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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에베소서

에베소서 5:6~8 b

by 기대어 보기를 2025. 9. 8.

[엡5:6-8]  
6 누구든지 헛된 말로 너희를 속이지 못하게 하라 이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불순종의 아들들에게 임하나니  
7 그러므로 그들과 함께 하는 자가 되지 말라  
8 너희가 전에는 어둠이더니 이제는 주 안에서 빛이라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    




빛의 자녀가 되고 빛의 자녀들처럼 행하라는 말씀에서 우리는 어떻게 하면 다시 주 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이 질문에서 ‘예수님에 대한 믿음의 회복’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처음 인격적인 하나님을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혜를 깨달아 알았던 순간들, 종교적 회심과 회개가 일어났던 순간들, 성령님이 우리의 마음을 만지시고 깨달아 알게 하시는 경험을 했던 그 순간들을 기억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다시 그 기억을 붙잡고 돌아가야겠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신앙생활의 초기에 있었던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열정, 교회에서 봉사하고 섬기는 즐거움을 느끼던 그 때의 경험, 여러분들도 분명히 경험해 보셨을 눈을 떴을 때 분명 세상은 그대로지만 풀잎하나 햇살 하나하나 모든 것이 다 달라진 것 같은 성령님이 주셨던 감동의 경험, 작은 것이 기뻐하고 감사할 줄 알았던 그 순간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그때의 그 순수한 신앙과 섬세한 믿음의 순간으로 돌아가는 것은 좋습니다. 그때의 감동을 다시 지금 우리의 삶에 가져오는 것 좋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마치 우리가 어린 시절에 기억하던 모든 첫 번째 경험에 대한 향수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가 어린아이였을 때 부모님에게 받았던 사랑에 감동받았던 그 순간의 기억을 다시 경험하고 싶어 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죄송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그런 경험을 다시 누리기 위해 어린아이 때로 돌아가겠다는 생각과 다르지 않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첫 사랑을 회복하자'라는 의미는 그리 좋은 신앙의 표현이 아니라는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첫사랑, 첫 믿음의 경험은 어린아이 때의 신앙경험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의 목적은 그 어린아이 때의 순수한 경험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자리로 걸어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것은 조금 다른 것입니다.

그렇다면 주 안에서 사는 것은 어떤 것일까요?

어쩌면 우리는 이것을 아주 종교적인 삶에서 찾으려고 시도할 수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주 안에서 사는 삶은 말씀을 더 가까이하고, 예배를 더 사모하고 교회에서 직분을 맡고 여러 봉사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때로는 성령님의 충만함으로 살아가는 것, 성령의 은사를 경험하고 그것을 통해 사역하는 것으로 생각하실 것입니다.

이것도 좋습니다. 분명 말씀을 사모하고, 예배를 사모하는 것은 100% 유익합니다. 교회에서 잘 섬기고, 여러 사역에 참여하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입니다. 또 성령님의 은사를 경험하고 우리의 삶에 기적이 일어나는 것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맞고 분명 환영합니다. 무엇보다 말씀을 사모하고 예배를 사모하고 기도하는 생활은 1000% 환영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주 안에서 사는 삶이냐?라고 묻는다면 저는 한 번 더 생각해 보라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주 안에서 사는 삶은 첫사랑을 회복하는 것도 맞지만 아니고, 주 안에서 사는 것은 신앙의 열심과 사명을 가지고 사는 것도 맞지만 아닙니다. 

주 안에서 사는 것은 조금 다른 곳에서 찾아야 합니다.

우린 그 누구보다 주 안에서 살았던 믿음의 사람들을 성경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그 대표적인 사람들을 이야기해 본다면 그들은 예수님의 제자 들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말 그대로 주 안에서 살았습니다. 주님과 함께 동행했고, 주님의 말씀을 듣고 배웠고, 주님의 말씀의 감동을 받기도 했고, 주님께 책망을 받기도 했고, 주님의 말씀에 순종했던 삶을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그들이 어느 순간부터 진짜 주님 안에서 살았는가?라고 질문을 한다면 여러분은 어느 때라고 생각하십니까? 그 순간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오순절 성령강림 이후일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죽음을 목격하고 또한 주님의 부활의 증인이 되고 주님께서 보내주시겠다는 또 다른 보혜사인 성령님이 그들 안에 임재한 이후입니다. 그때에 그들은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그 제자들의 모습을 돌아보십시오. 뭐가 달라졌습니까? 예수님의 십자와 부활,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기 이전의 모습과 그 이후의 모습에는 어떤 차이가 있습니까?

