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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창세기

[말씀묵상] 창세기 44:1~13 “경솔한 말”

by 기대어 보기를 2026. 5. 16.

[창44:1-13]
1 요셉이 그의 집 청지기에게 명하여 이르되 양식을 각자의 자루에 운반할 수 있을 만큼 채우고 각자의 돈을 그 자루에 넣고
2 또 내 잔 곧 은잔을 그 청년의 자루 아귀에 넣고 그 양식 값 돈도 함께 넣으라 하매 그가 요셉의 명령대로 하고
3 아침이 밝을 때에 사람들과 그들의 나귀들을 보내니라
4 그들이 성읍에서 나가 멀리 가기 전에 요셉이 청지기에게 이르되 일어나 그 사람들의 뒤를 따라 가서 그들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
5 이것은 내 주인이 가지고 마시며 늘 점치는 데에 쓰는 것이 아니냐 너희가 이같이 하니 악하도다 하라
6 청지기가 그들에게 따라가서 그대로 말하니
7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내 주여 어찌 이렇게 말씀하시나이까 당신의 종들이 이런 일은 결단코 아니하나이다
8 우리 자루에 있던 돈도 우리가 가나안 땅에서부터 당신에게로 가져왔거늘 우리가 어찌 당신의 주인의 집에서 은금을 도둑질하리이까
9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
10 그가 이르되 그러면 너희의 말과 같이 하리라 그것이 누구에게서든지 발견되면 그는 내게 종이 될 것이요 너희는 죄가 없으리라
11 그들이 각각 급히 자루를 땅에 내려놓고 자루를 각기 푸니
12 그가 나이 많은 자에게서부터 시작하여 나이 적은 자에게까지 조사하매 그 잔이 베냐민의 자루에서 발견된지라
13 그들이 옷을 찢고 각기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가니라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불안과 두려움 속에 이집트 총리의 저택에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예기치 못한 환대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 아침이 밝았을 때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의 나귀에 각각 운반할 수 있을 만큼 많은 곡식을 채우고 이집트를 나설 수 있었습니다.

베냐민도 함께 동행했고 시므온도 함께 동행하여 모든 형제가 함께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이집트에서 멀리 떨어지기 전 청지기가 그들을 쫓아왔습니다. 그리고 “어찌하여 선을 악으로 갚느냐?”라며 그들을 붙잡았습니다.

청지기는 자신의 주인이 늘 점치는 데 사용하던 은잔을 훔쳤느냐고 캐물었고, 요셉의 형들은 이를 부인했습니다. 그리고 “우리가 어찌 당신의 주인의 집에서 은금을 도둑질하리이까? 당신의 종들 중 누구에게서 발견되든지 그는 죽을 것이요 우리는 내 주의 종들이 되리이다”라고 말합니다.

이렇게 말한 것은 자신들은 결코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는 것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자신들의 곡식 자루를 열어 자신들이 훔치지 않았다는 것을 증명하려 했습니다.

그런데 베냐민의 자루에서 은잔도, 양식 값인 돈도 발견되었습니다.

그 순간 요셉의 형들은 자신들의 옷을 찢고 다시 짐을 나귀에 싣고 성으로 돌아갔습니다.

말씀을 읽는 중에 든 의문 가운데, 오늘은 요셉의 형들에 대한 부분을 묵상해 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우리 인생에 대한 수많은 교훈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그중 하나는 ‘말’입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인생 이야기 속에서 한마디 말로 인해 비참한 일을 겪게 되는 내용들이 많이 나옵니다. 오늘 본문도 그런 이야기 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요셉의 형들은 왜 이렇게까지 말했을까요?

자신들은 도둑질을 하지 않았다는 확신이 있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실제로도 도둑질을 하지 않았기에 그렇게 말했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그렇게까지 말을 해야 했을까라는 생각이 듭니다. 누군가 죽임을 당하고 나머지 형제들은 종이 된다는 말입니다. 오히려 그들을 도둑으로 몰아세우는 사람이 더 낮은 수준의 대가를 요구했습니다. 그는 도둑질한 사람이 자신의 종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요셉의 형들의 마음은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그들의 말에서는 ‘경솔함’이 느껴집니다. 성경은 말의 경솔함에 대한 여러 교훈을 들려줍니다.

그리고 그런 경솔한 말 중 정점에 있는 것이 ‘맹세’입니다. 성경은 맹세에 대하여 엄히 경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의 경솔한 말은 결국 하나님의 이름을 경솔하게 대하는 것이 되며, 동시에 엄중한 책임을 지는 언어적 행위이기도 합니다.

오늘 본문의 경우도 그렇습니다. 앞에서 이 청지기는 요셉의 형들에게 자루에 들어 있던 돈의 문제를 이야기하며 “너희의 하나님, 너희 아버지의 하나님”이라는 말을 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하나님을 신앙하는 사람들이었고, 그들의 말과 행동은 그들이 신앙하는 하나님의 얼굴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말과 행동은 하나님의 얼굴입니다.

오늘 누가 그 말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들은 경솔한 말을 했습니다. 일종의 맹세를 해 버린 것입니다.

어쩌면 그 말이 경솔한 말이 아니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사실이 그러했으니 결코 경솔한 말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는 틀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 생각이나 내 확신조차 틀릴 수 있습니다. 이것은 믿지 못한다는 의미가 아니라, 우리는 늘 ‘오만함’을 조심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요셉의 형들이 한 말 속에는 숨겨진 감정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억울함’이고 ‘분노’입니다. 그들은 그것을 필터링하지 않고 그대로 내뱉었습니다.

생각해 보면 청지기의 말이 맞을 가능성도 있었습니다. 요셉의 형제들은 모두 11명이었습니다. 그리고 그들 중 정말 누군가가 그런 짓을 했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습니다.

또 그렇지 않더라도 앞선 사건에서 자신들은 몰랐지만 자루에 돈이 들어 있었던 일도 있었습니다. 조금만 생각해 보면 자신들은 하지 않았다고 확신할 수는 있으나, 자신들이 알지 못하는 일들이 일어날 수도 있음을 인지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오만함에서 비롯된 맹세가 아니라 겸손한 태도의 말과 행동이 나왔어야 했습니다.

결국 오늘 요셉의 형들의 경솔한 말은 “베냐민은 죽임을 당하고 자신들은 이집트 총리의 노예가 되겠다”라는 선언이 되어 버렸습니다.

오늘 우리의 헛된 맹세와 경솔한 말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묵상해 봅니다.

[마5:33-37]
33 또 옛 사람에게 말한 바 헛맹세를 하지 말고 네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34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보좌임이요
35 땅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하나님의 발등상임이요 예루살렘으로도 하지 말라 이는 큰 임금의 성임이요
36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 이는 네가 한 터럭도 희고 검게 할 수 없음이라
37 오직 너희 말은 옳다 옳다, 아니라 아니라 하라 이에서 지나는 것은 악으로부터 나느니라




[묵상을 위한 질문]
1. 말을 실수해서 어려움을 겪었던 일은 무엇입니까?
2. 스스로는 평소에 말이 급하게 나가는 편입니까?
3. 말에 대한 실수를 줄이기 위해 필요한 것은 무엇이라 생각하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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