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29:21-30]
21 야곱이 라반에게 이르되 내 기한이 찼으니 내 아내를 내게 주소서 내가 그에게 들어가겠나이다
22 라반이 그 곳 사람을 다 모아 잔치하고
23 저녁에 그의 딸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가매 야곱이 그에게로 들어가니라
24 라반이 또 그의 여종 실바를 그의 딸 레아에게 시녀로 주었더라
25 야곱이 아침에 보니 레아라 라반에게 이르되 외삼촌이 어찌하여 내게 이같이 행하셨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 됨이니이까
26 라반이 이르되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주는 것은 우리 지방에서 하지 아니하는 바이라
27 이를 위하여 칠 일을 채우라 우리가 그도 네게 주리니 네가 또 나를 칠 년 동안 섬길지니라
28 야곱이 그대로 하여 그 칠 일을 채우매 라반이 딸 라헬도 그에게 아내로 주고
29 라반이 또 그의 여종 빌하를 그의 딸 라헬에게 주어 시녀가 되게 하매
30 야곱이 또한 라헬에게로 들어갔고 그가 레아보다 라헬을 더 사랑하여 다시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겼더라

7년이 지났습니다. 드디어 야곱은 라헬을 아내로 맞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결혼식이 진행됩니다. 큰 잔치가 열렸습니다. 그런데 라반은 라헬이 아닌 레아를 야곱에게로 데려갔습니다. 물론, 야곱은 그녀가 레아인 줄 알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에 눈을 떠 보니, 라헬이 아닌 레아였음을 알아차립니다. 야곱은 화가 나서 외삼촌 라반에게 원망 섞인 말을 합니다.
“어찌하여 나에게 이같이 행하였나이까? 내가 라헬을 위하여 외삼촌을 섬기지 아니하였나이까? 외삼촌이 나를 속이심은 어찌 됨이니이까?”
라반은 그런 야곱에게 사정을 이야기합니다. 그 지역의 관습은 언니보다 아우를 먼저 시집보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거짓말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라반이 야곱을 속인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라반은 한 가지 제안을 합니다. 레아와 7일 동안 신혼 기간을 채우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라헬도 아내로 주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조건으로 다시 7년 동안 자신을 위해 일하라고 말합니다. 야곱은 라반의 그 제안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리고 7일 후에 라헬을 또 아내로 맞이하고, 다시 7년 동안 라반을 위해 일했습니다.
오늘 이야기에는 등장하는 인물들의 여러 관점이 보입니다.
먼저 야곱의 관점에서 생각해 보겠습니다. 정말 분개할 일이었을 것입니다. 라헬을 위해 7년을 종처럼 일했는데, 라헬이 아닌 레아를 신부로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완벽히 속은 것입니다. 얼마나 분하고 화가 났을까요?
그런데 지금 야곱이 느끼는 이 감정을 비슷하게 느꼈을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야곱의 아버지 이삭과 형 에서입니다. 7년 전, 야곱은 에서가 받아야 할 축복을 자신이 에서인 척하며 아버지 이삭을 속여 가로챘습니다. 어머니 리브가와 짜고 철저히 속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외삼촌 라반에게 똑같이 되갚음을 당하고 있습니다. 야곱은 라반에게 철저히 속아서 라헬이 아닌 레아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이 속았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어떠했을까요? 무언가 깨달은 것이 있었을까요?
또 한 가지 놀라운 문학적 장치에 주목해 봅니다. 바로 레아입니다. 성경은 레아의 시력이 약하다고 기록합니다. 그것이 실제 시력인지, 아니면 미드라시 라바에서 말하는 것처럼 너무 울어서 눈매가 흐려진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어쨌든 '약했습니다'. 이삭이 야곱에게 축복했을 때도 그랬습니다. 앞이 보이지 않아 에서와 야곱을 구분하지 못했습니다. 이번에는 레아가 눈이 좋지 않았습니다. 야곱은 눈이 약한 레아를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마치 앞을 보지 못하는 이삭에게 자신이 에서라고 속이며 다가갔던 과거의 자신을 마주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아침에서야 그녀가 레아였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이쯤에서 한 가지 궁금한 지점이 있습니다. 바로 라헬입니다. 라헬이 야곱을 사랑했는지는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과 결혼할 사람이 자신이라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결혼식에 아버지 라반이 자기 대신 레아를 야곱의 신부로 보내려 했습니다. 라헬은 어떠했을까요? 그녀에게는 여러 선택지가 있었고, 마음만 먹으면 야곱에게 이 사실을 알릴 수도 있었습니다.
유대인들의 주석인 미드라시 라바와 탈무드를 보면 이에 대한 기록이 있습니다. 결혼식 전야였습니다. 야곱은 7년 동안 라반과 함께 일하며 그의 성격을 파악했습니다. 그리고 라반이 라헬을 순순히 아내로 주지 않을 것이라 예상했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라헬과 둘만 알 수 있는 세 가지 비밀 신호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라헬이 고뇌에 빠집니다. 결혼식 당일에 언니 레아가 야곱에게 갔다가 신호에 답하지 못하면, 레아는 ‘간음한 여인’으로 몰려 수치를 당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라헬은 언니를 위해 자신이 알고 있는 모든 신호를 전수합니다. 심지어 미드라시에는 라헬이 침대 밑에 숨어 있다가 레아 대신 대답하기도 하고, 레아가 정확하게 신호를 보낼 수 있도록 도왔다고 전합니다. 유대인들은 이런 라헬의 행동을 ‘자애(Chesed)’로 이해합니다.
또 재미있는 부분은, 아침에 레아임을 알아차린 야곱이 레아에게 “당신은 속이는 자의 딸인가?”라고 물었을 때입니다. 그러자 레아는 “당신도 당신 아버지가 에서를 부를 때 야곱이면서 대답하지 않았느냐”라고 응수했다고 합니다.
라반은 어떤 사람일까요? 그는 야곱과 닮은 사람입니다. 라반은 처음부터 야곱의 노동력을 착취할 요량으로 그를 맞이했습니다. 그리고 7년의 세월 동안 라헬을 구실 삼아 야곱을 종처럼 부렸습니다. 또한 야곱을 7년 더 부려 먹기 위해 레아를 먼저 주고 다시 라헬을 주었습니다. 라반은 야곱을 속이고 이용할 방법이 있다면 교묘하게 다 동원하는 사람입니다. 사실 어른으로서 참 부끄러운 모습입니다.
생각할 지점이 많습니다.
- 가족을 속였던 야곱은 그대로 가족에게 속임을 당합니다.
- 레아는 아버지 때문에 야곱을 속이는 일에 동참하고,
- 라헬은 레아를 위해 야곱을 함께 속이거나 돕습니다.
- 라반은 이 모든 일을 설계해 두 딸을 이용하고 야곱의 7년을 더 확보합니다.
너무나 현실적인 우리 인생의 민낯을 봅니다. 그리고 이런 부끄러운 일들이 일어난, 못난 사람들을 통해 하나님의 복음과 은혜가 이어집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형편없는 삶을 계속 살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만큼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의 허물보다 크고 은혜가 풍성하다는 의미입니다.
여전히 부끄러운 얼굴을 들고 살아가는 우리지만, 그럼에도 우리를 사랑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1. 여러분을 속였던 사람이 있습니까?
2. 여러분이 속였던 일은 무엇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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