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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출애굽기

[말씀묵상] 출애굽기 12:1~2 “새로운 시작”

by 기대어 보기를 2026. 8. 21.

[출12:1-2]
1 여호와께서 애굽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일러 말씀하시되
2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고


 



이집트 땅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을 통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첫마디가 ”이 달을 너희에게 달의 시작 곧 해의 첫 달이 되게 하라“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시의 그 달을 해의 첫 달이 되도록 정하라고 하셨습니다. 당시 그 달은 아빕월입니다.

[출13:4] 아빕월 이 날에 너희가 나왔으니

아빕월[אָבִיב(아비브)]은 부드럽다는 의미에서 유래된 말로써 곡식의 이삭, 푸른 싹을 의미합니다. 곡식이 이삭을 내고 싹을 틔울 때의 부드러움을 의미하는 것 같습니다. 대략적으로 3~4월에 해당합니다. 계절로는 봄에 해당됩니다.

그리고 유대인들에게 이 아빕월은 니산월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게 되었습니다. 니산월은 유대력의 첫째 달입니다.

그래서 실제로 니산월을 새해로 지정했고 유대인들에게는 왕의 연도와 절기의 기준이 되는 새해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에게 새해는 총 4개입니다.

첫 번째가 니산월 1일로 오늘 하나님이 정하라 하신 날입니다. 종교적인 새해입니다.

두 번째는 엘룰월 1일입니다. 이때는 8월 중순에서 9월 초순에 해당합니다. 이 새해를 ‘가축의 새해’라 부릅니다.

세 번째는 티슈리월 1일입니다. 이때는 9월 중순에서 10월 초순에 해당됩니다. 이 달은 유대인의 민간력으로 새해에 해당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때 우리가 새해에 하는 인사인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와 같은 인사를 합니다. 나팔절이라고도 부릅니다.

티슈리월이 새해가 된 과정은 티슈리월은 니산월로부터 일곱 번째 달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티슈리월을 ‘창조의 새해’로 보았습니다. 세상의 창조가 이 달에 이루어졌다고 보고, 아담과 하와가 창조된 달로 보는 전승이 있습니다.

네 번째는 쉐밧월 15일입니다. 이 날은 ‘나무의 새해’라고 부릅니다. 시기적으로 1월 중순에서 2월 중순에 해당합니다.

특이한 점은 엘룰월 1일과 쉐밧월 15일입니다. 가축의 새해와 나무의 새해로 불리는 새해입니다.

이런 새해가 어떻게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십일조 때문입니다. 가축의 십일조를 드리기 위해 가축의 소생이 시작하는 새해가 필요했습니다. 그리고 곡식과 과일 등의 식물로부터의 십일조를 계산하기 위해 식물의 십일조를 계산할 기준이 필요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가축의 십일조와 식물의 십일조를 위한 기준으로 지정되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새해는 매우 독특하고 특이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새해의 의미가 하나로 연결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입니다. 하나님이 지정하신 날이 새해가 되고, 하나님의 창조를 기념하는 날로 새해를 삼고, 하나님께 십일조를 드리기 위해 새해를 계산했습니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새해의 제정을 ‘애굽 땅에서’ 정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시는 말이겠지만 애굽 땅에서 말씀하셨습니다.

이집트는 이스라엘 백성의 나라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억압과 폭정의 땅이며 고통과 부르짖음이 있는 땅입니다.

무엇보다 파라오와 이집트인들의 강력한 힘 앞에 굴복해서 살아가는 노예 된 장소입니다.

하나님은 그곳에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새로운 해를 선포하셨습니다. 세상에 있는 새해를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그 모든 것을 초월해서 지금 그때가 새로운 해의 시작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자유롭지 못하고 통제받고 억압받으며 세상의 질서에 순응하며 살아가야 하는 현장에서 하나님의 새로운 시간으로 인생의 기준을 다시 세우고 거기에서부터 새롭게 시작하도록, 모든 시간의 기준, 인생의 기준이 거기에서 새롭게 세워지도록 하신 것입니다.

모두가 1월 1일을 새해로 정해서 지키는 세상에서 3월 1일을 새해 첫 달로 정하라 해서 그렇게 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그런데 사실은 지금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간다는 것은 그렇게 정하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3월 1일을 새해로 정하고 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기준점을 바꿔 살아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한 민족이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한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가 될 때의 모습이 이와 같은 것은 아닐까요?

하나님께서 오늘 나의 현실에서 세우기를 원하는 새로운 기준은 무엇일까요?




[묵상을 위한 질문]

1. 나는 무엇을 기준으로 내 삶의 시간을 결정하고 있습니까?
2. 하나님께서 내 상황이 바뀌기를 기다리시지 않고 지금 이 자리에서 새롭게 시작하기를 원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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