앞에서 나눴던 첫사랑으로 답을 찾아볼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가진 첫사랑은 어떻습니까? 저는 말씀을 보면서 오히려 그 제자들이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가 그들에게 첫사랑의 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가 자신이 늘 고기를 잡던 그 갈릴리 호수에서 고기잡이를 실패하고 낙심하고 있을 때 주님을 만나 깊은 곳에 그물을 다시 한번 더 내렸습니다. 그때 그 경험은 베드로에게 평생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때 그 주님을 만나고 경험한 감동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리곤 오히려 주님 앞에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워 주 발 앞에 엎드려 주님더러 자신을 떠나라고 간청했었습니다. 그 순간이 순수하고 아름다웠던 믿음의 첫 순간이었습니다.

다른 제자들은 어떻습니까? 모두 다 하나같이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알 수 없는 이끌림과 감동에 따라갔습니다. 자신의 생업을 손에서 놓아 버렸습니다. 고기를 내버려 두고, 배도 내 버려두고, 심지어 부모님까지 버려두고 주님을 따라갔습니다. 자신의 인생에 날아들어온 주님의 초대에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쫓아갔습니다.

그때가 아름답고 순수한 신앙의 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 이후, 성령의 임재 이후 그 제자들이 추구한 신앙이 그 첫사랑의 회복이었습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종교적인 열심과 성령의 은사와 사역적인 차이로 볼까요? 우리가 복음서를 펴서 그러한 차이를 찾기 위해 성경을 읽기 시작한다면 아마 깜짝 놀랄 만한 말씀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사도행전을 읽으면서 제자들의 놀라운 사역에 대한 기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의 설교와 사역, 성령의 은사를 통한 기적과 치유의 기사들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예수님이 행하셨던 능력이 제자들을 통해서 계속 이어진 것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복음서를 보면 그와 같은 이적과 기사는 이미 제자들이 주님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그리고 성령강림 이전에도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안에 있는 권능을 주어 파송했습니다. 그때에도 그 제자들을 통해 수많은 치유와 능력들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때 제자들이 그런 능력을 행했다 할지라도 그 제자들은 주님도 제대로 알지 못했고 성령님도 알지 못했었습니다.  이것을 볼 때 주 안에 있는 것은 종교적인 삶이나 능력에 있다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주 안에서 사는 것은 첫사랑을 회복하는 것도 아니고 능력 있는 종교적 삶이 드러나는 것도 아닙니다. 그렇다면 무엇일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 이후와 이전의 삶에 차이는 무엇일까요? 무엇이 달라진 것일까요?

저는 그것은 '삶의 변화'라고 봅니다. 살아가는 모양이 달라졌습니다. 무엇인가가 그들의 삶에 깊이 박혀 절대 변하지 않는 가치관이 그들의 삶에 새겨졌습니다.

주님의 십자가 이전의 제자들은 주님과 함께 동행하면서도 딴생각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주님을 통해 한 자리를 얻어 볼까? 출세를 해 볼까? 그래서 서로 주님께 인정받기 위해 경쟁도 하고 다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이 잡혀가고 죽음의 위기 앞에서는 도망치기도 하고 깨어진 꿈 때문에 근심하며 이제 앞으로 어떻게 살까 고민하며 고향으로 돌아가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부활의 주님을 만난 이후에는 삶의 방향이 완전하게 달라져 버렸습니다. 성령님의 임재를 경험한 이후에는 순교를 각오하는 삶으로 바뀌어 버렸습니다. 그들의 삶이 완전히 변했습니다. 죽음의 문제뿐만이 아닙니다. 다시는 주님의 십자가를 만나기 이전의 삶으로 돌아가지 않았습니다.

그 이전에는 문제를 일으키고 다툼을 일으키고 사고도 치며 자신의 욕심을 가지고 감추며 살았지만 십자가사건 이후에 그들은 열매를 남기는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주님의 복음을 전하며 사람들을 살리는 일을 했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며 섬기는 삶을 살았습니다. 가난한 자를 구제하고 교회를 세워 공동체적으로 그런 일들을 감당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로부터 주님을 믿게 된 사람들에게도 그와 같은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교회는 깨끗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공동체가 되었고, 교회 안에서는 사랑의 나눔이 있었고, 교회는 이웃의 아픔과 어려움에 귀를 기울였습니다. 교회는 시대적인 아픔에 동참하고 언제나 주님의 사랑을 세상에 드러냈습니다.

제자들은 십자가 사건 이후 몸으로는 주님과 멀어졌지만 삶으로는 주님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되었습니다.

무엇이 주 안에 있는 것일까요? 주 안에 있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기독교 신앙의 교리를 믿는 것 이상입니다.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났을 때의 감동을  간직하는 것 이상입니다. 주 안에 있는 삶은 주님의 말씀이, 주님의 가르침이 우리의 가슴에  박혀 있는 삶입니다.

주님의 삶의 모양이 우리 안에 가장 깊은 곳에 들어와 인생의 키가 되어 버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주 안에서 사는 것 아닐까요?




묵상을 위한 질문
1. 여러분은 지금 주님과의 거리에서 어디쯤 살고 계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렇게 느끼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2. 주님 안으로 들어가기 위해 여러분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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