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13:1-10]
1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이르시되
2 이스라엘 자손 중에서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다 거룩히 구별하여 내게 돌리라 이는 내 것이니라 하시니라
3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애굽 곧 종 되었던 집에서 나온 그 날을 기념하여 유교병을 먹지 말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너희를 그 곳에서 인도해 내셨음이니라
4 아빕월 이 날에 너희가 나왔으니
5 여호와께서 너를 인도하여 가나안 사람과 헷 사람과 아모리 사람과 히위 사람과 여부스 사람의 땅 곧 네게 주시려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시거든 너는 이 달에 이 예식을 지켜
6 이레 동안 무교병을 먹고 일곱째 날에는 여호와께 절기를 지키라
7 이레 동안에는 무교병을 먹고 유교병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며 네 땅에서 누룩을 네게 보이지 아니하게 하라
8 너는 그 날에 네 아들에게 보여 이르기를 이 예식은 내가 애굽에서 나올 때에 여호와께서 나를 위하여 행하신 일로 말미암음이라 하고
9 이것으로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를 삼고 여호와의 율법이 네 입에 있게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강하신 손으로 너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
10 해마다 절기가 되면 이 규례를 지킬지니라
11 여호와께서 너와 네 조상에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가나안 사람의 땅에 인도하시고 그 땅을 네게 주시거든
12 너는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과 네게 있는 가축의 태에서 처음 난 것을 다 구별하여 여호와께 돌리라 수컷은 여호와의 것이니라
13 나귀의 첫 새끼는 다 어린 양으로 대속할 것이요 그렇게 하지 아니하려면 그 목을 꺾을 것이며 네 아들 중 처음 난 모든 자는 대속할지니라
14 후일에 네 아들이 네게 묻기를 이것이 어찌 됨이냐 하거든 너는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곧 종이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내실새
15 그 때에 바로가 완악하여 우리를 보내지 아니하매 여호와께서 애굽 나라 가운데 처음 난 모든 것은 사람의 장자로부터 가축의 처음 난 것까지 다 죽이셨으므로 태에서 처음 난 모든 수컷들은 내가 여호와께 제사를 드려서 내 아들 중에 모든 처음 난 자를 다 대속하리니
16 이것이 네 손의 기호와 네 미간의 표가 되리라 이는 여호와께서 그 손의 권능으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음이니라 할지니라

앞장에서 말씀하셨던 무교절에 대한 말씀이 다시 한 번 반복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이 해마다 이 무교절의 규례를 지키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이를 행함으로 다음 세대의 자녀들에게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에서 나올 때 행하신 하나님의 일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이 무교절의 규례에 대한 말씀에 하나님의 소유권을 주장하시는 말씀이 두 번 반복됩니다.
그것은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것은 모두 하나님께 돌리라고 합니다. ‘돌리라’라는 말은 다른 번역본에는 ‘바쳐라’, ‘두어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해야 하는 이유는 모든 처음 난 것은 다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원문에는 ‘돌리라’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히브리어 원문을 직역하면 이 문장은 “나를 위하여 거룩하게 하라”입니다.
‘거룩하게 하라’와 ‘바치라’는 상당히 다른 의미입니다. 왜 이렇게 번역한 것일까요? 개역개정뿐만이 아닙니다. 다른 한글 번역본이나 영어 번역본 성경도 모두 단지 ‘거룩하게 하라’라고 번역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번역본에서 ‘거룩하게 하라’라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번역한 것 같습니다.
거룩하게 하는 것은 성별하는 것이고 그것은 봉헌하는 것이므로, 번역을 할 때 그것을 ‘바치다, 돌리다, 봉헌하다’로 번역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된 이유는 ‘거룩하게 하라’는 말의 의미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쩌면 이것을 추상적으로 받아들이거나 내적이거나 도덕적인 차원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가령 아이를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라 정도로 이해할 수 있지만, 이는 일반적인 사용에서 분리하여, 즉 세속에서 분리하여 하나님께 속한 것으로 지정하는 행위를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나를 위하여 거룩히 구별하라는 말은 하나님을 위하여 세상에서 선별하는 것이고, 그렇게 선별된 것은 하나님께 속하도록 내어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니 봉헌인 것입니다.
사람이나 짐승을 막론하고 태에서 처음 난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 이유는 후반부에 다시 언급되는데, 원래는 이스라엘 자손의 장자와 가축의 초태생도 그날 밤에 모두 죽음에서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어린양이 대신 죽어 그 피가 문 좌우 설주와 인방에 발라져 있었기 때문에 죽음이 임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열어놓으신 대속의 구원의 은혜입니다. 그러므로 죽었어야 하나 살아 있는 것이고, 살아 있으나 대속의 은혜이기에 생명의 주권은 내가 아닌 하나님께 있는 것입니다. 살아 있는 것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으로 생명을 얻은 자는 자신의 생명을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로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리고 이는 사람의 장자, 가축의 첫 태생을 넘어섭니다.
궁극적으로 유월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보여줍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은 장자에게만 해당되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모든 사람에게 해당됩니다.
그렇기에 말씀에 장자는 실제 장자를 의미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살게 된 모든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것에 의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으로 구원받은 모든 사람은 거룩히 구별하여 하나님께 돌려야 합니다. 그 이유는 그 생명이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우리 자신을 거룩하게 구별해야 한다는 사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 자신을 세상에서 성별하여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사실 우리는 정반대로 살아가려는 습성이 있습니다. 세상에 묻혀서 살아가려 하고, 성별된 삶을 살아가는 것보다는 타협하고 내가 내 삶의 주인 된 삶을 살아가려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발견된 우리는 그날 밤에 죽었어야 하는 장자와 같습니다. 어린양의 피로 대속을 받아 생명을 얻은 사람이 바로 우리 자신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를 세상 속에서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끊임없이 찾고 순종해야 함을 말씀을 통해 듣습니다.
그것을 우리 손에 기호로 삼고 미간의 표로 삼듯이 삶에서 강력하게 묵상하고 우리의 행동과 생각을 하나님 앞에 가져다 놓아야 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나를 위하여 거룩하게 하라는 말씀에 내 삶의 어떤 부분을 구별하여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할까요?
- 내 손에 기호를 삼고 내 미간에 표로 삼는 것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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