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9:1-3]
1 저녁 때에 그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니 마침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다가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하고 땅에 엎드려 절하며
2 이르되 내 주여 돌이켜 종의 집으로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소서 그들이 이르되 아니라 우리가 거리에서 밤을 새우리라
3 롯이 간청하매 그제서야 돌이켜 그 집으로 들어오는지라 롯이 그들을 위하여 식탁을 베풀고 무교병을 구우니 그들이 먹으니라하노라

두 천사가 소돔에 이르렀습니다. 그때에 롯이 소돔 성문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리곤 그들을 보고 일어나 영접했습니다.
롯은 땅에 엎드려 그 두 사람에게 간청합니다. 종의 집에 들어와 발을 씻고 주무시고 일찍이 일어나 갈 길을 가도록 간청했습니다.
롯의 간청에 두 사람은 롯의 집으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롯은 그들을 위해 누룩이 들어가지 않은 무교병을 굽습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무교병은 어느 정도 익숙합니다. 그런데 조금 오해하는 부분도 있습니다. 무교병은 누룩을 넣지 않은 빵으로 발효시키지 않은 빵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보통은 거칠고 맛이 없는 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원어의 의미를 보면 무교병은 [מַצָּה(맛차)]라는 것은 누룩을 넣어서 시큼하거나 쓰게 하지 않은 빵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מָצַץ(마차츠)] 라는 단어에서 유래되었는데 이 단어는 빨아먹다, 핥아먹다, 향긋하다, 감미롭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즉, 무교병은 탐욕스럽게 삼킬 정도로 달콤한 그리고 맛있는 빵을 의미합니다.
그러니 롯이 이 두 천사에게 멋이 없는 빵으로 대접을 소홀히 했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는 이 모습에서 아브라함의 모습을 다시 만납니다. 이 두 천사는 오늘 본문에는 천사라고 기록되어 있지만 앞에서는 아브라함을 만났던 세 사람입니다.
그때에도 아브라함은 이 세 사람을 영접하고 극진히 대접했습니다. 롯도 그와 같이 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롯의 가족이 소돔의 심판 중에도 구원의 은혜를 입는 계기가 됩니다. 이 장면을 읽으면서 구원에 대해 묵상해 봅니다.
소돔과 고모라는 죄악의 도시입니다. 그것은 그곳의 사람들이 하나님 앞에 의롭지 않다는 것입니다. 이 모습은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을 보여주는 듯 합니다. 그리고 그 세상에서 살아가고 있는 나 자신을 봅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관심도 없고 경외하지도 않는 사람들이 그곳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사이에 살았던 한 사람 롯은 나그네 두 사람을 자신의 집에 초대하고 음식을 대접합니다. 그들을 영접한 것 입니다.
영접[קָרָא(카라)] 즉, 만나다는 이 말은 롯이 하나님의 천사를 만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됨에 있어서도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의 어떤 지점에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습니다. 그것은 내 인생의 진짜 주인으로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 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합니다.
그런데 이 ‘카라’라는 단어에는 이런 의미도 있습니다. 우연히 일이 발생했다는 의미입니다. 즉, 롯은 앉아 있다가 우연히 두 천사를 만났던 것입니다. 우리도 우연히 예수님을 만난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예수님을 만나려는 계획을 하거나 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우연 즉, 무작위의 결과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예수님을 만날 수도 만나지 못할 수도 있었다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만났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것은 우리의 노력이나 계획이 아닌 전적으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롯이 두 천사를 영접했습니다. 그런데 두 천사를 본 건 롯만이 아닙니다. 소돔사람들도 봤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두 천사에 대해서 전혀 다른 마음을 가졌습니다. 롯에게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그러니 오늘 말씀에서 저는 감사를 발견합니다. 하나님을 믿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이며,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고 살아가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더 나아가 오늘 우리의 삶에 누군가를 영접하고 섬기며 살아갈 수 있는 것도 다 은혜이며 감사할 일인 것 같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최근 여러분을 환대해 주었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2. 여러분이 환대해 주었던 사람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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