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4:26-27]
26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27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분을 내어도'라는 문장이 나옵니다. 이 말은 사람의 감정의 상태, 행동의 상태를 나태 나는 말입니다. [ὀργίζω(오르기조)]라는 단어인데 화가 끓어 오르는 상태, 화를 내고 있는 상태를 나타내는 말 입니다.
누가복음 15장에 보면 아버지에게 자신이 물려받을 재산을 미리 요구하고 집을 나간 둘째 아들이 그 모든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굶주리는 삶을 살다가 거지와 같은 몰골로 집으로 돌아옵니다. 그때 아버지는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왔다고 즐거워하며 옷을 갈아입히고 손에 반지를 끼워주고 잔치를 엽니다.
그런데 첫째 아들이 일을 마치고 집에 들어가다가 집에서 잔치가 벌어진 것을 보게 됩니다. 그리곤 화를 냅니다. 그렇게 가족에게 상처를 주고 집을 나간 동생이 돌아왔다고 다시 잔치를 베푸시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서 자신은 아버지의 곁에서 매일 같이 일하며 섬겼지만 자신을 위해서는 염소 새끼 한 마리도 내어주지 않았던 아버지를 생각하자 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그래서 그 첫째 아들은 집 밖에서 화를 내며 집 안으로 들어가지 않고 서 있었습니다. 그런 일을 알게 된 아버지가 집 밖으로 나와서 집안으로 들어가자고 이야기를 했지만 첫째 아들은 들어가지 않고 화를 내며 집 밖에 있었습니다.
분을 내는 것은 그와 같은 모습을 말합니다. 화를 내는 것입니다. 얼굴이 붉어지고 감정 조절이 되지 않는 것 입니다. '분노'를 쏟아내는 상태를 말합니다.
우리는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분을 내는 것'은 잘못된 것일까요?
분을 내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본노는 사람에게 있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감정입니다. 화가 나는 것은 아주 당연한 것입니다. 건강한 사람은 즐거움도 느끼고 분로라는 감정도, 슬픔이라는 감정도 느낍니다. 이것은 인간의 감정이고 누구나 다 경험하는 것이며 우리 자신이 우리에게 보내는 내면의 신호입니다.
그래서 화가 나는 것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당연한 일입니다. 그리고 어떤 경우에는 바람직한 '분노'도 있습니다.
예수님도 화를 내셨습니다. 예수님도 분노가 끓어오르셨습니다. 율법을 빙자해서 힘들고 어려운 사람을 돕지 않으며 스스로는 거룩한 척하며 살아가는 모습을 보며 분노하셨습니다. 성전에서 제사드리러 온 사람들의 신앙심을 이용해 비싼 값에 폭리를 취하며 희생 제물을 팔았던 장사꾼들과 돈을 바꿔주는 상인들을 보면서 화를 내셨습니다. 심지어 그들의 상을 뒤집어엎으시고 채찍을 만들어 휘두르시며 온통 난장판을 만드시기도 하셨습니다.
어떤 면에서 사랑의 예수님이 화를 내셨다는 것은 아주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화를 내셨습니다. 물론, 화를 내셨던 예수님의 모습에서 우리는 무엇이 예수님을 그토록 화를 내게 했는지에 대해서 볼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화를 경험합니다. 여러분은 언제 화가 나십니까?
부당하다고 생각되는 일을 마주할 때?
정서적인 스트레슬 받을 때?
누군가 나를 비방할 때?
억울한 일을 당할 때?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경제적인 스트레스를 받을 때?
우리의 감정으로 본다면 예수님은 정말 분노할 일이 많았습니다. 육체적인 스트레스, 정서적인 스트레스, 사회적인 스트레스, 경제적인 스트레스가 언제나 차고 넘쳤던 분이 예수님입니다. 사람들에게 무시를 당합니다. 오해를 받습니다. 돌에 맞을 뻔도 했습니다. 모함을 당합니다. 언제나 찾아와 말싸움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찾아와 시간을 빼앗습니다. 마음 편하게 누울 자리도 없었습니다. 제자들을 살아했지만 배신당했습니다. 아무리 가르쳐 주어도 못 알아듣습니다. 심지어 조롱을 당하고 멸시를 당합니다. 죄인으로 몰려 십자가에 억울하게 매달리십니다.
언제나 스트레스들에 둘러 쌓인 분이 예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이 분노를 표출하신 사건들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죄'를 볼 때였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스스로가 믿는 '의'에 사로잡혀 죄를 짓고 있을 때, 사람들의 신앙심을 이용해 장사를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분노를 표출하셨습니다.
저는 예수님께서 다른 경우에는 분노를 경험하지 않았다고는 보지 않습니다. 앞에서 말씀드렸던 여러 가지 스트레스 상황에서 분명 화가 치밀어 오르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화를 밖으로 표현한 화가 난 상태를 직접적으로 드러내신 때는 사람들의 '죄악'이 눈앞에서 펼쳐지고 있을 때였습니다.
예수님이 분을 내신 것은 힘 있는 사람들이 연약한 사람들을 억압하고 빼앗을 때, 거룩을 빙자해 악행을 저지를 때와 같은 하나님의 정의가 가리어지는 것들에 대해서 화를 냈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화를 표출하신 것입니다. 다른 경우에도 화를 경험했지만 표출하시지는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와 같은 모습에서 어떤 종류의 화는 표출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을 생각해 봅니다. 소위 '공분'이라고 부르는 화들이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예수님께서 화를 표출하실 만한 일들이 있습니다.
힘 있는 자들이 힘없는 자들을 괴롭힐 때, 정의와 질서가 무너질 때, 마땅히 보호받아야 할 사람들이 보호받지 못할 때, 지켜져야 할 사회적인 약속이 지켜지지 않을 때 우리는 화를 경험해야 하고 또 표출해야 합니다. 화를 표출해야 한다는 말이 조금 이상하게 들릴 수도 있지만 화를 표출해야 합니다.
표현하지 않을 때에는 그런 부당한 일들, 사회적 정의와 질서가 무너지는 일들에 대해서 침묵으로 동의해 버리는 것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화는 나지만 직접적으로 나와 관련이 없기 때문에 행동하지 않는다면 그건 무언의 동의가 되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이 새 사람을 입는다는 말속에는 '화'라고 하는 감정을 떼어 내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화를 내야 할 때에 화를 표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적으로 옳고 또 건강한 것입니다.
오늘은 여기까지만 묵상해 보겠습니다. 분을 내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입니다. 다만, 무엇 때문에 분이 나는지 스스로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여러분 자신의 내면이 말하는 이유와 감추어져 있는 욕구를 찾아보십시오.
그리고 더 나아가 예수님의 분냄과 우리의 분냄 사이에 있는 차이를 들여다보십시오.
1. 최근 여러분을 화나게 한 일은 무엇입니까?
2. 그 일이 왜 그렇게 분노의 감정을 느끼게 했습니까? 그 감정의 이유는 무엇입니까?
3. 그 일은 지금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감정을 어떻게 다루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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