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8:6-14]
6 사십 일을 지나서 노아가 그 방주에 낸 창문을 열고
7 까마귀를 내놓으매 까마귀가 물이 땅에서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하였더라
8 그가 또 비둘기를 내놓아 지면에서 물이 줄어들었는지를 알고자 하매
9 온 지면에 물이 있으므로 비둘기가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하고 방주로 돌아와 그에게로 오는지라 그가 손을 내밀어 방주 안 자기에게로 받아들이고
10 또 칠 일을 기다려 다시 비둘기를 방주에서 내놓으매
11 저녁때에 비둘기가 그에게로 돌아왔는데 그 입에 감람나무 새 잎사귀가 있는지라 이에 노아가 땅에 물이 줄어든 줄을 알았으며
12 또 칠 일을 기다려 비둘기를 내놓으매 다시는 그에게로 돌아오지 아니하였더라
13 육백일 년 첫째 달 곧 그 달 초하룻날에 땅 위에서 물이 걷힌지라 노아가 방주 뚜껑을 제치고 본즉 지면에서 물이 걷혔더니
14 둘째 달 스무이렛날에 땅이 말랐더라

시간이 지났습니다. 150일 지나고 바람이 불고 물이 밀려나기 시작했습니다. 10월 1일에 산들의 봉우리가 보였습니다.
또 40일이 지났습니다. 노아는 방주의 창문을 열었습니다. 그 이유는 물이 얼마나 빠졌는지 알기 위함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육안으로 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새를 날려 보냄으로써 간접적으로 확인하려 한 것입니다.
다시 생각하면 방주 안의 환경이 얼마나 불편하고 힘들었는지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노아는 두 종류의 새를 순차적으로 날려 보냅니다. 까마귀와 비둘기입니다.
40일이 되는 때에 노아는 까마귀를 날려 보냅니다. 그러데 까마귀는 물이 마르기까지 날아 왕래했다고 말합니다.
까마귀는 계속 날아다니며 방주로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노아의 의도는 새를 날려 보냈을 때 뭍이 없거나 먹을 것이 없으면 다시 방주로 돌아올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까마귀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노아는 이번에는 비둘기를 날려 보냅니다. 그리고 비둘기는 발 붙일 곳을 찾지 못해서 다시 방주로 돌아왔습니다.
노아의 의도대로 되었습니다. 노아는 아직도 세상이 물로 가득 차 있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7일 후에 또 비둘기를 날려 보냅니다. 이번에는 감람나무 입사귀를 물고 돌아왔습니다. 이로써 노아는 물이 줄어들고 있음을 확인했습니다.
또 7일 후에 비둘기를 날려 보냅니다. 이번에는 비둘기도 까마귀처럼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601년 1월 1일 땅 위에 물이 걷혔습니다.
그리고 다음 달 2월 27일에 땅이 말랐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까마귀와 비둘기가 대비됩니다. 둘 다 방주 밖의 물이 어떠한지를 알아보기 위해 날려 보냈는데 까마귀로는 알 수 없었습니다. 반면 비둘기로는 확인을 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것을 통해 까마귀의 이미지와 비둘기의 이미지가 대비됩니다. 까마귀는 그 색이 검어서 보통 부정적인 이미지가 강하고 황폐함과 폐허의 상징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반면 비둘기는 그 색이 흰색이어서 긍정적인 이미지, 평화를 상징하는 이미지를 가지고 있습니다. 특히 감람나무 잎사귀를 물어오는 그 장면에서 비둘기는 생명과 소망의 상징성도 품게 됩니다.
그래서 까마귀는 부정적이고 비둘기는 긍정적 이미지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까마귀가 실제로 음침하고 부정한 새는 아닙니다.
성경에는 까마귀에 대한 내용들이 있습니다. 그중에는 열왕기상 17장에 보면 가뭄이 들었을 때 하나님의 선지자 엘리야가 그릿 시냇가에 숨어 있었을 때 하나님께서 까마귀들을 통해 엘리야 선지자에게 먹을 것을 물어다 주게 했습니다.
또한 까마귀도 하나님이 창조한 생물이며 하나님의 보호하심 아래에 있습니다. 까마귀도 하나님이 기르십니다.
[눅12:24] 까마귀를 생각하라 심지도 아니하고 거두지도 아니하며 골방도 없고 창고도 없으되 하나님이 기르시나니 너희는 새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다만 까마귀는 특성상 노아가 의도했던 물의 마름을 확인하는 데에 적합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까마귀가 나쁘다거나 썩은 고기를 먹어서 돌아오지 않았다는 식의 해석은 그리 좋은 것 같지 않습니다.
까마귀나 비둘기나 모두 하나님이 창조하신 동물이며 하나님이 기르십니다. 다만 그 특성에 따라 수행할 수 있는 일이 다릅니다.
우리는 보통 까마귀가 검기 때문에 부정적인 생각을 많이 가지고 그렇게 바라봅니다. 일종의 선입견이고 편견입니다. 그것은 까마귀만을 그렇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그와 같은 방식으로 판단해 버리는 성향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까마귀나 비둘기나 모두 하나님이 기르시는 동물이며 하나님이 창조하신 생물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판단하되 까마귀나 비둘기를 선함이나 약함등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니라 그 특성에 맞게 수행할 수 있는 일을 판단해야 합니다.
좀 더 확장시키면 누구에게나 장점과 단점은 있고 우리는 단점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가지고 있는 장점을 잘 보아 그것을 더 귀하게 할 수 있는 일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까마귀나 비둘기처럼 평소에 가지고 있던 자신의 선입견은 무엇입니까?
2. 시선을 바꾸어 하나님이 귀히 여기는 존재로 다시 바라보아야 할 대상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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