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34:1-12]
1 레아가 야곱에게 낳은 딸 디나가 그 땅의 딸들을 보러 나갔더니
2 히위 족속 중 하몰의 아들 그 땅의 추장 세겜이 그를 보고 끌어들여 강간하여 욕되게 하고
3 그 마음이 깊이 야곱의 딸 디나에게 연연하며 그 소녀를 사랑하여 그의 마음을 말로 위로하고
4 그의 아버지 하몰에게 청하여 이르되 이 소녀를 내 아내로 얻게 하여 주소서 하였더라
5 야곱이 그 딸 디나를 그가 더럽혔다 함을 들었으나 자기의 아들들이 들에서 목축하므로 그들이 돌아오기까지 잠잠하였고
6 세겜의 아버지 하몰은 야곱에게 말하러 왔으며
7 야곱의 아들들은 들에서 이를 듣고 돌아와서 그들 모두가 근심하고 심히 노하였으니 이는 세겜이 야곱의 딸을 강간하여 이스라엘에게 부끄러운 일 곧 행하지 못할 일을 행하였음이더라
8 하몰이 그들에게 이르되 내 아들 세겜이 마음으로 너희 딸을 연연하여 하니 원하건대 그를 세겜에게 주어 아내로 삼게 하라
9 너희가 우리와 통혼하여 너희 딸을 우리에게 주며 우리 딸을 너희가 데려가고
10 너희가 우리와 함께 거주하되 땅이 너희 앞에 있으니 여기 머물러 매매하며 여기서 기업을 얻으라 하고
11 세겜도 디나의 아버지와 그의 남자 형제들에게 이르되 나로 너희에게 은혜를 입게 하라 너희가 내게 말하는 것은 내가 다 주리니
12 이 소녀만 내게 주어 아내가 되게 하라 아무리 큰 혼수와 예물을 청할지라도 너희가 내게 말한 대로 주리라

계속해서 본문 안에 흐르는 폭력에 대해서 묵상해 보겠습니다.
성경은 야곱이 자신의 딸 디나가 더럽혀지는 일이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잠잠하였습니다.
디나에게 일어난 일을 안 순간 아버지로서 엄청난 충격과 분노를 경험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잠잠히 있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이유는 ‘힘’ 때문입니다. 야곱은 그 땅에서 거류민이었습니다. 외국인입니다. 힘이 없습니다. 반면에 상대는 그곳의 족장이고 대단한 가문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야곱은 그 힘의 차이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아들들까지 들에 있는 상황이라서 기댈 수 있는 힘도 없었습니다. 그러니 아무것도 할 수 없었습니다.
폭력이 가진 하나의 특징은 힘의 차이입니다. 폭력은 언제나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그것이 의도했든지 의도하지 않았든지 힘의 차이에 의해 폭력은 아래로 내려가게 됩니다.
세겜과 하몰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어도 약자인 야곱에게 폭력적인 힘이 작용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힘이 있는 사람은 자신이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힘이 없는 사람에게 폭력이 흘러가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지 못합니다.
야곱 같은 경우도 그렇습니다. 세겜이나 하몰은 이 일로 인해 야곱이 얼마나 큰 충격을 받고 분노에 휩싸여 있는지, 또 얼마나 억울하고 고통스러운지 알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야곱이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잠잠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힘이 있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를 강압하고 폭력을 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내 말 한마디, 내 태도 하나가 누군가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생각해야 합니다. 상대방이 말을 하지 못하는 것이지 괜찮은 것이 아닌 일들이 언제나 있습니다.
그래서 힘과 권력의 구조 위에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은 언제나 ‘겸손’의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도 모르게 무례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돌아옵니다. 디나의 소식을 들었습니다. 그들도 깜짝 놀라고 분노하는 마음으로 급히 돌아왔습니다. 그들은 고통스러워하고 슬퍼하며 분노했습니다.
그리고 하몰과 세겜도 야곱을 찾아옵니다. 하몰은 자신의 아들 세겜이 디나를 사랑하니 아내로 달라고 말합니다. 사과는 없습니다. 오히려 야곱에게 득이 될 만한 조건들을 이야기합니다.
가문의 결합으로 얻게 될 이익을 이야기합니다. 그것들은 야곱에게 확실히 매력적일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것 역시 폭력입니다. 야곱에게 득이 되는 제안을 합니다. 그럴 수 있는 힘과 권한이 있어서 그런 제안을 합니다.
그것은 야곱에게는 어쩌면 필요한 것이었고 야곱에게 없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보이십니까? 힘 있는 사람이 취하는 태도들입니다. 그 제안은 야곱과 같은 힘이 없는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버릴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일어나는 일 중에 하나는 세겜이 저지른 악을 덮어 버리는 것입니다. 묵인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 악한 일에 모두를 침묵으로 동조하는 사람으로 만들어 버립니다.
이런 과정이 폭력적이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반드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진실한 사과입니다. 야곱에게 사과해야 하겠지만 디나에게 사과해야 합니다.
폭력은 위에서 아래로 흐릅니다. 그렇다면 지금 이 사건에 등장하는 사람들 중 가장 아래에 있는 사람은 누구일까요?
피해 당사자인 디나입니다. 누구보다 가장 끔찍한 마음과 몸의 상처를 입은 사람이 디나입니다. 이 일에 대해서 가장 아프고 억울하고 회복해야 할 상황에 놓인 사람이 디나입니다.
그런데 디나는 단 한 마디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의사 표현을 하나도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세겜에게는 사랑해서 그랬다는 말을 듣고, 하몰도 세겜이 사랑하니 며느리로 들어오라는 말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혼사를 진행시키기 위해 야곱과 하몰, 야곱의 아들들과 세겜 사이에 대화가 오고 가고 있습니다.
아무도 디나의 의견을 물어보지도 않습니다. 이 자리에 디나가 있었는지도 알 수 없습니다.
참 이상하지요? 가장 상처 입은 사람이 디나인데 디나는 이제 모든 사건에서 주도권을 잃어버리고 더 힘이 있는 사람들끼리의 합의의 결과에 따라 운명이 결정되어집니다.
이런 구도는 오늘날에도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가 뉴스나 미디어를 통해서 만나는 어떤 폭력의 희생자들은 모든 사건에서 주체적으로 보상받고 해결받는 구조 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배제되어 버리고 보통은 가해자와 법의 싸움이 되어 버립니다. 그 사이에 피해자는 더 숨어버리게 되고 고통받게 됩니다. 아무도 피해자의 아픔이나 상처에 대해서 관심을 가져주지 않습니다.
이것이 폭력이 보여주는 모습입니다. 우리는 이런 폭력적인 사건 앞에서 폭력에 대해서 생각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가정 안에서도 힘의 흐름에 따라 언제나 약자에게 폭력적인 상황들이 흘러내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항상 내 주변의 나의 친밀한 사람들을 살피는 세심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결국 ‘존중’의 태도입니다. 오늘 나의 소중한 사람들이 나의 말 한마디나 얼굴 표정 하나에 영향을 받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하겠습니다.
[묵상을 위한 질문]
- 여러분의 가족 공동체 안에 힘은 어떻게 흘러 내려가는 것 같습니까?
- 누가 가장 아래에 있는 것 같습니까?
- 최근 의도치 않았도 상처받게 했던 일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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