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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6:14 생령 그리고 육체

by 기대어 보기를 2025. 11. 14.

[창6:1-4]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성경에서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없는 말씀 중 하나입니다. 

사람이 땅 위에서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났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어떤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위해서는 생명을 잉태할 수 있는 여성을 통해서만 가능하기에 번성하기 이전부터 딸은 계속 태어났고 그녀들은 어머니가 되었었습니다. 

그렇기에 여기에서 사람의 딸은 특별한 의미가 있는 상징적인 표현입니다. 그것은 아마 그다음에 나오는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해서 언급하기 위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 등장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아들들이 우리가 생각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러면 이 하나님의 아들들은 누구인가? 그것에 대한 해석이 난재중 하나 입니다. 

이것에 대한 한 가지 해석은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사들로 보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해석의 근거는 그 뒤에 이어지는 또 다른 난제 중 하나인 ‘네피림’ 때문입니다. 

이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아 낳은 자녀들이 네피림입니다. 이 네피림은 [נְפִיל(네필)]이고 그 의미는 거인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네피림을 거인족으로 봅니다. 

이것은 보통의 남녀가 만나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출산하는 경우가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말 그대로 이들의 자녀가 ‘거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아들들을 평범한 사람이 아닌 천사들로 보는 경혜가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해주는 근거들도 있습니다. 우리가 보고 있는 성경은 66권으로 ‘정경’이라고도 부릅니다. 그러나 정경 외에 하나님에 대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기록된 글들이 있습니다. 그들 중에 정경에는 포함되지 못한 글들이 있습니다. 

크게는 외경이라고 불리는 글입니다. 이것들은 성경과 유사하지만 정경으로 인정되기에는 어려운 글입니다. 

위경이라고 불리는 글이 있습니다. 위경은 거짓으로 쓰인 책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그만큼 신빙성이 떨어지고 성경으로써의 가치가 없는 책입니다. 

그러나 그 위경 중에 ‘에녹서’가 있습니다. 이 에녹서는 아담의 후손 중 하나님과 동행하다 죽음의 경험 없이 하나님이 데려간 사람의 이름을 빌어 기록된 책입니다. 그 에녹서에 ‘천사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그들을 아내로 삼으려 내려왔다 ‘는 내용이 있습니다. 

이 위경은 에티오피아에서는 정경으로 인정받고 있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에서 하나님의 아들들을 천사들로 보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아내로 취한 천서들은 타락한 천사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에 대한 두 번째 견혜는 ‘셋’의 후손으로 보는 견혜입니다. 

우리는 이전에 아담의 두 아들 중 가인이 놋 땅으로 옮겨가 거주하며 문명을 이루어가는 내용을 나눴습니다. 

그리고 죽은 아벨을 대신해 셋이 경건한 신앙의 계보를 이어가는 내용도 나눴습니다. 

즉, 당시에 사람들은 불경건한 가인의 후손과 경건한 셋의 후손으로 나뉩니다. 그런 관점에서 셋의 후손 중에 가인의 후손의 여인을 취하여 아내로 삼았다는 내용으로 봅니다. 

그리고 이것은 구약성경에서 유대인의 정체성을 유지하고 지켜나가는 중요한 것 이기도 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혈통과 정체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이방여인과 결혼을 금하는 것이 통상적이었습니다. 

그런 이유로 유대인들은 같은 민족이었으나 남과 북으로 나뉜 강제적으로 타민족의 땅으로 이주되거나 이방 민족과 결혼해서 혼혈민족이 되어버린 사마리아인들을 극도로 혐오했습니다. 

그런 시각에서 셋의 아들들이 가인의 딸들을 아내로 취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어느 것이 맞는지는 알 수 없습니다. 여전히 네피림은 우리의 궁금증 속에 머물러 있기도 합니다. 

그래도 이런 궁금함 속에도 생각하고 묵상할 것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여전히 그 의미를 명확하게 이해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다만 실제로 인간의 수명은 짧아지게 됩니다. 노아 이후에 아담의 자손들처럼 900살까지 살아가는 인간은 없어집니다. 

또한 그 의미를 선명하게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하나님의 영이 사람과 함께 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육신이 되어 버립니다. 이것도 이해하기 어렵지만 앞에서 하나님께서 아담을 지으실 때의 말씀과 대조를 해 보면 보이는 것이 있습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하나님이 생기를 불어넣으니 사람이 생령이 되었습니다. 생령이란 ’살아있는 숨 또는 영혼’을 의미합니다. 반면에 육신이란 [בָּשָׂר(바사르)]로 살아있는 몸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에는 사람을 살아숨 쉬는 영혼을 가진 존재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육신이 될 때에는 살아 숨쉬는 영혼은 없고 살아 있는 몸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할 때와 하나님이 함께 하지 않을 때의 사람의 영적인 상태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아이러니하게 말씀에서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지만 성경에서 발견하는 하나님은 끊임없이 사람들과 함께 하시기를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기 위해 우리를 거룩함에 거하게 하시고,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셔서 우리 대신 십자가를 지시고 의로 옷 입히시고, 하나님의 나라에 이르기까지 보혜사 성령님이 우리와 함께하신다는 것이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저는 그 마음이 충분히 공감됩니다. 자녀의 잘못된 행실을 보면 부모로서 자녀에게 엄하게 하지만 결국 마음 한 구석엔 자녀를 사랑하는 마음 때문에 아파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없으면 그저 육체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 안에 거하시길 원하십니다. 그 관계 안에 들어갈 때 우리는 육체가 아니라 살아 숨 쉬는 영적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당신이 최근에 몰두했던 육체의 일은 무엇입니까?
2. 어떻게 하면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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