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19:4-11]
4 그들이 눕기 전에 그 성 사람 곧 소돔 백성들이 노소를 막론하고 원근에서 다 모여 그 집을 에워싸고
5 롯을 부르고 그에게 이르되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6 롯이 문 밖의 무리에게로 나가서 뒤로 문을 닫고
7 이르되 청하노니 내 형제들아 이런 악을 행하지 말라
8 내게 남자를 가까이 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을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9 그들이 이르되 너는 물러나라 또 이르되 이 자가 들어와서 거류하면서 우리의 법관이 되려 하는도다 이제 우리가 그들보다 너를 더 해하리라 하고 롯을 밀치며 가까이 가서 그 문을 부수려고 하는지라
10 그 사람들이 손을 내밀어 롯을 집으로 끌어들이고 문을 닫고
11 문 밖의 무리를 대소를 막론하고 그 눈을 어둡게 하니 그들이 문을 찾느라고 헤매었더라

오늘 본문은 참 불편합니다. 어떤 면에서는 화가 납니다.
말씀을 보겠습니다. 두 천사들, 겉모습은 평범한 사람입니다. 그 두 사람을 롯은 초대했고 함께 식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롯의 집 밖에는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소돔에 사는 사람들이 노인부터 젊은이까지 가까운 곳에서부터 먼 곳에 있는 사람들까지 다 롯의 집 앞으로 모여들었습니다. 그리고 롯의 집을 애웠샀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성경을 읽어보면 그 무리들이 롯에게 이런 말을 합니다.
“오늘 밤에 네게 온 사람들이 어디 있느냐 이끌어 내라 우리가 그들을 상관하리라”
여기에서 ‘상관하리라’고 번역된 히브리어는 [יָדַע(야다)] 입니다. 이 단어는 기본적으로 보다, 알다, 이해하다는 의미지만 이 단어는 이런 의미도 있습니다. 그것은 성관계를 갖는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것이 이해할 수 없는 수준입니다. 그곳에 모여든 사람들은 문맥상 남성들입니다. 그리고 롯이 초대한 사람들도 남성이기 때문에 동성에 대한 성적관계를 원해서 소돔성에 있는 사람들이 모여든 것입니다.
얼마나 문화가 타락하면 이렇게 될까요? 얼마나 도덕과 윤리가 무너지면 이 정도가 될까요? 도무지 상상할 수 없습니다.
앞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소돔의 죄악을 확인해 보기 위해 직접 가시겠다고 하셨던 부분이 이해가 됩니다. 정말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어떻게 한 도시가 나이가 든 사람부터 어린 사람까지 이런 일에 집단으로 행동할 수 있을까요? 그들에게는 그것이 어떤 의미였을까요?
이것도 이해가 되지 않지만 저는 롯의 그다음 모습에서 경악합니다.
사람들이 롯의 집을 에워싸고 두 사람을 내보내라고 요구합니다. 그러자 롯은 자신의 두 딸을 데리고 옵니다. 그리고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내게 남자를 가까이하지 아니한 두 딸이 있노라 청하건대 내가 그들을 너희에게로 이끌어 내리니 너희 눈에 좋은 대로 그들에게 행하고 이 사람들은 내 집에 들어왔은즉 이 사람들에게는 아무 일도 저지르지 말라”
롯이 영접한 손님을 보호하려는 것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두 딸을 그 성난 군중에게 내어준다는 것도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이해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화가 날 정도입니다.
언제나 폭력은 가장 나약한 사람들에게로 흘러 내려간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여성의 인권이 없었던 시대라고 하지만 어떻게 부모로서 저런 일을 행하려 했을까요?
모든 것이 이해할 수도 없고 이해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한 가지 깨닫는 것이라면 죄악 된 환경과 문화 속에 살다 보니 그래도 소돔의 심판 때 목숨을 구원받은 롯도 저 정도로 도덕적인 분별력이 없게 되어 버렸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경계선을 넘어가면 그다음 경계선을 넘기가 더 쉬워지고 그런 경험과 문화가 주변에 가득하면 경계조차 희미해져 버리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어디에 있으며 어떤 기준, 어떤 경계선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지를 분별하며 그것을 지켜내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 머물 수 있기를, 하나님의 뜻을 늘 생각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여러분은 허용적인 편입니까? 아니면 제한적인 편입니까?
2. 허용과 제한의 경계, 그 분별을 무엇을 통해 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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