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7:13-24]
13 곧 그 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다 방주로 들어갔고
14 그들과 모든 들짐승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가 그 종류대로
15 무릇 생명의 기운이 있는 육체가 둘씩 노아에게 나아와 방주로 들어갔으니
16 들어간 것들은 모든 것의 암수라 하나님이 그에게 명하신 대로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그를 들여보내고 문을 닫으시니라
17 홍수가 땅에 사십 일 동안 계속된지라 물이 많아져 방주가 땅에서 떠올랐고
18 물이 더 많아져 땅에 넘치매 방주가 물 위에 떠 다녔으며
19 물이 땅에 더욱 넘치매 천하의 높은 산이 다 잠겼더니
20 물이 불어서 십오 규빗이나 오르니 산들이 잠긴지라
21 땅 위에 움직이는 생물이 다 죽었으니 곧 새와 가축과 들짐승과 땅에 기는 모든 것과 모든 사람이라
22 육지에 있어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다 죽었더라
23 지면의 모든 생물을 쓸어버리시니 곧 사람과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라 이들은 땅에서 쓸어버림을 당하였으되 오직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던 자들만 남았더라
24 물이 백오십 일을 땅에 넘쳤더라

노아가 600세 되던 해 2월 17일,
곧 그날에 노아와 그의 아들 셈, 함, 야벳과 노아의 아내와 세 며느리가 방주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모든 들짐승들이 그 종류대로, 모든 가축들이 그 종류대로, 땅에 기는 모든 것들이 그 종류대로, 모든 새들이 그 종류대로 방주 안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방주의 문이 닫혔습니다.
그날부터 40일간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지면에 물이 많아지면서 방주가 물 위에 뜨고 산들이 잠기기 시작했습니다. 비는 40일 동안 세상의 모든 것들을 다 잠기게 했습니다.
그리고 150일간 땅에 물이 넘쳤습니다. 그로 인해 그 코에 생명이 기운의 숨이 있는 것은 죽었습니다.
오늘 본문은 여러모로 상징적인 요소들이 많습니다. 40일 동안 비가 내렸습니다. 40이라는 숫자는 성경에서 자주 사용되는 숫자입니다.
오늘 본문처럼 비가 내릴 기간이 40일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나와 하나님의 산 시내에 머물 때 모세가 산 위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던 시간이 40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지냈던 시간이 40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금식하시며 시험을 받은 기간이 40일이었습니다.
사건의 내용들을 토대로 보면 40일 혹은 40년이라는 시간은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 속에 어떤 변화를 일으키기 위한 시험과 연단의 기간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40일간의 홍수는 세상을 심판하시고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신 시간입니다.
시내산 위에서의 40일은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모세를 가르치고 변화시키는 기간이었습니다. 그와 연장선에서 광야의 40년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가나안땅에서 살아가도록 준비시키고 연단시킨 기간입니다.
예수님도 공생애에 앞서 40일간의 금식과 시험을 통해 준비한 기간입니다. 이와 같은 것을 토대로 그리스도인들은 40일 금식기도라는 힘들고 어려운 기도를 하기도 합니다.
40일이라는 숫자 안에 일어난 일들은 한 가지 특징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변화입니다. 즉, 지금까지의 존재는 소멸되고 새로운 존재로 살아가기 위해 준비되는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그 사이에 연단과 인내, 훈련이 주어지는 시간입니다.
세상은 온갖 죄로 가득했지만 이제 40일 동안 비가 내림으로 그 모든 죄로 가득한 세상은 소멸됩니다. 그리고 의인 노아와 그의 가족들, 방주 안에 들어간 모든 동물들은 죄악이 관영했던 세상이 아닌 심판 이후에 아무것도 없던 것처럼 변해버린 세상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40일은 그것을 준비하는 기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도 그랬습니다. 이집트의 노예로 살던 삶을 청산하고 40일 동안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준비를 하고, 40년 동안 훈련을 받았습니다. 놀랍게도 4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세대는 세상을 떠나고 그다음 세대가 태어났고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갑니다.
마치 오늘 본문의 죄인들은 모두 심판을 받고 의인인 노아와 그의 가족만이 세상을 살아가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 의미로 보면 40일 금식기도는 우리의 필요를 간구하기 위해 간절히 하나님께 매달리는 시간이 아니라 과거의 내가 죽고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하며 살아가는 새로운 나로 변화되는 시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언어적 유희로 동양에서는 4라는 숫자를 죽음과 연관 짓기도 합니다. 한자로 죽음을 뜻하는 死의 발음이 ‘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4자는 숫자는 이제 나는 죽고 예수님과 함께 살아나는 의미를 떠올림도 좋을 것 같습니다.
핵심은 40일이라는 숫자의 상징은 내가 죽는 시간이며 하나님의 사람으로 새롭게 준비되는 하나님의 연단과 훈련의 시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간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필요한 시간입니다. 과거의 나는 죽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영적준비의 시간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여러분에게 40일과 같은 의미로 영적 변화를 위한 것은 무엇입니까?
2. 혹은 여러분에게 필요한 40일 또는 그와 같은 의미로 시작할 수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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