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엡4:28] 도둑질하는 자는 다시 도둑질하지 말고 돌이켜 가난한 자에게 구제할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
심령이 새롭게 되어 하나님을 따라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으라는 말씀을 바탕으로 우리가 입어야 할 새 사람의 삶의 모습을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도둑질에 대해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도둑질, [κλέπτω(클렢토)] 라는 단어로 우리가 알고 있는 남의 것을 훔치는 도둑질 외에 다른 뜻은 없습니다. 명백히 타인의 소유를 훔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명백히 범죄로 규정하고 있고 이와 같은 일에는 법적인 제제를 가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남의 소유를 훔치는 일을 중단하게 하고 더 이상 하지 못하도록 사회로부터 격리를 시키기도 합니다.
도둑질이 나쁘고 좋지 않다는 것은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다 보니 그와 같은 유혹을 받을 때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이들은 실행을 합니다.
이 지점에서 조금 멈춰 보겠습니다. 조금 생각해 보겠습니다.
왜 도둑질을 하는 것일까요?
조금 다른 곳을 생각을 전환해 보겠습니다. 연말이 되면 뉴스에서 훈훈한 소식을 가끔 보도합니다. 이를테면 평생 폐지를 주워 저축한 돈을 사회에 기부하는 노인의 이야기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때로는 그 금액이 상당해서 깜짝 놀랄 정도이기까지 합니다.
다시 한 번 이 지점에서 멈춰 보겠습니다.
왜 그들은 그렇게 수고하고 노력해서 모은 것을 저렇게 간단히 사회에 기부하는 걸까요?
새 사람을 입는다는 것은 도둑질하는 사람이 기부하는 사람으로 변화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기독교가 말하는 개인의 도덕과 윤리적 수준을 알 수 있는 부분입니다.
우리는 성경에서 이런 극적인 변화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 19장에 기록된 하나의 사건 입니다.
거기에는 삭개오라는 한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직업은 세리장입니다. 그는 오늘날로 치면 세무서에서 일하는 공무원이며 꾀 고위직에 종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동시에 당시의 시대상으로 봤을때 세리라는 직업은 재산을 부정한 방법으로 축적했던 대표적인 사람들의 무리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국민들에게 세금을 징수할 때 더 많이 징수해서 국가에 상납하거나 로마에 상납할 때 이부를 자신들이 챙기며 재산을 늘려갔던 사람들입니다. 공공연한 도둑들이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세리들을 무척이나 싫어했습니다.
그 세리들의 수장이었던 이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납니다. 예수님을 초대했습니다. 그 일로 사람들은 예수님이 강도와 같은 세리들의 수장의 집에 들어갔다고 수근거렸습니다. 예수님이 그 사람의 집에 들어간 것만으로도 이야깃거리가 될 정도로 사람들에게 삭개오는 좋지 않은 평가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삭개오는 예수님을 만난 이후에 이렇게 말 합니다.
[눅19: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나이다
그는 자신의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 오늘 에베소서 말씀에 나오는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겠다고 말을 합니다. 심지어 누구의 것을 속여 빼앗은 일이 있으면 네 갑절이나 갚겠다고 말을 합니다.
두 번째 그의 대답은 조금 생각할 부분이 생기지만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의 변화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오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한 사람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것이 인격적으로 예수님을 만난 사람의 내적인 변화이며 삶의 태도와 가치관의 변화 입니다.
물론, 이 글을 읽으시는 분들중에 도둑질을 일삼는 분은 없으리라 생각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말씀은 나와 상관이 없는 말씀이라 생각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어쩌면 그 정도에서 멈춰진 삶을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나쁜 일을 하지 않는 선에서 멈추는 것으로 괜찮다고 생각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오늘 말씀은 일종의 도둑질을 했던 사람에게 지우는 채벌과 같은 것이 되어 버릴 것 입니다. 도둑질을 했으니 그에 대한 벌로써 네 손으로 수고하여 가난한 자들을 도울 수 있는 선한 일을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사회의 처벌에도 이런 것이 있습니다. 사회 봉사 활동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그런 의미가 아닙니다. 인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의 삶의 방향성을 이야기 합니다. 극단적으로 도둑질을 했던 사람이 구제를 하는 모습으로 변화될 정도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는 것은 도둑질하지 않고 평범하게 살아온 우리들 역시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난 이후에는 그저 남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고 살아가는 수준의 삶에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는 삶으로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그같이 배우지 아니하였기 때문입니다.
1. 혹시 도둑질을 해 보신적이 있습니까? 무엇 때문이고 그 일의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2. 누군가를 돕고 구제하고 있습니까? 어떻게 구제하고 돕고 있습니까?
'묵상 > 에베소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에베소서 4:30~32 a (8) | 2025.08.28 |
---|---|
에베소서 4:29 (5) | 2025.08.27 |
에베소서 4:26~27 b (5) | 2025.08.25 |
에베소서 4:26~27 a (6) | 2025.08.23 |
에베소서 4:25 (5) | 2025.08.22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