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6:2-13]
2 하나님이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나는 여호와이니라
3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나의 이름을 여호와로는 그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였고
4 가나안 땅 곧 그들이 거류하는 땅을 그들에게 주기로 그들과 언약하였더니
5 이제 애굽 사람이 종으로 삼은 이스라엘 자손의 신음 소리를 내가 듣고 나의 언약을 기억하노라
6 그러므로 이스라엘 자손에게 말하기를 나는 여호와라 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내며 그들의 노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여러 큰 심판들로써 너희를 속량하여
7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리니 나는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낸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지라
8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기로 맹세한 땅으로 너희를 인도하고 그 땅을 너희에게 주어 기업을 삼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하셨다 하라
9 모세가 이와 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하나 그들이 마음의 상함과 가혹한 노역으로 말미암아 모세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더라
10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11 들어가서 애굽 왕 바로에게 말하여 이스라엘 자손을 그 땅에서 내보내게 하라
12 모세가 여호와 앞에 아뢰어 이르되 이스라엘 자손도 내 말을 듣지 아니하였거든 바로가 어찌 들으리이까 나는 입이 둔한 자니이다
13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사 그들로 이스라엘 자손과 애굽 왕 바로에게 명령을 전하고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시니라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자신의 이름을 이야기하십니다. 특이한 점은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에게는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리지 않았습니다.
먼저 ‘전능의 하나님’이라는 것은 [אֵל שַׁדַּי(엘 샤다이)]입니다. 하나님을 뜻하는 엘과 전능하신 분이라는 의미의 샤다이를 합친 말입니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에게 하나님은 자신을 ‘엘 샤다이’로 보여 주셨다는 것입니다. 반면에 그들에게 하나님은 여호와라는 이름의 의미를 알게 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우선 한 번 더 짚고 갈 부분은 오늘 본문에도 하나님이 자신을 ‘여호와’라고 말씀하고 있지만 [יְהֹוָה(YHWH)]는 앞에 전 나눈 말씀을 기억한다면 하나님의 이름을 [YHWH]로 표기할 수 있을 뿐, 모음이 없기 때문에 읽을 수는 없습니다. 지금의 ‘여호와’는 모음이 없는 [יהוה]의 YHWH에 주님을 의미하는 [אֲדֹנָי(아도나이)]의 모음을 붙였습니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여호와’입니다.
중세 유럽의 기독교 학자들은 ‘여호와’가 아니라 ‘제호바’라고 발음했으며 우리말로 표기하면서 ‘여호와’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원문의 발음은 ‘야훼’에 가까웠을 것이라 보는 견해가 가장 많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다시 본문으로 돌아가 의문이 생깁니다. 왜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에게는 여호와로 알리지 않았을까요?
여기에서 ‘알리다’라는 말은 [יָדַע(야다)]라는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알다’는 의미는 단순히 이름을 안다는 것이 아니라 여호와라는 하나님을 관계적으로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말은 이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은 알았으나 ‘여호와’라는 이름의 의미 안에서의 하나님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조금 더 정리하면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라는 것은 모르지 않았습니다. 창세기에는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이 145회나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름을 안다고 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아닙니다. 그들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경험하고 알았지만 ‘여호와 하나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몰랐다는 의미입니다.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전능하신 하나님과 여호와 하나님은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요?
창세기에는 하나님이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으로 나타내는 장면들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창17:1-2]
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2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사이에 두어 너를 크게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
[창35:11]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이런 본문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으로 소개할 때에는 주로
- 후손에 대한 약속
- 땅의 약속
- 복의 약속
- 민족의 약속
등을 주셨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창세기를 읽으면서 발견한 것은 약속은 있었으나 그 약속이 점진적으로 이루어졌기 때문에 창세기에는 이스라엘 민족조차 아직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은 ‘약속을 주시는 하나님’으로 보기도 합니다.
반면에 출애굽기에 와서 하나님은 자신을 ‘여호와’라고 소개합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은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는 여호와라.”
- 내가 너희를 빼내며
- 내가 너희를 건지며
- 너희를 속량하고
- 너희를 내 백성으로 삼고
-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 너희를 인도하고
즉, 여호와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속에 들어오셔서 언약을 이루시겠다는 이름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들이 일어날 때, 성취될 때 하나님은 “너희가 내가 여호와인 줄 알리라”는 말씀을 합니다.
생각해 보니 우리 스스로가 하나님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떤 관계 안에서 알고 있는지를 질문하게 됩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인식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언젠가는 그 약속을 성취하실 것이라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반면에 어떤 부분에서는 하나님이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알게 하시기도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약속을 성취하심으로 우리로 하여금 깨닫고 알게 하시는 것입니다.
어느 것이 더 낫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으로도 오시며 또 여호와 하나님이신 줄 알게도 하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이 귀하고 여호와 하나님을 깨닫는 것도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우리의 삶에 찾아오셔서 성취하심으로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시는 분입니다.
[말씀을 위한 질문]
1. 하나님을 믿음으로 믿고 기다리는 것은 무엇입니까?
2. 당신의 삶에 여호와 하나님 되심을 알게 하신 것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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