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11:1-8]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내가 이제 한 가지 재앙을 바로와 애굽에 내린 후에야 그가 너희를 여기서 내보내리라 그가 너희를 내보낼 때에는 여기서 반드시 다 쫓아내리니
2 백성에게 말하여 사람들에게 각기 이웃들에게 은금 패물을 구하게 하라 하시더니
3 여호와께서 그 백성으로 애굽 사람의 은혜를 받게 하셨고 또 그 사람 모세는 애굽 땅에 있는 바로의 신하와 백성의 눈에 아주 위대하게 보였더라
4 모세가 바로에게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밤중에 내가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리니
5 애굽 땅에 있는 모든 처음 난 것은 왕위에 앉아 있는 바로의 장자로부터 맷돌 뒤에 있는 몸종의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죽으리니
6 애굽 온 땅에 전무후무한 큰 부르짖음이 있으리라
7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사람에게나 짐승에게나 개 한 마리도 그 혀를 움직이지 아니하리니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과 이스라엘 사이를 구별하는 줄을 너희가 알리라 하셨나니
8 왕의 이 모든 신하가 내게 내려와 내게 절하며 이르기를 너와 너를 따르는 온 백성은 나가라 한 후에야 내가 나가리라 하고 심히 노하여 바로에게서 나오니라

모세는 다시 한 번 파라오를 만나러 가야 했습니다. 파라오는 흑암 재앙 때에 다시는 얼굴을 보지 말자고 했습니다. 다음에 볼 때에는 모세를 죽이겠다고 했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한 번 모세에게 파라오를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에는 안 나와 있지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파라오를 만나라고 했을 때 모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요?
파라오를 만나면 죽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었을까요? 아니면 지금까지 행하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신 능력을 믿고 아무런 두려움도 없었을까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차라리 내가 모세의 자리에 있다면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지를 묵상해봐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마지막 재앙에 대한 말씀을 하십니다. 그것은 장자와 모든 가축의 처음 난 것의 죽음이었습니다.
이집트 땅의 모든 처음 난 것은 모두, 파라오의 장자로부터 다 죽게 될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재앙으로 인해 이집트에 전무후무한 부르짖음이 있을 것이며 그때에 왕의 모든 신하들이 모세에게 절하며 이스라엘 자손 온 백성을 내보낼 것이라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행하시려는 마지막 재앙은 장자의 죽음입니다. 파라오의 아들도 모든 이집트 사람들의 가정마다 첫째 아들이 그리고 모든 가축의 첫 소산이 다 죽게 될 것입니다.
이 재앙에서 이스라엘 자손은 사람도 짐승도 개 한 마리도 죽지 않을 것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은 이것은 이집트인과 이스라엘 사이의 구별이라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분은 다음에 묵상해보겠습니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마지막 재앙은 정말 무섭습니다. 지금까지의 재앙도 사실 한 나라가 멸망할 정도의 끔찍한 재앙이었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재앙은 어쩌면 하나님이 어떻게 이렇게 무서운 재앙을 내리실까 하는 의문이 듭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도 신이 저렇게 잔인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게 만듭니다.
심지어 이 심판은 성인에 대한 심판이 아닙니다. 어린이에 대한 심판, 심지어 태어난 아이에 대한 심판입니다.
이집트의 어린이들은 무슨 죄가 있을까요? 하나님은 왜 이렇게 잔인한 것일까요?
이 질문은 피할 길이 없습니다. 분명 잔인해 보이고 비인도적인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죄인인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맞이할 결론입니다.
이집트인의 장자들이 본보기로, 아무 이유 없이 억울하고 불쌍하게 죽임을 당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이 다 그렇게 하나님 앞에서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죄의 결과는 사망입니다. 물론, 죄를 인식하거나 의지적으로 선택할 수 있는 능력이 없는 어린아이의 죽음도 그러한가라는 질문이 있겠지만 성경은 이 질문에 세부적인 답을 주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죄로 인해 죽습니다.
그런데 오늘 하나님이 이집트의 장자를 치시는 과정에는 단지 죄에 대한 심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아이들은, 가축들의 첫 소생은 한 마리도 죽지 않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집트인이나 이스라엘 자손이나 사실은 똑같은 위치입니다. 그러나 구분은 있었습니다.
그 차이는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피할 길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어린양의 피였습니다. 어린양이 이스라엘 자손의 장자를 대신해 죽었습니다.
이집트의 장자의 심판은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이집트의 파라오와 이집트는 이스라엘 자손들을 노예로 삼고 학대와 폭력, 심지어 아이들을 죽이는 끔찍한 범죄를 오랜 시간 동안 자행해 왔습니다. 그러면서 이스라엘 자손의 노동력으로 자신들의 삶을 영위하며 죄책감도 갖지 않았습니다. 포악하고 악한 죄를 저질렀고 파라오는 하나님의 말씀에 마음을 완악하게 했습니다.
이집트에 대한 심판은 죄에 대한 심판입니다. 그런데 그 심판에서 이스라엘 자손도 면죄가 아니었습니다. 조건은 똑같았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는 어린양이 대신 죽음으로써 그 심판에서 피할 길이 있었을 뿐입니다. 네
이집트는 왜 그 길을 주지 않았느냐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성경 전체의 역사로 보면 그것은 모든 인류에 대해 하나님께 피할 길을 주시는 보여주시고 이루어가는 과정이었습니다. 이집트는 피할 길이 없었을까요? 지금까지 모세를 통해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과정은 무엇이었을까요? 하나님이 하나님 됨을 알게 하시는 일들 속에서 이집트인들은 무엇을 본 것일까요?
하나님은 거듭거듭 경고하시고 반복해서 경고하셨고 돌이킬 기회를 주셨지만 파라오는 계속 거부했습니다.
우리는 이집트의 장자가 죽는 것이 끔찍하다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전체에 기록된 이해할 수 없는 것 그것을 은혜라고 할 수도 있고 사랑이라고도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신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대신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는 것입니다. 장자의 죽음에서 이스라엘 자손이 어린양의 피로 인해 죽음을 피했던 것처럼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어린양이 되어 모든 인류의 피할 길이 되어 죽으셨습니다.
그때에 죽음을 맞이한 아이들과 그 아이들을 잃은 부모의 슬픔을 생각하면 마음이 무거워집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심판 앞에 있는 것은 그들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없었더라면 우리에게도 똑같이 일어날 일입니다.
그때의 이집트인들, 특히 아이들의 죽음에 대해서는 성경은 설명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하나님은 이집트에 반복해서 하나님 됨을 나타내셨고 파라오는 계속 거부했다는 사실입니다.
여전히 하나님은 잔인하다 느낄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핑계치 못합니다. 우리가 걱정할 것은 우리의 사랑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할까 함입니다.
너무나 큰 은혜의 피할 길이 있음에도 그 안으로 걸어 들어가지 못하는 완악한 마음이 우리의 근심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장자의 죽음에 대한 여러분들의 생각은 무엇입니까?
2. 장자의 죽음을 생각할 때 여러분 마음에 걱정되는 사람이 있습니까?
3. 궁극적 피할 길은 예수 그리스도지만 여러분이 주님께로 인도하는 길이 되기 위해 하셔야 할 일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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