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묵상/에베소서

에베소서 4:18~20

by 기대어 보기를 2025. 8. 19.

[엡4:18-20]
18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19 그들이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자신을 방탕에 방임하여 모든 더러운 것을 욕심으로 행하되
20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지고 그들 가운데 있는 무지함과 그들의 마음이 굳어짐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생명에서 떠나 있도다.”

말씀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또는 그리스도인 공동체, 복음의 사명을 맡은 교회로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기 위해서 또, 예수님의 몸으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허망한 이방인의 삶의 방식에서 떠나라 라는 말씀입니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삶이 허망하다는 것은 스스로도 깨달아 알 수 있는 것인데 이상하게 현실은 그런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왜 그런 걸까요? 그 이유가 오늘 본문에 나옵니다.

말씀은 그들의 총명이 어두워졌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총명은 [διάνοια(디아노이아)] 라는 단어로 ‘이해, 지식, 깨달음, 통찰력’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니, 총명이 어두워진다는 말은 무지하게 되고 또 마음이 굳어져 버린다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총명이 어두워졌다는 표현은 ‘허망’과 관련된 표현입니다. 허망이란 [ματαιότης(마타이오테스)] 라는 단어로 '빈, 공허, 목적이 없는, 텅 빈' 등의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이 허망과 같은 상태를 기록해 놓은 곳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창조하기 이전의 모습이었습니다. 그때에 세상은 텅 비어있었습니다. 세상은 아무 의미도 가치도 없었습니다. 공허만이 가득했습니다. 그 세상은 깊은 어둠뿐이었습니다. 방향도 질서도 그 어떤 것도 없었습니다. 모든 것이 뒤엉켜 엉망진창인 혼란과 무질서와 어둠뿐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세계의 모습이며 하나님이 없이 살아가는 인생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을 밝히시는 빛이십니다. 시편 기자의 고백처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발 위에 켜놓은 등불이고 우리가 걸어가는 길을 비추는 빛입니다.

천문대를 방문해 보신 적이 있습니까? 보통 천문대는 산에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별을 조금이라도 더 가까이서 보기 위해서 높은 산 꼭대기에 천문대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런데 별은 산 꼭대기에 있는 천문대보다 산 중턱에 있는 천문대에서 더 잘 보인다고 합니다. 이상하지요?

그 이유는 빛 공해 때문입니다. 도시의 불빛이 하늘의 별을 못 보게 하기 때문입니다. 낮에도 별은 그대로 떠 있지만 안 보이는 이유는 태양이 너무 밝기 때문인 것처럼 밤에도 땅 위에 밝은 빛이 많아서 별들이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에 있는 허망한 것을 바라보고 살아간다면 잠시 켜놓은 도시의 불빛 때문에 하늘에 떠있는 별을 보지 못하는 것처럼 되어 버립니다. 진짜 봐야 할 영원한 것을 볼 수 없게 됩니다.

다시 본문의 의미를 따라갈 때 우리는 허망한 것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가 점검해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눈앞에 있는 허망한 것, 그것이 빛이라고 생각하고 그것을 바라보며 살아가면 정말 바라보아야 할 중요한 것을 놓치게 됩니다.

천문대가 산에 있는 이유는 도시의 불빛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산 꼭대기보다 산 중턱이 별이 더 잘 보입니다. 그 이유는 도시의 불빛이 위에까지 닿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산 중턱은 높은 산이 도시의 불빛을 가려줘서 훨씬 어두운 환경에서 별을 볼 수 있게 합니다. 그래서 별을 더 잘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별을 관찰해 보셨습니까? 저는 어렸을 때 마당에 있는 편상에 앉거나 누워서 별들을 바라본 기억이 있습니다. 그때 가장 먼저 찾아봤던 별이 북두칠성과 북극성이었습니다.

찾기 쉽고 아는 것이 그것뿐이었기도 하지만 북극성을 찾는 것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북극성이 모든 별자리의 기준이 되기 때문입니다. 북극성은 언제나 변함없는 자리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주 오래전부터 뱃사람들이나 멀리 여행을 하는 사람들은 항상 길을 찾을 때에는 밤하늘의 북극성을 기준으로 했었습니다. 

북극성은 기준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통해서 길을 찾고, 다른 별의 위치를 찾을 수 있게 합니다. 그리고 그 북극성과 같은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인생이라는 긴 항해에서 길을 잃지 않게 하는 기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없이 살아간다면 우리의 총명은 어두워집니다. 무지하게 됩니다. 그리고 마음이 굳어지게 됩니다.

‘마음이 굳어진다.’는 말은 무서운 말입니다. ‘굳어진다’는 말은 [πώρωσις(프로시스)] 라는 단어로 ‘완고하고 굳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이 프로시스는 원래 [πωρόωG4456(프로오)] 라는 말에서 나오는 단어인데 그 단어는 굳게 하다, 돌같이 굳게 하다, 둔하게 하다, 어둡게 하다는 의미입니다. 

돌같이 굳게 된다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19절 말씀에 ’감각 없는 자가 되어‘ 즉, 감각도 상실되고 아무것도 느낄 수 없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20절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너희는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느니라”

우리는 예수님을 믿고 알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성경에서 알게 된 또 믿게 된 예수님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고 예수님처럼 살아가야 하는 우리는 다르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이 땅의 현실을 보고 결론을 찾아가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의 기준에 맞추어 삶을 변화시켜 나가는 사람입니다. 우리 교회는 현실의 문제 위에 서 있지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교회의 본질적인 모습으로 성장하기 위해 함께 해야 합니다.  
  




1. 우리가 바라보고 있는 허망한 빛은 무엇입니까?  
2. 허망한 빛을 북극성과 같은 영원한 기준으로 바꾼다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728x90
반응형

'묵상 > 에베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베소서 4:22~24 a  (3) 2025.08.21
에베소서 4:21  (1) 2025.08.20
에베소서 4:17 b  (2) 2025.08.18
에베소서 4:13~14  (10) 2025.08.15
에베소서 4:7~12 b  (3) 2025.08.14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