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3:9-13]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 이는 이제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12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13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바울은 하나님께서 지극히 작은 자 보다 더 작은 자신에게 은혜를 주신 이유에 대해서 말하고 있습니다.
영원부터[αἰών(아이온) 지나간 시간으로 태초 혹은 영원, 앞으로 다가올 시간으로써 영원 - 본문에서는 지나간 시간으로써의 태초의 의미]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οἰκονομία(오이코노미아) 하나님의 섭리, 청지기직]이 어떠한 것을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이는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심은) 이제 교회 (에베소서 2장에서 말했던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함께 연합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가 되고 모퉁이 돌이 되어 함께 세워진 믿음의 공동체) 로 말미암아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9절 말씀에서 조금 난해한 부분이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입니다. 그렇지만 에베소서 2장에서 바울이 이와 같은 표현을 사용했기에 우리는 이것이 어떤 의미인지 알 수 있습니다. 2장 2절에 ‘공중의 권세 잡은 자’라는 표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불순종의 아들들 가운데 역사하는 영’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자세한 부분은 [에베소서 2장 2절] 묵상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정리하면 하늘에 있는 통치자들과 권세들은 불순종의 영들입니다. 이것은 사탄이나 마귀와 같은 존재들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불순종의 영에 사로잡힌 세상의 주권자들, 통치자들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지금 바울의 경우는 하나님의 비밀한 경륜을 전해야 할 대상들이기도 합니다.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 (2장에서 계속해서 설명했던 헬라인과 유대인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살리시고 구원하시는 것으로써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계획하신 것) 대로 하신 것이라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바울은 지금 현 상황 즉, 매여 있는 상황에 대한 자신의 마음을 이야기하며 동시에 교회 공동체에 위로를 전하고 있습니다. 먼저 바울은 자신의 상황에 대해서 낙심하기보다는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을 살아갈 때 그 내면이 더 건강하고 희망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유는 어떤 상황에서도 절망, 불안, 두려움, 좌절과 같은 감정에 함몰되지 않을 이유가 있습니다. 이런 것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에서 기인한 내적인 힘으로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비밀한 경륜 속에 있기 때문임을 인지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만족스러운 상황과 감정적으로 참기 어려운 상황들을 만나더라도 그것을 믿음이라는 영적필터 안에서 ‘감사’로 걸러낼 수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지금 그렇게 자신의 처지와 상황을 믿음으로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 모든 매임과 묶임이 모두 하나님의 경륜 속에 있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바울은 교회들에게 말합니다.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낙심하지 말라는 말은 이해가 되고 공감이 되나 뒷부분의 표현은 조금 생각을 하게 합니다. 이것은 어떤 의미일까요? 우리는 보통 ‘영광스럽다’라는 표현을 할 때에는 어떤 일에 보기 좋게 성공하고 성취해 낸 감정을 말합니다. 종종 스포츠경기에서 승리한 사람들이나 대단한 상을 수여받은 사람들이 “이 영광을 하나님께 드립니다”와 같은 말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의 영광이라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만한 최고의 자리에 올라서는 것을 의미하는 것 같은데 오늘 바울은 정 반대입니다. ’죄수‘로 ’재판‘을 받기 위해 갇혀있는 상태입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어떻게 영광일까요? 영광이라고 번역된 헬라어를 보면 그 의미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δόξα(독사)] 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광명, 훌륭함, 영광, 광휘 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명예’와 ‘경의’와 같은 의미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단어들은 사실 최고의 정점에 올라섰을 때에만 사용하는 것이 아닙니다. 어떤 경우에는 최고의 정점에 올라선 것이 오히려 영광이 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명예롭지 못한 일일 수도 있고 훌륭하지 못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부정한 방법으로 쟁취한 성공은 불명예스러운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바울이 겪고 있는 일은 명예로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비밀한 경륜을 위해 달려오다가 세상의 권력과 불순종의 영을 따르는 사람들에 의해 매임받은 것 입니다. 옳은 일을 하다 불이익을 당하고 있는 것 입니다. 어떤 시각에서는 불행한 일이고 부끄러운 일이 될 수 도 있지만 명예로운 일을 하다 겪은 이 일은 오히려 영광스러운 일이 맞습니다. 훌륭한 일 입니다.
그런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다 겪게 된 어려움이라면 그것은 명예로운 일입니다. 세상과 자기만 사랑할 줄 밖에 몰랐던 우리 (사도 바울도 이전에 그러했었습니다) 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알고 아무리 작고 부족한 일이라도 하나님의 비밀한 경륜 안에서 작은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면 그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함께 이 영광에 참여하며 함께 교회로 세워져 가기를 축복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신앙생활을 하면서 명예로운 선택이나 경험이 있습니까? 그것은 무엇입니까?
2. 지금 믿음의 필터로 바라보아야 할 삶의 불만족스러운 일이나 어려움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그 안에서 어떤 감사를 찾을 수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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