상 살았습니다. 에녹이 365세인데 365세를 살다가 죽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에녹은  죽지 않고 하나님이 데려갔습니다. 그러니 기본적으로 당시에는 900년가량 다 살았던 시대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수명이 길어져서 100세 시대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1950년에는 평균 생존 연령이 47.9세였고 1960년대에는 53.8세였다고 합니다. 70년 전에는 기대수명이 오늘날의 절반 정도로 짧았습니다. 

그런 점에서 평균 수명이 900세가 넘는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우리나라의 기준으로 본다면 900년을 산 사람은 고려시대부터 지금까지의 시대적인 변화를 모두 겪은 사람입니다. 

사람이 그 정도 살아가면 그는 어떤 경험치를 가지고 있을지 상상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마치 이 족보에 기록된 사람들의 수명에 대해서 의문을 가지게 되고 또 어떤 변론들은 당시의 지구의 환경이 그렇게 오래 살 수 있었다는 가설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어떤 학자들은 문자 그대로의 나이를 실제 나이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반면에 또 다른 학자들은 상징적 의미를 가진 숫자로 이해해야 한다고 말 합니다. 

여전히 알 수 있는 것은 없습니다. 다시 한번 성경은 역사적 사실을 객관적으로 기록한 책이 아니라 믿음과 신앙고백의 책임을 상기하게 되는 부분입니다. 

이번에는 이런 궁금증을 뒤로하고 족보에 드러난 의미를 묵상해 보겠습니다. 

아담의 족보에는 특징이 있습니다. 한 가지는 이미 나눴습니다. 나이가 많다는 특징입니다. 

그런데 좀 더 묵상할 수 있는 특징이 있습니다. 그것은 족보를 기록한 양식입니다. 이런 것입니다. 

누가 몇 세에 누구를 낳고 몇 세에 죽었더라는 기록입니다. 이 형식이 계속 반복됩니다. 

그래서 아담의 후손들은 어떤 면에서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오랜 시간을 살았는데 그 끝은 죽었더라로 끝납니다. 

어떤 면에서 당연한 결과겠지만 여기에 의미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대족보가 기록된 곳이 몇 군데 있습니다. 그중에 대표적인 것이 구약은 창세기 5장이고 신약은 마태복음 1장입니다. 

마태복음 1장은 아브라함에서 예수 그리스도까지 이르는 족보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족보에는 창세기의 족보와 대비되는 양식으로 있습니다. 

그것은 누가 누구에게서 누구를 낳고 형식이 반복된다는 것입니다. 창세기와 확실히 구별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창세기는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장수했지만 결국에는 죽었다로 끝납니다. 그런데 마태복음의 족보에는 죽었다는 말이 없습니다. 실제로는 죽었지만 죽었다는 기록을 하지 않았습니다. 

이 차이는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요? 

아담에서 노아까지의 시대는 죄악이 관영해 가는 시대였습니다. 노아 때에 절정을 이룹니다. 그래서 노아의 때에는 하나님께서 물로 세상을 심판하십니다. 그리고 그 심판 이후에 성경에 기록된 사람들의 수명은 급격히 짧아집니다. 

반면 마태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이어진 사람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으로 이어진 사람들은 육체의 죽음을 경험하나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의 생명을 소유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그들이 죽었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생명을 이어가는 사람으로서 기록해 놓은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아담의 족보를 보면서 의문을 가지기도 하고 당시의 사람들의 수명을 보고 부럽거나 놀라워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죄악을 향해 나아가는 시대의 사람들은 아무리 오래 살고 어떤 부나 영화를 누린다 하더라도 결국에는 죽었다로 끝나버리는 인생이 됩니다. 

반면 힘들고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더라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소망으로 이어지는 사람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소유하고 살아갑니다. 그래서 육체의 죽음은 있으나 영원한 생명을 소유한 사람들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아담의 후손 중 기억에 남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2. 여러분은 몇 살까지 살고 싶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3. 마지막 때를 준비할 때 여러분에게 우선순위로 해야 할 일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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